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세상엔 평생을 지니고 싶도록 좋은 문구, 자신의 좌우명이 될 문구, 유명인의 격언 등 인생의 좌우명이 될만한 문구가 수도 없이 많다. 이러한 문구는 무언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힘이 되기도 하고 인생관 확립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처지와 형편과 이상에 따라 좋아하는 문구는 제각각이다. 나에게도 때에 따라 용도에 맞게 좋아하는 문구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고 늘 되뇌는 문구는 바로 ‘주님은 다 아시니까’라는 말이다. 어느 날, 여고 동창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카톡 프로필에 적어 놓은 ‘주님은 다 아시니까’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뭔지 모를 든든함이 생기고 그렇게 포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현대인은 외롭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면 행복하다. 어쩌면 이 세상에 가득한 아우성과 다툼은 나를 알아달라는 항거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을 알면 외로운 세상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과 여유가 생긴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한한 존재인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기에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믿을 사람은 이 지구 위에 없는지도 모른다. ‘너 없으면 못산다’라고 하여 결혼하였지만 얼마 후엔 ‘너 있어서 못 살겠다’라고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신다. 내 머리털을 세심은 물론 내 생각까지 다 아시는 분. 바로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저 영원한 나라에 이를 때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실 주님이시다.
그 주님은 내가 마음이 울적할 때도, 속상할 때도, 기쁠 때도 내가 겪는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런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니까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다 아시니까 말이다. 다 아시는 분이시니까 내가 더 이상의 설명도, 해설도 필요 없다. 그저 그분을 의지하고 맡기기만 하면 된다.
때로 세상이 두렵고 불안할 때도 있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보면 도무지 평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의 그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그 사랑을 잊고 방황하기도, 멍청해지기도 한다. 그러할 그때도 다 아시는 주님을 생각하면 안심이 되고 해결이 되건만 다 아시는 주님을 생각하기보다 당면한 문제를 더 크게 보는 나의 불신앙이 문제다. 주님은 다 아시는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때만 다 아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때도, 아플 때도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 나의 주님이시다. 그렇기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친다 해도 내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주님만 계신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해로 인해 억울하고 분한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럴 때 그냥 묻고 넘어가기보다는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 오해를 풀고 싶어진다.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은 심정이다.
그러나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모든 일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아니, 안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다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냥 진실을 몰라주는 것이 야속했던 때도,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절박한 상황일 때도, 내 곁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적막감과 외로움이 나를 감쌀 때도 주님은 다 아시니까 참을 수 있다.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니까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다 아신다는 것이 용기와 힘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 아시는 주님이시니까 내가 간혹 나쁜 마음을 먹는 것도 다 아신다. 그리고 내가 짓는 죄도 다 아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벌을 내리실까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그렇기에 다 아시는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셔서 죄를 덜 짓게 하고, 조금이라도 조심하여 살게 한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다.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자주 듣는 이야기도 새삼스럽게 마음에 꼭 들어올 때가 있다. 교회학교에서 주님은 어디나 계셔서 나의 모든 행동을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듣고 온 날. 나는 나의 엄마께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하나님은 어디나 계셔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는데…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나를 볼 수 있는지 하나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셔요”라고. 그러면서도 혹시 하나님이 모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에 전깃불이 없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곳에 내가 있으면 모르지 않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한 마디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설명해 주셨다. 그 사실은 어린 내게 든든한 힘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주님은 다 아시니까’라는 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든든한 말이고 행복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 아시는 주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데 그렇게 온전히 맡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 아시는 주님께 맡기고 싶으나 내 자아가 그것을 그리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려 하건만 나도 모르게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집어 드는 미련을 떨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님은 다 아시니까’를 생각하며 인내하며 담대하게 힘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염려와 근심과 걱정 속에서 괴로워하는 못난 나의 모습을 본다. 그러다가 이런 못난 모습까지 다 아시는 주님 앞에 조아린다. 그리고 노력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 덕분에 나를 이만큼 지키고 살아온 것은 감격할 은혜다. 그래서 다 아시는 주님께 나를 맡기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갈 것이다.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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