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서 머나먼 / 유안진 번번이 내리고 싶었던 정거장이었다 반드시 내려야 할 것 같은 그런 역이었다 내려서 손차양 얹고 바라다보면 뭔가 모를 뭔가가 알아질 성싶어서 타이르다 강요하는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멀리는 고사하고 더 가깝게 보려고 돋보기를 끼다 마주치는 낯익은, 낯선 숙적의 무리 에워싼 인민재판장에서 팔뚝춤과 삿대질로 질타하는 조목조목의 목록에서 빠진 사항까지 보태주고 싶어지고 그러느라 더 멀리 지나와 아닌 역에 내려서면 되돌아가 빌고 싶어지는 머나머언 가까워서 한번도 못 내린 머나머언 망원역(望源驛) 신(神)이 계신 그곳이 서울에도 있다면, 필시 망원역에 내려야만 찾아갈 수 있을 거라 - 유안진 시집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