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371

겨울 고해/홍수희

겨울 고해/홍수희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이 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램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서정산책 2024.01.24

가을/헤세

'가 을' - 헤 세 덤불 속 너희 새들 너희의 노래 얼마나 퍼덕이는지 누렇게 물드는 숲을 따라 ㅡ 너희 새들아, 서둘러라! 곧 온다 부는 바람이 곧 온다 베는 죽음이 곧 온다 무서운 유령이 그리고 웃는다 우리 가슴이 얼어붙도록 정원이 그 모든 호화로움을 또 삶이 그 모든 광채를 잃어버리도록 숲 속의 새들아 작은 형제들아 우리는 노래하자 즐겁자꾸나 머지 않아 우리는 먼지이다

서정산책 2023.11.22

아침/문태준 와운산방/장석남

1993년 겨울 무렵이었다. 서울 정릉 산꼭대기, 시로 갓 등단한 대학생 김연수의 허름한 자취방. 연탄보일러의 난방 호스마저 쥐가 갉아먹어 냉골 그 자체였던 자그마한 쪽방에 시인 지망생과 다섯 살 위 등단 시인이 마주 앉았다. 습작 뭉치를 늘 품고 다니던 김연수의 고향 친구 문태준과 스물여섯에 펴낸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의 쾌거를 이뤘던 장석남. 그나마 엉덩이 밑에 걸친 스티로폼 조각 하나(물론 집주인과 시인 지망생은 이마저도 없었다)에 의지해 통음했던 가난한 겨울밤이었지만, 선배는 문태준의 품에서 나왔던 원고를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했다. 이듬해 시인 지망생의 신분을 시인으로 격상시켰던 문태준의 등단작 '처서(處暑)'였다. 두 시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장석남(47..

서정산책 2023.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