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22

봄/윤오영

봄 / 윤오영 창에 드는 볕이 어느덧 봄이다. 봄은 맑고 고요한 것, 비원의 가을을 걸으며 낙엽을 쥐어본 것이 작년이란 말인가. 나는 툇마루에서 봄볕을 쪼이며 비원의 가을을 연상한다. 가을이 가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가을 위에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온 것이다. 그러기에 지나간 가을은 해가 멀어갈수록 아득하게 호수처럼 깊어 있고, 오는 봄은 해가 거듭될수록 쌓이고 쌓여 더욱 부풀어가지 않는가. 나무는 해를 거듭하면 연륜이 하나씩 늘어간다. 그 연륜을 보면 지나간 봄과 가을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둘레에 남아 금을 긋고 있다. 가을과 봄은 가도 그들이 찍어 놓고 간 자취는 가시지 않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도 흰 터럭이 하나하나 늘어감에 따라 지나간 봄과 가을이 터럭에 쌓이고 쌓여 느낌이 커 간다. 꽃을 보..

수필 2023.03.05

시가 당신을 살립니다/나태주

나 태 주 1. 시가 당신을 울립니다 우리들 인간은 이성도 있고 감성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성은 무엇인가를 알고 기억하고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마음의 능력입니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고, 또 개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이 분야를 중심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아예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의 척도를 이성적인 요소로만 국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성적인 요소보다는 감성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는 것도 감성적인 요소나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스펙트럼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시비(是非)의 마음은 이성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마음이고 호오(好惡)의 마음은 감성적인 마음에서 ..

수필 2023.01.05

이 청정의 가을에-김 초 혜(시인)

눈물처럼 슬픈 가을이 온다. 바람으로 먼저 오는 가을. 그리하여 우리의 살갖을 스치며 영혼을 춥게 하고 마침내 우리를 허무라는 지향 없는 방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그리하여 우리의 눈을 맑게 하고, 영혼을 슬프게 울리고, 고독이라는 끝 모를 시간 앞에 우리를 무릎 꿇게 한다. 달이 밝은 가을밤 창가에 서면 목까지 차 오르는 그리움, 그 그리움은 근원을 모르는 슬픔이다. 글세, 그것이 가을의 얼굴인가, 가을의 손짓인가. 어느 사람이 있어 이 가을의 막연한 그리움과 적막함과 서글픔의 정서를 분석하고 자세히 해명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무의미한 일일까. 무엇 때문이라고 그 명료함이 설명된다고 하여도 가을이 주는 적막한 우울과 그리움의 사색이 치유될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가을은 태..

수필 2022.10.07

내 이름을 불러본다/고재건

고재건 수필가 일간신문에 수필을 10여 편 이상 발표하였다. 그때마다 내 이름 밑에 ‘수필가’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랫동안 수필을 공부하면서 개인 수필집을 내기도 하였지만 수필이란 문학의 한 장르를 전부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하여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하여 노력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 있게 ‘수필가’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느낄 때가 있을 것인가. 나의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명칭이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라면서 시기와 상황에 맞게 이름 말고도 자신을 호칭하는 다른 이름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

수필 2022.10.02

배웅/박경주

배웅 - 박경주朴景珠 언제 끝날 것인가. 고통에 절은 아버지가 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말씀이다. 싸늘한 겨울바람 속에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고 돌아오던 날, 영원한 별리의 아픔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일생 병약했던 아버지가 미수米壽까지 살다 가신 것은 우리 가족에겐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당신에게 그 세월은 차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다섯 해 동안 산소호흡기에 달린 반경 십 미터 정도의 줄에 끌려 다닌 삶은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 것이었을까. 그것은 결말이 뻔한 마지막 장면이 너무 길어져 버린 소설처럼 아버지에게도 우리 삼남매에게도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무릎에서 놀던 어린 시절부터 집에 손님이 다녀가시면 당신은 나를 데리고 대문 앞까지 꼭 배웅..

수필 2022.09.29

신기독愼己獨 / 권오훈[제22회 수필과비평 문학상 대표작]

신기독愼己獨 / 권오훈 한때 독서클럽에서 정한 도서로≪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에 버금갈 정도로 명석한 스웨덴 물리학자 스베덴보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가사假死상태에서 여러 차례 사후세계를 다녀와 쓴 책이라 전해진다. 우리가 죽으면 중간지대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생전 선악 행위의 결과에 따라 아홉 단계의 천국과 아홉 단계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천당과 지옥 모든 곳을 다녀왔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라는 사명을 받고 방대한 내용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인간은 사후에 누구나 천당과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각각 9단계가 있다. 판단의 기준은 양심과 선행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까지..

수필 2022.09.15

현대인의 사랑받는 노자 영감님/김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흙내 봄에는 흙도 달더라얼마나 뜨거운 가슴이기에 그토록 고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가 영혼 깊숙이 겨울을 울어-- 울어--- 아픈 가슴 사랑의 불 지피더니 죽었던 겨울 나무 가지마다 살아있는 생명의 함성 잠자는 내 영혼 흔들어 깨우네 한줌의 흙 수 많은 생명의 넋이 숨어 살고 너와 나의 하나의 목숨이더니 죽어도 다시 사는 영혼의 화신 목숨 또한 사랑이더라 흙내 내 어머니의 젖무덤 그 사랑의 젖줄 물꼬 나 이봄 다시 태어나리 꽃으로 ---- 바람으로 --- 사랑으로 --- [1999년에 쓴 시 '흙내' 김경자] 이태백의 시를 읽으며 시의 고전 속으로 들어 가 옛 시인들의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속에 내 마음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에 “저 강상의 맑은 바람, 밝은 달이여/ 귀로..

수필 2022.08.03

괜찮아/장영희

장영희(張英嬉)(1952-2009)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네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집에 아이가 네댓은 되었으므로, 그 골목길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잡아 열 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 안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일 때쯤이면 어머니는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을 깔고 나를 거기에 앉혀 주셨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놀이 기구가 없던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술래잡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넘기 등을 하고 놀았지만, 다리가 불편한 나는 공기놀이 외에는 어떤 놀이에도 참여할..

수필 2022.07.13

“K 목사의 꿈”/박찬효

박찬효(약물학박사, MD) 크리스천 작가이며 모티베이터인 지그 지글러( Zig Zigler)는 “모든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적인 사명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선한 사명감을 위해 삶을 송두리째 투자하는 분들을 대하면, 이러한 분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산다는 생각에 도전을 받게 된다. 인생길은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혹시 여러 요인으로 그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더라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 자체가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진다. 본인과 30년 가까이 교제해 오는 밀알 사역(장애인 선교) 단체의 K 목사 부부는 이러한 삶을 사는 분들 중의 하나이다. 밀알 사역은 요한복음 12:24 말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수필 2022.06.28

감사와 행복/장인선 수필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돌을 던진다고 해도 나는 자신 있게 그리고 분명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다른 병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다가 상대방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그래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 사실 내가 처음 아팠을 때는 벌써 사십 년 전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그 병으로 아픈 것에 대해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기분일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혈압이나 당뇨같이 꾸준히 전문적인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잘 살아 갈 수 있다. 문제는 환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잊고 산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 정신과 환우들이 오히려 세상의 편견을 만드는 원인 제..

수필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