이방인 회개 363

이방인/보들레르

이방인 / 보들레르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들은 이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신기한 구름을!” - 『파리의 우울』(황현산 역), 문학동네, 2015. / Le Spleen de Paris(1..

이방인 회개 2023.03.28

문 門_장수철

문 門 이제사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멀리서만 이방인처럼 바라보던 이 문 안에 이제사 고개를 숙이고 어리석은 양이 들어섰습니다. 그 숱한 나날을 어둡게 방황하던 죄 많은 마음이라서 죄 많은 몸이라서 어제 밤새도록 씻었습니다. 어제 밤새도록 닦았습니다. 아직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끌어 주옵소서 보살펴 주옵소서 높이 계신 하나님. 이제사 들어선 이 문 안에서 처음으로 올리는 참된 기도 밝은 빛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시작노트 : 내가 처음으로 신앙의 문에 들어섰을 때의 작품이다. 사실 나는 교회에 나오도록 권유를 받았을 때 어떤 형용하기 어려운 분노까지 느끼면서 거절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몇 해 동안 엄청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더욱 냉혹했던 사람들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사..

이방인 회개 2023.03.23

참회록/윤동주

윤동주가 창시개명을 하기 닷새 전에 지은 시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 반성과 성찰 등이 주제로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슬퍼지는 시이다. 이 시의 주제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자아 성찰의 자세가 극명히 나타난 것으로, 온몸을 바쳐 자신을 꾸준히 되돌아보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절망과 암흑의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화자는, 마침내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과 철저한 자기 참회의 실존적 자아 성찰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방인 회개 2023.03.18

목련/김경주

(20)김경주-비정형의 사유를 연주하다 2007.06.01 15:58 시인 김경주는 전천후다. 목련의 처연한 죽음(‘목련’)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정신현상학에 부쳐’)을 똑같은 톤으로 노래하고, 시나리오와 희곡과 장시(長詩)의 경계를 무람없이 오간다. 서정에 능한 가객인가 싶다가도 다시 보면 이렇게 치열한 사색가가 또 없다. 이 무모하리 만큼 완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외로운 날에는 살을 만진다”(‘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라고 적었다. 이 시인은 저 자신의 살에서 우주의 기미(幾微)를 엿보고 영혼의 음악을 듣는다. 이 ‘살’(감각)의 직접성과 확실성이 그의 위력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감각으로 시를 밀어붙인다. ‘나쁜 피’와 ‘취한 배’의 시인 랭보의 혈족이다. 일러스트 / 김..

이방인 회개 2023.03.14

삼월의 시/김현승

삼월의 시/김현승 내가 나의 모국어로 삼월의 시를 쓰면 이 달의 어린 새들은 가지에서 노래하리라, 아름다운 미래와 같이 알 수 없는 저들의 이국어로. 겨우내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이제는 양지로 모인다, 그리고 저들이 닦는 구두 콧부리에서 삼월의 윤이 빛나기 시작한다! 도심엔 시청 지붕 위 비둘기들이 광장의 분수탑을 몇 차롄가 돌고선 플라타너스 마른 뿔 위에 무료히 앉는 삼월이기에 아직은 비어 있다. 그러나 0속에 모든 수의 신비가 묻혀 있듯, 우리들의 마음은 개구리의 숨통처럼 벌써부터 울먹인다. 울먹인다. 그러기에 지금 오랜 황금이 천리에 뻗쳐 묻혔기로 벙그는 가지 끝에 맺는 한 오라기의 빛만은 못하리라! 오오, 목숨이 눈뜨는 삼월이여 상자에 묻힌 진주를 바다에 내어주라, 이윽고 술과 같이..

이방인 회개 2023.03.02

비대칭으로 말하기/김은자

비대칭으로 말하기/김은자 울음에 슬픔이 어두워지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며칠씩 목이 마르고 괜찮다고, 이제 다 지나갔다고, 손을 맞잡은 생이 벽처럼 깊어가네 오늘 당신은 정적, 투명한 유리잔처럼 출렁이네 슬픔의 바깥쪽을 돌다가 한 뼘씩 순도 높은 궤도의 안쪽을 향해 안착하는 울어야 할 때 웃어버리는 당신 왼팔과 오른팔의 길이는 얼마쯤 다른가?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깨진 대칭은 누구의 계절인가? 한쪽 발로 무거운 추를 오래 끌고 다닌 듯 그늘이 다리를 저네 웃어야 할 때 울어버리는 당신 눈을 중심으로 낙타가 사막을 가로질러 가네 모래바람에 커다란 두 눈을 끔뻑거리며 슬픔을 끝도 없이 행진하네 그것마저 울어버리면 웃을 테지 쓸쓸히 울어버릴 테지 울음 밖을 머물던 통렬한 시詩도 눈 쌓인 골목을 떠..

이방인 회개 20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