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22

[좋은수필]행복에 관하여 / 정갑수

모든 사람은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고대철학자들은 삶의 현상보다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우주에서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인류가 아직도 답을 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최초로 답을 찾으려고 시도했던 철학자중 한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였다.그는 우주는 역동적이고 끊임없는 변화와 대립 속에서도 우주적 지성에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데, 이 우주적 지성을 로고스Logos라 부르고 그것은 불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의식, 이성, 자유의지라는 축복을 내렸고 이런 축복 덕분에 인간은 모든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

수필 2024.04.27

사순절의 기도/박보명 장로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가시 면류관과 십자가가 더불어 나타납니다. 봄과 얼음이 풀리는 길목에서 주님을 떠올리고 바라보면 피로 얼룩진 모습에 마냥 넋없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작년에도 내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고 참회의 눈물과 기도를 드렸는데 지금도 여전히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용서해 주세요. 주님! 알게 모르게 공기를 마시듯 주님의 사랑을 받고도 무엇에 그리 바쁜지, 무엇에 그리 떠밀려 가는지, 무엇에 그리 쫓기고 있는지, 무엇에 그리 정신이 없는지, 주님의 말씀에 게을렀고, 기도에 무심했고, 행함에 부족했고, 순종보다 변명에 이골이 난 이 모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간구하오니 허물을 용서해 주세요. 주님!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새로운 각오로 주님과 가까이 호흡하며 살기를 바라는 소원의 기도를..

수필 2024.03.29

골죽/ 지영미 수필/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일러스트/정윤성 수직으로 곧게 뻗은 대나무 군락, 속을 비운 대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흘러넘치는 푸르른 본능 사이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댓잎에 튕긴 빛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바람이 불자 일제히 우듬지를 출렁이며 허공에 부서진 소리를 쓸어 담는다. 대나무들은 하룻밤에도 훌쩍 키가 자란다. 늦게서야 자라는 대는 죽죽 뻗고 싶지만, 햇볕은 먼저 큰 친구들이 차지한다. 시간이 갈수록 초라한 모습이 도드라진다. 버스럭거리는 낙엽만이 골골이 파인 상처를 감싸줄 뿐이다. 속 깊은 자괴감에 비하면 겉면을 타고 내리는 고통쯤은 참을만하다. 제때 자라지 못한 몸뚱이는 결핍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시간이 갈수록 마디를 파고드는 골이 깊어진다. 생장의 마디마다 사연을 간직한 채 낮은 자세로 사는 법을 터득..

수필 2024.03.18

솔직한 신앙생활/김윤환

솔직한 신앙생활/김 윤 환 우리는 흔히 솔직하다는 것과 정직하다는 것과 진실하다는 것의 차이를 모호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때로 솔직하니까 정직한 것이고, 정직하니까 진실된 사람으로 오해하는지도 모르죠. 그러한 오해는 우리 기독교인에게도 종종 발견됩니다. 교회모임이나 봉사활동에 소극적인 교우들에게 모임에 참여를 권유하다보면 대개 바쁘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고 둘러댑니다. 물론 진짜 긴요한 용무가 있을 수는 있겠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빠지는 사람이 늘 빠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매우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또 그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솔직한 심정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솔직히 일요일은 좀 쉴 필요가 있지 않느냐?' '솔직히 주일..

수필 2024.02.18

‘한국 수필문단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경희(1918~2005)

‘한국 수필문단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경희(1918~2005) 문학의 키워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성이다. 그의 글은 생활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이다. 이런 진솔함은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정면 창후리 선착장에서 바라본 바닷가에 노을이 내리고 있다. 조경희 작가는 고향 강화도의 푸른 산과 노을이 내리는 바닷가 그리고 인정이 많은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지금도 내 생김이 퍽 인상이 나쁘지만 일찍이 나는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었다. 여학교 일 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나하고 좋아지내던 상급생 언니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나의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언니처럼 믿고 의지해오던 상급생 언니, 그리고..

수필 2024.02.09

네가 어디에/곽상희

2000년 1월 1일 21세기가 시작되던 첫날 국제 펜 본부(회장 호메로 아리디스)는 사회주의를 포함해 94개 국의 기라성 같은 회원국 문인들로부터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문장이 어떤 것인지 선정하게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문장을 가장 위대한 문장으로 뽑은 문인들은 그 이유를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 혹은 신비로 가득 찬 문장’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이처럼 힘차고 확신에 찬 선언을 나도 모릅니다. 인간이 터득할 수 없는 무한한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말씀, 창조의 영원한 파노라마의 시초, 한없이 되풀이하여 외우고 싶은 생명의 근..

수필 2024.01.30

삶에 대하여/김형하

삶에 대하여 김형하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고희 앞에 서 있다. 잠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돌아보지 못했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한답시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 살아온 것 같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남이 생각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가족의 행복, 풍요로운 삶의 추구, 건강, 직업, 자연, 자유, 취미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싶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근자의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

수필 2024.01.24

슬로우 슬로우 퀵퀵/2023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

하물며, 골목 바람도 리듬을 탄다. 느긋한 바람이 강아지풀을 쓰다듬으며 살랑거리다가도 남쪽 동백꽃 내음을 골목으로 부려 놓을 만큼 세차게 불기도 한다. 빨랫줄에 널려있는 시래기가 왜바람 따라 바스락거린다. 거칠어진 바람에 돌쩌귀 빠진 철대문이 덜커덩덜커덩 녹을 닦는다. 바람의 장단에 골목은 부풀었다가도 이내 고요한 풍경이 된다. 사람이 만드는 바깥바람에도 골목은 술렁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진다. 후미진 골목의 리듬이다. ‘슬로우슬로우 퀵퀵’ 휘파람 불 듯 발음해야 하는 이 말을 내가 맨 처음 들었던 때는 골목이란 골목을 죄다 이어 나만의 세상을 만들던 어린 날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와 골목을 휩쓸다가 숲을 타고 산등선 너머로 사라지던 바람을 뒤쫓는 일이 당시 아이들의 놀이였다. 순간순간 속도를..

수필 2024.01.21

몇 초의 포옹- 조남숙/2023년 신춘문예 경남일보 수필 당선작

폐허는 사람이 없어야 폐허가 된다. 역사의 한 부분을 떠들썩하게 채워 넣던 도읍지였을망정 인걸이 간데없어지면 폐허가 된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지음 / 효형출판, 2014)는 문장에서 폐허를 생각한다. 사람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 중요한 유기체다. 유기체는 공간에 모여 구분 불가능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공간 속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의 힘은 달콤하면서 힘이 있다. 사람 구경 할 수 있는 시장이나 백화점, 극장이나 공연장,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계단이다. 나에게 세종문화회관은 정신세계의 중심이었다.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의 명맥을 이어 예술의 통로가 되었던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은..

수필 2023.10.20

인연/이강순

인연 - 정직한 시간 / 이강순 숨이 턱에 차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급기야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퍽 주저앉았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기댔는지 누웠는지 분간이 안 되는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는지조차 스스로 분간할 수 없는 무념의 상태라 해야 할까. 최악의 순간을 모면하는 그 순간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앞서 간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낯선 이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은 거지요?”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괜찮다는 표현은 슬며시 일어나 배낭에 있는 물을 찾는 일이었다. 내가 미처 물을 꺼내기도 전에 앞을 가..

수필 202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