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문정희 칼럼] 빙초산을 뿌리든 오라, 가을이여

헤븐드림 2021. 11. 9. 08:09

인간의 위대성이란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허물을 벗는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원자탄이 투하된 죽음과 파멸의 도시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생명의 존엄과 희망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능력일 것이다.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가을 주제의 시를 쓴 적이 있다. 코로나 시대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있다.

매미가 마지막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매미는 절체절명의 목청으로 살아 있는 존재의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

글은 더 써서 뭐 하나? 저 많은 휴대폰들… 저 많은 거짓말들… 저 많은 무력감과 덧없음으로 폭염을 견디다가 문득 매미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킨다.

써야지… 써야 한다! 작가는 신분의 존재가 아니라 행위의 존재라는 한 평론가의 말을 되새긴다.

창문을 열고 매미 소리에 더 가까이 마음을 기울인다. 매미는 이 지상에 불과 14일 정도를 살기 위해 알에서 유충으로 탈피를 거듭하며 땅속에서 7년여를 견딘 후에 우화(羽化)하여 매미가 된 것이다. 짧고 빛나는 단 한 번의 지상의 시간! 매미 소리가 생명의 절규로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1945년 8월15일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패망으로 종식되었다. 8월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지에는 꿈에 그리던 해방이 찾아왔다. 그때 히로시마는 죽음과 절망과 폐허가 전부였다. 시민 34만명 중 7만명이 사망했고 13만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절망 속으로 기적처럼 생명의 징후가 나타났다. 바로 매미 울음소리였다. “아, 매미가 운다. 생명이 살아 있다!” 방사능에 녹아 흐물거리는 철제 기둥 사이에서 사람들은 으깨어진 팔다리로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고 한다. 고통에 뒤엉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매미 소리는 희망 그 자체였고 생명의 존엄을 깨우는 감동의 신호였다.

이것을 스웨덴의 시인 하뤼 마르틴손(1904~1978)이 시로 썼다. 그는 서사적 특성으로 실감 나는 시 ‘아니아라’(Aniara: 무, 無, 영어로 nothing이라는 뜻)를 통하여 자연과 존재의 소멸, 삶과 죽음의 순환을 표현한 것이다. 빛이 없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아니아라’에서 탈출하는 8천명의 인간을 탁월한 문학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으로 그는 197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마르틴손 재단은 그 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매미, 즉 스웨덴어로 ‘시카다’(Cikada)라는 이름의 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동아시아의 시인 중에 생명의 존엄을 일깨운 시인에게 수여하는 중요한 상이 되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 복지에 공헌한 사람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 노벨상이라면 원자탄에 의해 파괴된 폐허에서 생명의 존엄을 깨운 매미의 이름을 가진 문학상이 시카다상인 것이다.

노벨상은 상금이 많고 역사도 깊어 세계 최고의 상이 되었지만, 의미로만 본다면 인류사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기금으로 만든 상보다 죽음과 파괴의 땅에서 생명의 존엄과 부활을 일깨운 매미의 이름을 단 시카다상이 더욱 상징적이고 문학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하뤼 마르틴손은 노벨상에 관여하는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자신이 수상자가 된 것을 늘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고 한다.

“빗방울을 잡고 우주를 반영하는 글들”이라는 유례없는 극찬을 받은 수상작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자존과 염결이라고 할까. 위대한 생명의 소유자로서 생사를 뛰어넘는 허물벗기라고 할까. 스스로 지상적 목숨을 끝내고 매미처럼 긴 땅속의 시간으로 숨어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후에 하뤼 마르틴손은 “스웨덴 시의 위대한 개척자”라는 평가와 함께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마스크와 폭염에 지친 이번 여름에도 매미 울음은 극성스럽다고 할 만큼 생명의 기운을 내뿜었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일본 올림픽을 보는 마음은 여러 가지로 미묘했다.

일제 강점의 역사로 인해 한국인인 나로서는 객관화된 시각으로 일본을 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반일(反日)의 안경으로 일본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예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일본을 비롯한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패전과 원자탄의 상처를 벗고 일어난 일본의 여러 모습은 결국 크게 보아 대단한 인간 승리요, 생명의 존엄이 아닐까 싶다.

원자탄을 투하한 미국과 원자탄을 맞은 일본은 현재 가장 친한 친구인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복잡한 국제적 이해관계로 파악하기보다 평화 공존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피해자 일본만 강조해 놓은 전시가 조금 걸렸고, 뜰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햇살 아래 아프게 서 있는 것도 뇌리에 오래 남아 있다.

최근 일본에서 며칠 간격으로 부쳐 온 2권의 책은 매미 소리처럼 소스라치게 나를 희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의 호화 필진이 집필한 그중 한 권은 한국문학을 통해 본 한국의 명소 60곳을 소개한 책이었다. 한국과 한국문학의 충실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한국의 고전문학 근대문학 현대문학을 개괄한 후 현대문학을 촘촘히 짚어냈다. 김소월 정지용부터 이육사 윤동주 박경리 김지하 황석영 그리고 젊은 작가까지 방대한 취재와 문체로 기술한 책이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지난해 한국에 온 일본 시인을 나는 마스크를 쓰고 만난 적이 있다. 글로벌로 가는 메인로드 서울의 강남을 시공간으로 세계화 시대 새로운 한국의 감각을 소개했다. 이 책은 케이(K)-문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현재 일본의 서점가에서 상당한 반응을 얻고 있다 한다. 곧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더 넓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또 한 권의 책은 일본 젠더학회 창립 멤버인 시인 미즈타 노리코의 시집이다. 미국 예일대 출신으로 비교문학자이기도 한 그녀는 한국의 여성 시인에게 “장미 투사”라 부르며 문학 도반으로서의 공감과 열정을 시로 썼다. 시카다상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한데 그녀는 몇 년 전에 일본 출판사의 요청으로 “여성의 몸”을 주제로 나와 대담을 했었다. 정신대 문제에 대해 시종 지성적인 태도로 여성에 대해 생명에 대해 한없는 슬픔과 존귀를 보냈었다.

인간의 위대성이란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허물을 벗는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원자탄이 투하된 죽음과 파멸의 도시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생명의 존엄과 희망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능력일 것이다.

빙초산을 뿌리든 소독약을 뿌리든 맑은 지상의 시간이여, 가을이여, 어서 오라.

 

가을 상처/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 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
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을 울었다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다리 아랜 여전히 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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