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이 깊어 갑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눈 덮인 하얀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방문을 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었는데...지붕 위에도, 장독대에도, 나뭇가지에도...소담하게 쌓여 있는 눈이 어찌 그리 깨끗하고 예쁜지...아무도 밟지 않았던 눈길을 발로 꽃도 만들고 발자국을 길게 남기며 걸었던 그 길이 새삼 그리워집니다.불경기와 안정되지 못한 사회의 분위기가 어두워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 예년 같지 않습니다. 매년 12월이 되기가 무섭게 거리마다 트리 장식이나 캐럴 송으로 온통 요란한데 금년에는 뜸한 느낌입니다.
차라리 요란한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주변의 썰렁한 분위기에 묻혀 성탄절을 덤덤하게 보낼까 조금은 염려가 됩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조용한 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며 성탄절의 참 의미를 깊이 되새겨 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쪼록 우리의 신앙과 삶이 성숙하게 다져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입니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희들은 고향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생각나게 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였습니다. 산골에서 자란 장로님의 아이디어로 농장에서 능금나무를 베어다가 하얀 솜을 입혀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는데 마치 밤새 내린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던 고향집 앞마당의 나무처럼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오소서, 평강의 구주님~마치 우리 예수님을 기쁨으로 환영하는 모습입니다.
그 트리를 보면서 선명하게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우린 예쁘고 멋진 트리를 꾸미기 위해 어른들, 아이들과 산에 올라 크고 멋진 나무를 구해서 교회 예배당에 꾸미는 일은 아이들의 즐거운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소나무를 잘라다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 하얀 솜을 올리고 솔방울에 반짝이를 입히고 은박지 금박지 온갖 색종이로 천사들과 종, 십자가 지팡이 같은 것을 오려서 장식하였습니다.
성탄이브 저녁이 되면, 교회에서는 교회 학생들의 재롱잔치가 펼쳐졌습니다. 여기에 중, 고등학생들도 때론 가세하여 노래와 율동, 연극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는데, 그야말로 올림픽 선수 선발연습 때보다 더 열심히 보름 이상을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연습을 했습니다.
새벽 송, 눈이 쌓여 미끄럽고 날씨도 추웠지만, “축 성탄”이라고 쓴 등불을 들어 어둠을 밝히고 다니던 그 먼 길이 왜 그렇게도 즐거웠는지...어두운 새벽 길을 그 등불에 의지한 채 기쁨으로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찬송가를 부르면 어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의 불을 켜시고 나오셔서 들어왔다 가라고 하시는가 하면서 맛난 과자며 사탕과 이것저것을 싸주시곤 하셨습니다.
또 가진 것 없어 가난하고 병들어서 힘없고 소외된 이웃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따뜻한 선행과 나눔이 풍성한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작고 값없어 보이더라도 그 낮은 섬김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작은 능금에 매달린 앙상한 가지 위에 소복소복 쌓인 흰 눈 사이로 12월의 따뜻한 기억들이 움츠린 마음에 깜빡깜빡 불을 밝혀 줍니다. 마음을 열고 손을 펴서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 더해지는 희망이 넘치던 12월. 성탄절만큼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 모두가 행복해 하는 명절이 있을까요?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께 우리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드릴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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