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363

노숙/김사인

노숙/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이방인 회개 2023.05.06

버릇된 가난/이향아

버릇된 가난/이향아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요즘은 남의 외투를 걸친 듯 더러 서툰 일이 생기고 뒤꿈치가 벗겨질 듯 미끄러운 신발 거리는 타관처럼 낯선 얼굴로 넘친다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마음 편하기로는 가난만한 것이 없는데 거기 질이 나서 모자람 없이 살았거늘 이제 새삼 무얼 바꾸랴 아무리 일러줘도 부자들은 모르는 아랫목 이불 깔린 구들장 같은 발뻗고 기대기 은근하고 수더분한 그러다가 금세 눈앞이 젖어드는 그보다 좋은 세상 어디 있으랴만 나도 모르게 가난을 벗으려고 했나 보다

이방인 회개 2023.04.22

통회/김태진

통회/김태진 이 짧은 내 생애를 모두 마치고 나면 그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 스스로 나를 용서하지 못하도록 썩은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좋은 길을 알면서 자꾸 나쁜 길로만 가는 나를 그분 용서해 주시려나 좋은 길을 알면서 자꾸 나쁜 길로만 가는 나를 용서해 주시려나 이젠 너무 지쳐 일어설 수도 없는 그분 날 일으켜 세워 주시려나 주님 이제 당신 심장에 꽃아 넣은 나의 칼을 뽑으려고 합니다 더러운 제 눈물이라도 괜찮으시면 당신 심장을 닦게 하소서 제 눈물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면 당신 피로 저를 씻어 주소서

이방인 회개 2023.04.20

그날이 왔을 때/작자 미상

그날이 왔을 때/작자 미상 놀이터에서 어린아이가 모래 장난을 한참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 즈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고 기쁘게 달려가는 모습처럼, 제가 이 세상 삶을 떠나야 할 때 이런 모습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삶 안에서 강한 애착 집착을 보이는 제 모습을 보면 막상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왔을 때 떠나지 못해 울고불고 손놓지 못하면 그 모습 때문에 얼마나 더 아플까... 많이 두렵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은 것처럼 더욱더 사랑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 온통 내 안을 차지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이방인 회개 2023.04.12

아버지의 집은 따뜻했네/석정희

아버지의 집은 따뜻했네/석정희 한겨울이다 L.A. 다운 타운 브로드웨이 거리의 밤 고층빌딩 벽을 기댄 냉장고 비인상자 집들 들어선다 갖은 영화와 수난 신문지에 깔고 누운 노숙자들 잠이 들면 옛 꿈이 보일까 어제의 풋 돈냥 회개의 씨앗 되어 터 오르고 울을 넘던 웃음소리 가슴에 여울져 아버지 집은 따뜻했는데 돌이키는 귓가에 울리는 새벽종소리 거리의 교회에서의 아침 샌드위치에 목이 메인다 하룻밤 집이 된 상자 윗 모서리에 누가 붙였을까 노란 리본 하나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되어 햇살로 번져가고 있다 겨울걱정이 쌓인다

이방인 회개 2023.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