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349

버릇된 가난/이향아

버릇된 가난/이향아 나도 모르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요즘은 남의 외투를 걸친 듯 더러 서툰 일이 생기고 뒤꿈치가 벗겨질 듯 미끄러운 신발 거리는 타관처럼 낯선 얼굴로 넘친다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마음 편하기로는 가난만한 것이 없는데 거기 질이 나서 모자람 없이 살았거늘 이제 새삼 무얼 바꾸랴 아무리 일러줘도 부자들은 모르는 아랫목 이불 깔린 구들장 같은 발뻗고 기대기 은근하고 수더분한 그러다가 금세 눈앞이 젖어드는 그보다 좋은 세상 어디 있으랴만 나도 모르게 가난을 벗으려고 했나 보다

이방인 회개 2023.04.22

통회/김태진

통회/김태진 이 짧은 내 생애를 모두 마치고 나면 그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내 스스로 나를 용서하지 못하도록 썩은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좋은 길을 알면서 자꾸 나쁜 길로만 가는 나를 그분 용서해 주시려나 좋은 길을 알면서 자꾸 나쁜 길로만 가는 나를 용서해 주시려나 이젠 너무 지쳐 일어설 수도 없는 그분 날 일으켜 세워 주시려나 주님 이제 당신 심장에 꽃아 넣은 나의 칼을 뽑으려고 합니다 더러운 제 눈물이라도 괜찮으시면 당신 심장을 닦게 하소서 제 눈물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면 당신 피로 저를 씻어 주소서

이방인 회개 2023.04.20

그날이 왔을 때/작자 미상

그날이 왔을 때/작자 미상 놀이터에서 어린아이가 모래 장난을 한참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 즈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고 기쁘게 달려가는 모습처럼, 제가 이 세상 삶을 떠나야 할 때 이런 모습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삶 안에서 강한 애착 집착을 보이는 제 모습을 보면 막상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왔을 때 떠나지 못해 울고불고 손놓지 못하면 그 모습 때문에 얼마나 더 아플까... 많이 두렵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은 것처럼 더욱더 사랑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 온통 내 안을 차지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이방인 회개 2023.04.12

아버지의 집은 따뜻했네/석정희

아버지의 집은 따뜻했네/석정희 한겨울이다 L.A. 다운 타운 브로드웨이 거리의 밤 고층빌딩 벽을 기댄 냉장고 비인상자 집들 들어선다 갖은 영화와 수난 신문지에 깔고 누운 노숙자들 잠이 들면 옛 꿈이 보일까 어제의 풋 돈냥 회개의 씨앗 되어 터 오르고 울을 넘던 웃음소리 가슴에 여울져 아버지 집은 따뜻했는데 돌이키는 귓가에 울리는 새벽종소리 거리의 교회에서의 아침 샌드위치에 목이 메인다 하룻밤 집이 된 상자 윗 모서리에 누가 붙였을까 노란 리본 하나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되어 햇살로 번져가고 있다 겨울걱정이 쌓인다

이방인 회개 2023.04.08

이방인/보들레르

이방인 / 보들레르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들은 이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신기한 구름을!” - 『파리의 우울』(황현산 역), 문학동네, 2015. / Le Spleen de Paris(1..

이방인 회개 2023.03.28

문 門_장수철

문 門 이제사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멀리서만 이방인처럼 바라보던 이 문 안에 이제사 고개를 숙이고 어리석은 양이 들어섰습니다. 그 숱한 나날을 어둡게 방황하던 죄 많은 마음이라서 죄 많은 몸이라서 어제 밤새도록 씻었습니다. 어제 밤새도록 닦았습니다. 아직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끌어 주옵소서 보살펴 주옵소서 높이 계신 하나님. 이제사 들어선 이 문 안에서 처음으로 올리는 참된 기도 밝은 빛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시작노트 : 내가 처음으로 신앙의 문에 들어섰을 때의 작품이다. 사실 나는 교회에 나오도록 권유를 받았을 때 어떤 형용하기 어려운 분노까지 느끼면서 거절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몇 해 동안 엄청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더욱 냉혹했던 사람들이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사..

이방인 회개 20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