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독칼럼

[이경섭 칼럼] 예수 구원과 성령의 능력

헤븐드림 2021. 8. 1. 01:02

 

 

그리스도에 의존된 구원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을 믿는 정통신학은 죄로 죽은 인간은 자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가르친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절반의 진리’라고 비판한다.

입신(入信) 전엔 그 말이 맞지만 그 후엔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부어졌기에 더 이상 전적 무능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입신(入信) 후에도 계속 자신의 전적 무능만 부르짖으며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만 의존한다 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말씀, 성례, 기도’ 같은 외적인 ‘은혜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을 무시하거나, 성령이 믿는 자 안에서 일으키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자조력(self-help ability by grace)’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외적인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은 “택자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88)”임을 알기에, 그것들의 사용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의 궁극적인 도달지가 ‘그리스도 의존(reliance on Christ)’이며, 사람이 그것들(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할수록 더욱 ‘그리스도 의존적’이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실제 ‘말씀, 성례, 기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4,25),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역시 그것들(말씀, 성례, 기도)를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하실 때 쓰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수단”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의존(reliance on Christ)’은 자신을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supernatural works of Holy Spirit)’ 안에 존치시키는 것이기에 그것은 결코 자신을 ‘무능에로의 방치’로 만들지 않는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 14:12)”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뻥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능력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성령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 의존(reliance on Christ)’은 결코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 안에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supernatural works of Holy Spirit)’를 일으켜 인위적(人爲的)인 결과물 이상의 결실을 내기 때문이다.

곧 믿는 자 안에서 ‘구원 역사(the work of salvation)’를 이루고. 또한 ‘거룩한 충동들(the sacred impulse)’을 일으키고 그들이 거기에 반응함으로서 그에게서 갖가지 영적 결과물들을 있게 하신다(갈 5:22-23).

성경에서 종종 ‘성령’을 ‘권능’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가 성도 안에서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역사 때문이다(이런 ‘성령의 능력’ 강조는 개혁주의 진영에서 종종 성령을 비인격화한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성령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고(롬 8:11),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주라 부르게 하고(고전 12:3), 죄인을 거듭나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하고(딛 3:5), 성도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고(엡 3:16), 권능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다(행 1:8),

그러나 삼위일체 성령은 성자 그리스도 없이 독자적인 행보를 하지 않으신다. 언제나 성부와 더불어 성자 그리스도와 일체로 역사하신다.

2천년 전 어느 날 이스라엘의 요단강(the Jordan)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강림하시고 ‘성부’가 천뢰의 음성을 발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기서 세례를 받으신 때문이었다(마 3:16-17).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성부와 성령도 함께 삼위일체적으로 행보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신앙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부와 더불어 성령이 삼위일체적으로 역사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의존돼 있다’,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께 의존돼 있다’, ‘우리의 구원이 성령에 의존돼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과 능력

개혁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말씀을 선호하고, ‘성령을 의지한다(reliance on Holy Spirit)’는 말은 가능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후자를 말하는 이들에게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그것은 ‘오순절주의적인 열광주의’ 혹은 ‘영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일종의 정지작업’ 같은 것. 아니면 지성을 마비시키는 ‘신비(mystery)에로의 몰입’ 정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 의존(reliance on Holy Spirit)’은 그들의 비판처럼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 개념들을 담는 수단 같은 것이 아니다. ‘성령을 의지하자’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자’는 뜻이다.

사람이 ‘그리스도 의존적’이 되어 성령이 그에게 부어지고, 그리하여 그가 성령의 실존을 경험하면 자연히 ‘성령의존적인 사람’이 된다(고전 2:5, 13). 성경이 성령을 언제나 성자 그리스도와 연결지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2, 14)”.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위한 능력 곧, 그로 하여금 예수 생명을 누리게 하고, 그를 역동적이게 하는 힘이다. 그 성령의 능력이 그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며,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게 한다.

설교자들에겐 말씀을 증거 하게 하는(고전 2:13) 힘이고, 전도자들에겐 전도의 능력(행 1:8)이고, 봉사자들에겐 봉사의 능력(빌 3:3)이고, 고난당하는 자들에겐 소망의 능력이다(롬 15:13).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에서 막 뛰노는 것은 그들 안에 불같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성도들 안에는 ‘성령의 불(the fire of Holy Spirit)’이 있으며, 그 불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한다.

밟아도 죽지 않는 질경이 같은 생명력, 사단이 아무리 꺼버리려고 해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꽃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 있는 영원불멸(the eternal immortality)의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