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자작글 597

봄비가 와요/리라

봄비가 사방에 안개처럼 자욱하다. 나무에도 풀잎에도 꽃봉우리에도 봄비가 살며시 자꾸 자꾸 내려 앉는다.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데 왠지 포근한 풍경,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는 날이다. 내 가슴에도 스며드는 봄비.. 뭐랄까 형체도 없는 것이 소근거리고 있는 듯 마냥 정겹다. 아무 조건도 없이 봄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의 은혜다. 어제는 봄볕에 나른하던 삼라만상이 오늘은 문득 졸음에서 깨어나 목을 축이는 양 싱그러운 눈빛을 반짝인다. 꽃, 나무, 풀 뿐이랴.. 돌들도 모래알도 흙도 반기는 봄비가 아니던가? 졸졸졸 흐르던 시냇물도 박수치듯 힘차게 물결치는구나! 이곳 저곳에서 쑤욱 쑤욱 고개를 들고 불러주는 생명의 노래일 것이다. 우산을 받쳐들고 봄비 속을 걷는다. 내 눈에 비치는 거리가 한 폭의 봄 풍경..

리라자작글 2023.03.18

길/리라

길/리라 마음의 길을 따라 가노라면 외로운 강을 만나지 기억의 하늘에 핀 구름꽃들을 가슴에 한가득 안고 어두운 밤에도 기도의 등불 켜 길을 걷지 저마다 다른 길을 걷는듯 하지만 길들은 서로 만나 영롱한 별들과 악수하며 새로운 길을 터주지 길은 생각의 숲으로 이어진 고향길과 같아 이미 걸었던 길을 가는 숱한 그리움과 눈물의 발자국들이 얼룩져 있는..

리라자작글 2022.11.12

시월에 /리라

시월에/리라 가을 하늘을 닮고 싶다 저 청정한 그늘 아래 서있고 싶다 가슴 시려도 깊어진 상념의 끝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며 다시 안아보는 서툰 젊은 날의 과오들 무거워지는 머리를 숙이고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사랑했다고 통증처럼 찔리고 또 찔리는 변명때문에 가을은 더욱 아픈 계절 그립다고 보이지 않는 얼굴을 그려봐도 가을은 또 다시 추운 추억의 방 아직은 살아있어서 그래도 고백어린 회한의 거리를 지나 시월의 한 복판에서 서성이는 나의 고루한 영혼이 불쌍하다

리라자작글 2022.10.08

9월의 상념/리라

9월의 상념/리라 더이상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 않고 아침 저녁 소슬한 바람 귓가에 맴돈다 사랑도 그리움도 가을 나무처럼 쓸쓸하다 살아가는 일은 다 그런 것 봄날에 화사했던 미소는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되어 9월을 떠나갈 것이다 가을 나무처럼 생각도 깊어지는 하루는 길고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삶은 그다지 힘들 것도 슬플 것도 없다 말한다 더 이상 불려지지 않는 이름들이 희미하게 지워진 얼굴들이 다시 숱한 가을을 지나갈 것이다

리라자작글 2022.09.02

칸나, 내 사랑/리라

칸나 내 사랑/리라 황금빛 너의 얼굴 내 꿈의 창에 부딪친다 태양 속에서 날아든 듯 가슴이 뜨겁다 7월의 꽃이여 나의 초록의 정원에 햇살을 보내다오 노란 꽃잎 날개쳐 하늘도 높은데 칸나, 내 사랑 피고 지고하는 너의 자리에 나의 고단한 하루가 눕는다 이 여름, 기쁜 네 모습 닮기를 너처럼 고운 색조의 미소 닮기를 칸나, 내 사랑 나도 네 옆에 동무되어 있게해다오

리라자작글 2022.07.14

6월에/리라

6월에/리라 이제 짙푸른 낯으로 하늘을 보렵니다. 여린 마음의 문 닫아 걸고. 조금은 기운찬 두 손을 펴서 뜨거운 태양을 가려 볼 것입니다. 풀섶가 하얀 찔레꽃 향기가 가슴에 차오르면 웃음 띤 얼굴로 여름을 맞을 것입니다. 어떤가요? 지친 삶의 그늘 아래 한숨 짓나요? 이토록 모두가 싱그런 날에 우리 함께 걷지 않을래요? 사방에 우거진 나무들, 흐드러진 꽃들이 반갑다고 손짓하고 있답니다.

리라자작글 202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