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 가까운 지인 들이 그리 흔하지 않은 질병과 큰 사고로 충격 가운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면서도 나를 피해간 시련에 오히려 감사했고 아울러 주변상황을 경계하며 나의 가족과 자신을 위해 며칠을 기도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나는 집안에 깊숙이 보관된 보험증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보험에 들었나 생명보험인가, 암보험인가, 특약은 무엇이고, 보상금은 어떻게 되나, 연체되어 실효된 것은 없나, 이런 저런 보험들을 확인하면서 서로에게 건강검진을 확인시키고 매사에 주의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불안과 안도의 반복 가운데 돌연 내 심장을 툭 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진정 내가 들어있는 영생의 보험, 구원의 보험, '예수그리스도'라는 보험이 나를 깨우는 신호였습니다.
늘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 귀중한 보험. 그런데 그 보험증서는 어디서 찾을까요. 스스로 가입은 한 것은 같은데 그 증서를 어디서 확인하나? 그러면서 우습지만 나는 구원과 영생의 보험에 가입증서를 무엇으로 확인할 것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으니 그것인가? 집사가 되었으니 그것인가? 십일조를 바치니 그것인가? 아니면 매주 주일을 지키니 그것인가? 그러나 어떤 것도 주님이 대가없이 무료로 가입시켜주신 귀한 보험에 내가 가입자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증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 주님을 부르며, 안도하며, 기뻐하며,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순간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육신을 위한 보험은 그토록 챙기면서 주님이 든든하게 들어준 영적 보험에는 아무런 헌신도, 대가도 치루지 않는 뻔뻔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생명보험, 상해보험, 암보험, 교통보험, 이러한 각양각색의 보험가운데 단 몇 차례만 보험금을 연체해도 그 좋다던 보험은 실효되고 맙니다. 그리고 사고(事故)는 자칫 실효될 때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린 보험 영생의 보험을 다시 부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것은 다달이 내는 십일조나 헌금만이 아니라, 온전한 헌신과 사랑의 실천이 주님에게 바치는 보험료임을 다시금 깨달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부르면 주님은 죽어 가는 생명이라도 기꺼이 다시 살려내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보험이 보상할 수 없는 크나큰 능력을 그 분은 가지고 계시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되서야 그 분을 찾는 피보험자가 아니라, 살아서 그 분을 기쁘게 하는 보험료(?)납입이야 말로 영생과 천국에서 더 큰 보상을 달게 받는 약관(約款)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생과 구원의 피보험자로서 주님이 비강제적으로 내놓은 최소한의 약관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타적(利他的)인 사고(思考)와 실천적인 신앙생활로 또 다른 형제를 구원하는데 헌신해야겠습니다.
지금 예기치 못한 질병과 사고로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에게도 주님의 빈틈없는 사랑과 평강이 임하실 줄 믿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거룩한 보험증서를 날마다 자랑하며 확인하며 살아가기를 임마누엘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 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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