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363

용서/장시하

용서/장시하 시인 나 세상을 용서하던 날, 내 눈 가득 눈물이었다. 그랬다. 용서라는 것은 남이 나를 용서함이 아니라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었다. 진정 사랑함은 진정 용서하는 것... 그랬다. 서른 세 살 이스라엘 청년 예수도 목수의 아들로 간직할 수 없는 세상의 무시와 비방과 조롱 속에서도 오직 용서하였다.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용서하였다. 눈물로 용서하였고 보혈로 용서하였다. 지금 우리의 가슴에는 예수가 흐느낀다.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내가 너희를 용서했는데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 주님의 흐느낌에 나는 울었다. 그리고 용서하였다. 진정 사랑함은 진정 용서하는 것... 사랑과 용서가 하나임을 알지 못했던 날들이 부끄러웠다. 나 세상을 용서하던 날, 내 눈 가득 눈물이었다. 이천 년 전.....

이방인 회개 2022.01.31

2월의 기도/김원식

2월의 기도/김원식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나목의 가지에도 단단히 얼어붙은 오월의 한 고비를 넘으면, 가지마다 싹이 되고 잎이 되고, 꿈이 되고 노래가 되는, 그러한 봄이 기어이 올 것이라는, 그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 그러나 2월은 밤 깊도록 온 방을 훤하게 밝혀주다가, 신랑이 오시기쯤 하여, 가물가물 꺼져가는 등불처럼 안타깝게 견디기 힘든 계절 이빨을 앙 다물고, 아픔을 참는 산모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정말로 한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사랑이 꽃 피고 평화의 잎새가 움트는 봄, 봄은 기어이 오고 말 것이라는 당신의 말씀이었네 정말로 한 고비만 넘기기만 하면, 봄이 오고 꿈은 아지랑이처럼 가슴에서 가슴으로 번져갈 것인데 오오, 오래 참으시는 이여, 당신의 그 참으시는 인고를, 내 목을 안고 속삭..

이방인 회개 2022.01.19

갈보리의 노래/박두진

갈보리의 노래/박두진 해도 차마 밝은 채론 비칠 수가 없어 낯을 가려 밤처럼 캄캄했을 뿐. 방울방울 가슴의 하늘에서 내려 맺는 푸른 피를 떨구며, 아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늬……… 그 사랑일래 지지러져 죽어간 이의 바람 자듯 잦아드는 숨결 소리 뿐. 언덕이어. 언덕이어. 텅 비인 언덕이어. 아무 일도 네겐 다시 없었더니라. 마리아와 살로메와 아고보와 마리아와 멀리서 연인들이 흐느껴 울 뿐. 몇 오리의 풀잎이나 불리웠을지, 휘휘로히 바람결에 불리웠을지, 언덕이어. 죽음이어. 언덕이어. 고요여. 아무 일도 네겐 다시 없었더니라. 마지막 내려 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 에여내는 비애를, ..

이방인 회개 2022.01.11

우리 나라 1975년/최하림

우리 나라1975년/최하림 잇몸이 없는 시린 이빨로 앙상한 가지를 벌리고 서 있는 가로수 밑둥을 물어뜯어도 가로수들은 아파하지도 않고 우리들의 분도 풀어지지 않네 이 발길 그리고 저 돌멩이 돌멩잇길 서남해의 대숲마을이나 마늘냄새 매캐한 중강진의 살얼음 속에서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여윈 손목을 끌어 잡을 줄 모르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다르나 알아들을 수 있는 사투리로 말하고 끌어잡지 못하나 그 손으로 일하면서 고난의 시대를 함께 사네 아아 비바람에 씻긴 바윗돌 같은 얼굴 모진 불행을 다 삼키고도 표정없는 얼굴 그러한 얼굴로 서 있는 시대여 네 완강한 몸뚱이를 잇몸이 없는 시린 이빨로 물어뜯고 뜯어도 시대는 아파하지도 않고 우리들의 분도 풀어지지 않네

이방인 회개 202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