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392

나무 예배당/정연복

나무 예배당/정연복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 하늘만 우러러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저마다 하나의 예배당이다. 떠벌리는 기도 요란스러운 찬송은 없어도 왠지 그 앞에 서면 가만히 마음의 옷깃 여미며 세속의 들뜬 욕심 따위 한순간 사라지고 맑아지는 정신 속 나의 참 모습에 새로 눈뜨는 말없이 성스러운 곳 나무 예배당. 찬 겨울 빈 가지들뿐인 나무에 날아와 앉은 두 마리 작은 새 지저귐도 없이 미동(微動)도 없이 숨 멎을 듯한 고요 속 잠시 깊은 묵상에 잠겼다가는 허공으로 가벼이 날아간다.

서정산책 2021.06.13

유월이 오면/김용택

유월이 오면/김용택 유월이 오면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 때동나무 하얀 꽃들이 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히면 환한 때동나무 아래 나는 들라네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가면 산딸나무 꽃도 있다네 아, 푸르른 잎사귀들이여 그 푸르른 잎사귀 위에 층층이 별처럼 얹혀 세상에 귀를 기울인 꽃잎들이여 강천산에 진달래꽃 때문에 봄이 옳더니 강천산에 산딸나무 산딸꽃 때문에 강천산 유월이 옳다네 바위 사이를 돌아 흰 자갈 위로 흐르는 물위에 하얀 꽃잎처럼 떠서 나도 이 세상에 귀를 열 수 있다면 눈을 뜰 수 있다면 이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나 혼자라도 나는 강천산에 들라네 이 세상이 다 그르더라도 이 세상이 다 옳은 강천산 때동나무 꽃 아래 가만가만 들어서서 도랑물 건너 산딸나무 꽃을 볼라네 꽃잎이 가만가..

서정산책 2021.06.03

봄이 오면/백순

봄이 오면/백순 연두빛 새 싹 움트는 봄이 오면 보드러운 풀잎에 생명의 말씀 적어 온 땅에 퍼트리고 짙푸른 나뭇잎 무성한 여름이 오면 싱그러운 숲가운데 전능의 말씀 새기어 온 산하에 편지를 띄운다 풍성한 과일을 익히는 가을이 오면 곡식 한알 한알에 축복의 말씀 가득히 담아 온 가정에 소식을 배달하고 하얀 눈송이 훨훨 흩날리는 겨울이 오면 사철나무 수북히 쌓인 눈위에 은혜의 말씀 실어 온 누리에 전달한다 그래도 그래도 주님사랑 넘치면 온 몸에 머리위에서 발끝까지 사랑의 말씀 문신 새기어 주님의 서신으로 나를 띄운다

서정산책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