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보들레르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들은 이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신기한 구름을!”
- 『파리의 우울』(황현산 역), 문학동네, 2015. / Le Spleen de Paris(1869)
감상: 보들레르(1821~1867)는 상징시의 선구자로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이후 시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보들레르는 아버지가 6세 때 죽고 어머니가 바로 재혼하면서 의부 밑에 자란다. 연인 잔느 뒤발을 만난 뒤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유산 문제로 의부와 갈등을 빚는다.
보들레르를 좋아했던 베를렌(1844~1896)은 동시대의 랭보(1854~1891)와 말라르메(1842~1898)를 또한 높이 평가한다. 랭보가 보낸 편지에 동봉한 시를 읽은 베를렌은 랭보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랭보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나가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랭보는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베를렌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베를렌은 아내와 랭보 사이 애정 문제로 고민하다가, 자신을 떠나려하는 랭보에게 두 번이나 권총을 겨누고 손목에 총상을 남긴다. 그 대가로 2년 가까이 감옥에서 복역한다. 랭보는 얼마 후 절필하고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 등지를 떠도는 삶을 산다.
“내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치켜들어, / 상처난 내 구두의 고무끈을 나는 리라처럼 잡아당겼노라!”(랭보, 「나의 방랑」)는 방랑벽을 다 안다는 듯 베를렌은 랭보를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로 호명했다.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바다의 미풍」)하고 노래했던 말라르메도 5세 때 어머니를 잃는다.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는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소설과 시를 번역하며 동경의 마음을 적극 드러낸다. 포는 고아로 자란 인물이다.
포와 보들레르 그 이후의 랭보, 말라르메의 영향 관계나 작품 등을 일별하고 있자면, 이들 예술가들의 어릴 적 상실감에 닿기도 하고, 낯선 곳에 대한 모험심과 여행에 대한 동경심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방인」을 통해 읽는 보들레르는 가족보다, 조국보다 귀한 것이 있단다. 황금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한 것의 가장 정반대에 있으면서 증오하고픈 대상으로 치부된다. 물론, 보들레르는 돈 쓰는 재미를 누리고, 그게 차단되자 괴로워했던 인물이지만 의식적으로나마 돈을 멀리한다.
예술가의 든든한 백은 관계도, 연인도, 돈도 아니며 오히려 그걸 버리는 데 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빈 마음에 “흘러가는 구름”을 좇고 사랑하면 좋을 것이라는 보들레르의 메시지가 가슴으로 오는 사람은, 구름에 얼마간 귀의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보들레르는 「수프와 구름」에서 구름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냉큼 수프나 들지 않고, 빌어먹을 구름 장수 멍청이”라고 부르는 애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수프 먹고 정신 차려서 밥값 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구름이 마냥 좋은 나도 누가 계파를 물어 오면... 멍청이 구름파 소속이라 답하겠다. 볕 좋은 곳에 의자를 놓고 포의 <어셔 가의 붕괴>을 읽다가 행여 소름이라도 돋으면 「바다의 미풍」을 펴고 마음 돛이 펄럭이게끔 바람을 넣고 싶은 나는 구름파로 게으르고 싶을 뿐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