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371

꽃이 있는 세상/이향아

꽃이 있는 세상 / 이향아 지상에서 빛나는 이름 하나 누가 물으면 꽃이여, 내 숨결 모두어 낸 한 마디 말로 그것은 '꽃입니다' 고백하겠다 너와 사는 세상이 가슴 벅차다 바람 몹시 불어서 그 사람이 울던 날도 골목마다 집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이 이별로 얼어붙던 날도 낮은 언덕 양지쪽 등불을 밝혀 약속한 그 날짜에 피어나던 너 꽃이 있는 세상이 가슴 벅차다 간직했던 내 사랑을 모두 바쳐서 열 손가락 끝마다 불을 켜 달고 나도 어느 날엔 꽃이 피련다 무릎 꿇어 핀다면 할미꽃으로 목숨 바쳐 핀다면 동백꽃으로

서정산책 2023.04.21

내 마음 속의 풍경 하나 /허형만

내 마음속 풍경(風磬) 하나 1 / 허형만 내 마음 속에 풍경 하나 살고 있지 심지 곧은 하얀 자작나무 맨 꼭대기에나 살고 있는지 바람만 건 듯 불어도 금새 소리를 밝히는, 한겨울 까마귀떼 몰려와 콕콕콕 심장을 조을 땐 한결 더 울림이 잦은, 그리하여 오늘 밤처럼 오쩌지 못하며 잠 못 이룰 때 그것은 순전히 내 마음 속 풍경도 잠 못 이루며 설친 탓인지

서정산책 2023.04.16

봄날, 사랑의 기도/안도현

봄날, 사랑의 기도/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이며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

서정산책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