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34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슈낙   울음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뜻한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고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 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수필 2025.01.02

아담과 이브의 삶/석희구 목사

아담과 하와로 대표 되는 인간군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 인간의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라는 전제로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을 그려 보려 한다.아담과 하와가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고귀한 걸작으로 묘사되는 까닭은 여러 다른 피조물과 달리 창조주께서 직접 그 손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로,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한다. 믿음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이를 공인, 공감하는 바이다. 만물 중 가장 고귀한 피조물에 맞게 살아내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한 번의 식사를 위해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처럼 창조주께서는 100년을 일 회로 계상하여 우리를 역사 무대에 올리시는 것으로 간주하자. 물론 각기 ..

수필 2024.12.13

낡은 구두

창녕 댁 대문을 들어서면 감나무에 묶인 철사 줄이 마당을 가로질러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빨랫줄을 따라가다 보면 마당중간쯤에 붕긋 솟아오른 장대가 줄을 떠받치고 서 있고, 장대를 중심으로 옷이 널려있었다. 그 집 옷가지들은 우리 집 빨랫줄에 널린 것과 달리 하나 같이 무명치마와 몸빼바지 뿐이었다. 고부간, 두 여자만 살고 있으니 남자 옷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왠지 가슴이 허전해왔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랬던 것 같다.빨랫줄을 떠받치고 있는 장대와 그 집 안방 문은 마주하고 있었다. 장대에 한 손을 잡고 서서 축담을 바라보면 댓돌이 보이고 댓돌 위에는 남자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새 구두도 아니고 기름기가 빠진 낡은 구두를 멀찍이서 바라다보면 내 눈에는 아버지가 신다버린 헌 구두 같아보였..

수필 2024.11.23

당신의 웃음/김진악

우리 마을 앞 언덕에 초가 한 채가 있었다. 이 땅에서 일본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진 다음 해 봄이었다. 그 지붕에 난데없이 대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꽂혀 있었다. 가끔, 그 집 싸리나무 울타리에서 새어나오는 찬송가 소리가 아지랑이처럼 온 마을에 울려퍼졌다. 교인이라야 부인네 예닐곱, 초등학생 대여섯이었다. 대처에서 집사 노릇을 하던 분이 귀향하여 있다가 자기 집 대청에 차린 예배당이었다. 그 해 여름, 친구 따라 강남에 가듯이 나도 예수꾼이 되었다. 난생 처음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도 들었다. 반세기가 지난 옛 일, 이제는 그 예배당의 뜰에 감나무가 있었는지 대추나무가 서 있었는지 아슬하고, 집사님이 흰 두루마기를 입었는지 검정 목도리를 둘렀는지 감감하나, 오직 한 토막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수필 2024.11.02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김우영

신앙 수필 1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 점검결과 방글라데시가 세계 일위를 한 적이 있다. 우선 이런 통계를 들으면 무엇보다도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부유한 나라 백성의 행복은 어떤 것, 혹은 어디에 기초를 둔 것이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 국민이 느끼고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 혹은 그 행복의 질은 어떻게 다른지 우선 궁금하다.행복지수 조사는 개인들이 느끼는 것을 조사한 결과일까, 아니면, 그 나라 관리들에게 물어서 만든 통계일까? 백성들의 진심은 진심일 수 있지만, 관리들의 대답은 다분히 정치적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 백성들이 가난의 현실은 그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그래도, 그들은 행복..

수필 2024.08.13

인생은 한 편의 시 / 임어당

작가 린위탕/임어당 중국의 세계적 작가ㆍ번역가ㆍ교육자ㆍ풍자가. 중국 복건성(福建省) 용계현(龍溪縣) 아모이 근교에서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 본명 林玉堂.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다가 1966년 대만의 대북시 교외에 거주하였다. 중화민국 작가회 회장(70) 역임. 생전에 약 40권의 영어 저서를 집필하여 1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홍콩의 ‘퀸 메어리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   인생은 한 편의 시 / 임어당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생은 한 편의 시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생에는 독특한 리듬도 있고 맥박도 있고 성장과 노쇠의 내부적 주기도 있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유년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성년자가 사회에 적응해 가려고 조바심하는 서툰 청춘기가 그에 이어진다.그 뒤 거기에는 청춘의 번뇌와..

수필 2024.07.30

시간의 흐름과 생명살이의 관계를 생각하며 /김우영

모든 피조물은 모두 시간에 붙잡혀 있거나 혹은 거기에 갇혀 꼼작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 안에서 계속 그 시간을 따라 어느 피조물이든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흐름이란 생명의 흐름일 수도 있고, 시간을 따라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삶이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시간이 물의 흐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물의 흐름은 갇히면 물이 썩어 죽게 되는데, 누가 감히 시간의 흐름을 막고 붙잡아 어디에 묶어둘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 시각을 기다리면서 오래 기다릴 때 ‘시간만 죽이고 있다.’라는 말도 하지만,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은 어디 한 곳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진정 자유로운 존재이..

수필 2024.07.28

여름 아이/심명옥

여름 아이 / 심명옥 생각만 해도 벌써 땀이 난다. ‘여름’이라는 글자 어느 획엔가 땀구멍이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 글자에 따라오는 장면들까지 하나같이 끈적끈적하다. 후텁지근한 공기, 퀴퀴한 냄새, 쉬 상하는 음식, 덜 마른 빨래 등등 보송한 수건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다.​설렘으로 무장한 봄과 황홀함을 차려입은 가을 사이에 자리한 여름은 단벌신사다. 봄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처럼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주문한다. 연초록 새싹을 선두로 하여 팡팡 터트리는 꽃들에 이르기까지 봄의 몸짓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잠시만 눈을 돌려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작은 웃음소리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가을은 또 어떤가. 다채로운 붓질로 물든 가을은 사람 마음을 쥐고 흔든다. 노랗고 붉은 융탄 폭..

수필 2024.07.24

부활 단상

살며 생각하며봄은 좋은 계절이다. 겨울 내내 추위와 회색 빛으로 어둡던 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물오른 가지마다 연두빛 잎들이 새롭고, 각종 꽃이 현란함으로 피어오른다. 온 세상이 새롭게 생명의 정기를 내뿜는 봄은 부활의 계절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부활절도 입춘 후 첫 번째 만월(Full Moon)이 지난 첫 번째 주일에 지킨다.기독교의 근본 정신이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신자들의 믿음의 근거는 예수의 부활이라 하겠다. 신학자 Gerald O’ Collins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활 없는 기독교는 단지 미완의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Lee Strobel의 『예수 사건』에서).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다..

수필 2024.07.21

목회자 사모 신앙수필/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4월에 내린 하얀 눈, 눈이 왔다는 말이 반갑기보다 문득 낯설어졌습니다. “야, 눈이다”가 아니라 “어머 또 왠 눈이지”하고 중얼거렸으니 말입니다. 그 눈은 봄을 재촉하는 꽃보다도 화려한 모습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무들은 맨 몸으로 추운 겨울을 어떻게 무사히 지난 것일까. 한 겨울 앙상한 가지를 보면 죽은 듯 보여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파릇파릇한 잎을.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냅니다. 양지쪽으로부터 올라오는 초록빛 잎사귀, 꽃잎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그들의 친구가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냈고, 나도 지난 날 아픔과 고통을 다 이기고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쓰러지지않습니다. 바람이 강하면 나무도 강해지고 숲이 어두우면 나무는 하늘을 향해..

수필 20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