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363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박노해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박노해   하나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제 남은 길이 아무리 참혹해도다 받아들이고 그 길을 따를 테니제가 죽을 때 웃고 죽게만 해 주세요.다른 거는 하나도 안 바랄게요.그때가 언제라도 좋으니"저, 잘 놀다갑니다."맑은 웃음으로 떠나게만 해 주셔요.저도 제 사랑하는 이들께삶의 겉돌기나 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을게요.오직 한가지만 다짐할게요.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떠나가자고"고마웠습니다. 저 잘 놀다갑니다"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없이 불살라가자고.

이방인 회개 2024.07.21

6월/오세영

6월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내겐 길이 없습니다.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나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님의 체취에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강물은 꽃잎의 길이고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내겐 길이 없습니다.개구리가 저렇게푸른 울음 우는 밤,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님의 말씀에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눈먼 나는 아아,어디로 가야 하나요.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오세영·시인, 1942-)

이방인 회개 2024.06.05

박노해 시인의 결氣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

이방인 회개 2024.02.16

소리의 집/길상호

소리의 집/길상호 ​ 그 집은 소리를 키우는 집, 늑골의 대문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마루에 할머니 혼자 나물을 다듬거나 바람과 함께 잠을 자는 집 그 가벼운 몸이 움직일 때마다 삐이걱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오는 집, 단단하게 박혀 있던 못 몇 개 빠져나가고 헐거워진 허공이 부딪히며 만드는 소리, 사람의 세월도 오래되면 소리가 된다는 듯 할머니 무릎에서 어깨 가슴팍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의 소리들, 아팠던 곳이 삭고 삭아서 만들어낸 관악기의 구멍을 통해 이어지는 가락들, 나의 짧은 생으로는 꾸밀 수 없는 그 소리 듣고 있으면 내가 키워온 옹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바람 드나들며 나 또한 소리 될 것 같은데 더 기다려야 한다고 틈이 생긴 마음에 촘촘히 못질하고 있는 집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

이방인 회개 2024.02.13

반성의 기도/윌리암 쿠퍼

윌리엄 쿠퍼(1731∼1800)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났던 날 받은 축복은 지금 어디에? 내 심령을 새롭게 하는 예수님과 그 말씀은 지금 어디에? 그 즐겁고 평화롭던 시간이여 그 달콤했던 기억이여, 그것들이 다 떠나고 남은 공허를 세상은 결코 채우지 못하리. 돌아오라, 성령의 비둘기여, 돌아오라, 달콤한 평화의 천사여, 주님을 슬프게 하고 내 가슴에서 떠나게 하는 죄를 미워하노라.

이방인 회개 202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