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욥기 4장-6장

헤븐드림 2021. 8. 15. 00:42

 

4장: 엘리바스--죄 없이 망한 자가 없다

[1-6절]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너의 경외함이 네 확신이 아니며 네 행위를 완전히 함이 네 소망이 아니냐?

본장은 욥의 친구 중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이다. ‘염증이 난다’는 원어(라아)는 ‘참을 수 없다. 조급하다’는 뜻이라고 본다.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는 말은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조급하지 않겠느냐?”는 뜻 같다. 엘리바스는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말을 듣고 그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바스는 전에 욥이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 즉 힘이 빠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 즉 낙망하여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러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니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니 네가 놀란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려움 당한 이웃을 위로하기는 쉬우나 막상 자신에게 그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엘리바스는 또 욥에게 “너의 경외함이 네 확신이 아니며 네 행위를 완전히 함이 네 소망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장래를 확신케 되고 행위를 완전히 할 때 장래를 소망케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형통함과 평안함이 있다. 시편 25:12-1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또 행위를 완전히 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언 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7-11절]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엘리바스는 또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정직한 자는 망하지 않으나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는 재앙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을 받을 것이며 사자같이 강한 자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시고 그는 엎드러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악한 자들은 망할 것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잠언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기쁨과 행복]은 꺼지느니라.” 잠언 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섭리자, 심판자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은 신약성경도 여전히 증거하는 성경 진리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2-21절]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하여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異像)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그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때 내가 종용한[조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조석[아침부터 저녁]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하루살이에게라도’(19절)는 구절은 ‘하루살이 혹은 나방(moth) 앞에서도’(KJV, NASB)라는 뜻이라고 본다. ‘장막 줄’(21절)이라는 원어(이스람)는 ‘그들의 탁월함’(KJV) 혹은 ‘그들의 장막 줄’(NASB, NIV)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장막 줄이 뽑힌다는 말은 장막을 거둔다는 뜻으로 사람의 육신의 죽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엘리바스는 사람이 아무리 의롭고 거룩하다 하여도 창조자 하나님보다 의롭고 거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욥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욥기 9:2,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수아 사람 빌닷도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라고 말했고(욥 25:4), 엘리후가 욥에게 노를 발하며 그의 부족을 지적할 때도 그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의롭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욥 32:2).

사람은 실상 하나님 앞에서 의(義)를 내놓을 것이 없는 죄인이다. 그는 죄성을 가진 누추한 피조물이다. 더욱이,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이며 조만간 죽을 존재이고 그의 삶은 덧없이 짧고 허무하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사 40:6; 벧전 1:24). 또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셔서 인생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부족과 허무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과 천국과 영생만 사모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의 행위를 완전케 하자. 그것이 성경의 교훈이요 거기에 소망과 평안이 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둘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망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다. 시편 1:6,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잠언 13:9,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잠언 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하고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하신 완전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부족, 또 비천과 허무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이며 연약한 죄성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다. 사람의 행위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 순종하며 그의 말씀대로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존재이며 우리의 의는 누더기옷과 같음을 알고 겸손해야 한다.

 

 

 

5장: 엘리바스--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

 

1-16절, 고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자

[1-2절]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천사들]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이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키느아)[화](BDB)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멸함이니라].

사람이 왜 분노하고 화를 내는가? 그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지 않고 교만하고 욕심을 부리고 불만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화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이며 그것은 그들에게 해가 되게 한다. 그것은 오늘날 의학 상식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람의 몸의 질병들의 원인이 되며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든다. 또 그것은 사람으로 마귀의 시험에 떨어지기 쉽게 만든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6-27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그 마음에 온유와 겸손, 자족함과 이웃 사랑이 있으면, 분노와 화를 많이 줄일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여기에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길도 있다. 즉 사람이 건강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야 하며(잠 3:7-8),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과로하지 말고 적당한 노동이나 운동을 하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되 가급적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

[3-5절] 내가 미련한 자의 뿌리박는 것을 보고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 자식들은 평안한 데서 멀리 떠나고 성문에서 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미련한 자는 그 자녀들도, 그 재산도 다 복되지 못하다. 사람은 다 미련한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자신도, 그의 자녀도, 그의 재산도 복되지 못할 것이다.

[6-7절] [비록]()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아니지만](KJV),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모든 사람들의 고난과 불행은 타고난 것과 같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기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여자에게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선언하셨고 아담에게는 땀 흘리는 수고의 삶을 선언하셨다. 또 땅은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창 3장).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고난이며 고난으로 충만하다. 욥은 인간의 삶을 전쟁이나 품꾼의 날에 비교하였고, 또 인생이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말하였다. 욥기 7:1,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차바)[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욥기 14: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야곱은 자신이 지나온 130년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하였고(창 47:9), 하나님의 종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90:10).

사람의 참된 평안과 영생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11:28), 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8-11절]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일으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들, 기이한 일들을 셀 수 없이 많이 행하셨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그가 행하신 기이한 일들로 가득하다. 시편 104:24는,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우주를 운행하시고 천지만물을 주관하신다. 그는 수없이 많은 짐승들과 새들과 물고기들을 기르시고 먹이신다. 시편 104:27은,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에서의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도 그러하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인류 역사를 섭리하신다. 그는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그는 요셉의 생애를 섭리하셨고, 모세의 생애를 섭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많은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다. 그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또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기이한 일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의 기적, 죽음, 부활을 통해 복음을 확증하셨고 신약교회를 세우셨고 자기 백성에게 천국의 산 소망을 주셨다. 그는 오늘날 우리 개인의 영육의 삶도 섭리하신다. 그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2-14절]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간교한 자들, 세상적으로 지혜로우나 심령이 비뚤어져 있고 패역한 자들의 계획과 계교를 다 파하신다. 그는 그것들을 다 헛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시편 9:15-16은,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라고 말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3:19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하신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형들이 아버지 몰래 요셉을 팔아버린 일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는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죽이려던 하만의 계획도 헛되게 하셨고 도리어 그와 그의 동료들이 죽임을 당케 하셨다. 또 그는 은 30에 주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의 계획을 헛되게 하셨다. 유다는 그가 받은 돈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도로 갖다준 후에 목매어 죽었다. 예수께서는 저 악한 유대 지도자들과 또 주님을 배신한 제자에 의해 십자가에 내어준 바 되었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15-16절] 하나님은 곤비한(에브욘)[궁핍한] 자를 그들의 입의 칼에서, 강한 자의 손에서 면하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이며 또한 긍휼의 처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고난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악한 자들의 입과 손에서 건져내어 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정당한 일 외에는 분노하지 말자. 우리는 교만과 욕심과 불만과 미움과 시기를 버리고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온유와 겸손, 의와 선, 사랑과 자족함으로 살자.

둘째로, 사람은 고난의 삶을 사는 존재이다. 엘리바스는 사람이 고난을 위해 났다고 표현한다. 세상의 고난은 근원적으로 죄에서 왔다. 우리는 오직 사람의 참 평안과 영생이 되신 구주 예수님 안에 거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악을 벌하시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행치 말고 악인들의 계획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공의로운 섭리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계명대로만 행하자.

 

17-27절, 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

[17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 왜냐면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표이기 때문이다.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징계는 유익이 많다. 우선,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로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만든다. 시편 119:67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하고, 시편 119:71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말한다. 또 히브리서 12:10-11은,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말한다.

모든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게 만드는 유익이 있다. 시편 39편에 보면, 다윗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땅의 것이 그림자같이 헛됨을 깨닫고 고백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39:6-7). 사도 바울도 아시아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죽을 고생을 하였을 때 이를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고후 1:8-9).

[18-20절] [이는]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고치심이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 자체로 끝나지 않고 유익을 주시고 회복의 은혜를 주신다. 부모는 자녀를 훈계하고 책망하고 벌을 주고 또 필요한 경우 매도 들지만 그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려 함이며 매를 때린 후에도 상처에 약을 발라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를 때리시고 고통을 내리시지만, 그 고통을 물리쳐 주시고 그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징계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개인이나 세상의 최종적 심판은 무서운 것이지만, 현실의 삶의 여정에서 받는 하나님의 징계는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섯 가지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섯 번이나 일곱 번 잘못을 해서 징계를 받아도 회개하면 구원해주시고 재앙을 거두어 주신다. 사람은 부족해서 실수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오래 참으시고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할 때 고쳐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주께서는 세 번이나 그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통회자복했을 때 그의 큰 실수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찾아오셨고 그에게 “내 양을 치라”는 사명을 다시 주셨다. 주께서는 그의 부활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믿음 없는 도마에게도 찾아와 그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셨다. 주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서로 용서하라고 교훈하셨다(마 18:22). 이것이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를 기근으로부터 지키시고 건져주신다. 시편 33:18-19는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모든 생물들이 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 주시기를 바란다(시 104:27).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자이시다(마 6:26). 그는 까마귀 새끼가 그를 향해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욥 38:41).

또 하나님께서는 전쟁 때에도 우리를 칼 권세에서, 즉 오늘날 말로 하면 총알이 빗발치며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건지신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23:14는,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많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매일 찾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다고 증거한다.

[21절]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들의 비난의 말들로부터도 피하여 숨게 하신다. 시편 31:20은,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口舌)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멸망이 올 때도 피할 길을 주신다. 시편 91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새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므로 성도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대낮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한다고 고백하였다(시 91:1-8).

[22절] 네가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 아니할 것은.

성도는 멸망과 기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종류의 멸망이든지, 어떤 정도의 심한 굶주림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과 공급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로 고난을 주시지만, 그는 우리가 진실히 회개할 때 그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또 성도는 들짐승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리와 늑대, 또는 멧돼지 등의 들짐승들은 농작물을 해치고 사람도 해친다. 신명기 32:2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징벌로 들짐승들을 보내실 것을 경고하셨다. 에스겔 선지자는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징벌의 방법으로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보내실 것을 예언했다(겔 5:17; 14:21; 33:27). 에스겔 14:2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重)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害)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며 순종하는 자기 백성을 들짐승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이다.

[23절] 밭에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

밭의 돌들은 땅을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게 만든다. 또 날카롭고 뽀족한 돌들은 밭갈 때 사람의 손과 발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밭에 돌이 우리와 언약을 맺게 하실 것이다. 또 들짐승도 우리와 화목케 하실 것이다. 들짐승이 우리에게 위협이나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에스겔 34:25는 하나님께서 회복의 시대에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24절]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양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장막의 평안함이란 가정과 가족들의 평안함, 즉 가족들의 건강과 일용할 양식이 있음과 환경적 평안과 가족들 간의 화목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시면, 가족들에게 질병과 궁핍과 불화가 찾아올 것이다.

또 양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다는 것은, 양들이 질병에 걸려 죽거나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는 일이 없이 다 건강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말로 우리의 직장과 사업에 또 가정의 물질생활에 어려움이 없이 평안한 것을 말한다. 땀흘려 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지만, 그 수고의 대가를 누리고 물질적 유여함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신명기 28:4-5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25-27절]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예가 땅에 풀 같을 줄을 네가 알 것이라.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곡식단이 그 기한에 운반되어 올리움 같으리라. 볼지어다, 우리의 연구한 바가 이 같으니 너는 듣고 네게 유익된 줄 알지니라.

자손들의 수적 번창은 하나님의 복이다. 다산(多産)은 하나님의 복이다(시 127:4-5).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이다(시 127:3). 또 병약함 속에 겨우 연명함이 아니라 상당한 건강 속에 장수(長壽)함은 하나님의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에 대해 장수의 복을 약속하셨다(출 20:12). 잠언 16:31은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말했고, 잠언 20:29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이 백발이라고 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며 원숙한 인격자가 되어 임종을 맞는 것은 복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징계는 복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또 유익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를 거룩케 만들고 믿음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고 달게 받아 거룩하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또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회개하는 자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신다. 그는 일곱 가지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기근과 전쟁과 사람들의 비난과 들짐승에게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 그는 마침내 우리의 가정에 평안을 주시고 생업에 복을 주시며 물질적 여유를 주시고 장수(長壽)와 다산(多産)의 복을 주신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고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바르게 살기만 힘써야 한다.

 

 

 

6장: 욥--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1-7절]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분한(카아스)[고통](NASB, NIV)을 달아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좋겠도다. 이는 그것이]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것임이로다].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성급]하였구나(BDB, NASB). [이는]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

욥의 고난은 재산의 상실, 자녀들의 죽음, 몸의 병이었다. 이것은 전능자의 화살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었다. 즉 욥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했다. 욥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취하셨다고 고백했었고(1:21),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재앙도 주신다고 고백했었다(2:10).

그러면 해결책도 하나님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에서 그를 구원하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편을 회복시키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다시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32:39에서,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8-9절]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끊으시고 데려가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며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됨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10-13절] 그러할지라도[나를 죽게 하실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무자비한,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카카드)[부인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지혜(투쉬야)[건건한 지혜 혹은 영속적 성공]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욥은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위로를 받고 기뻐한다고 고백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요 기쁨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은 까닭에 얻은 위로와 기쁨이었다. 시편 119편의 저자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119:50, 92). 성도에게는 위로와 기쁨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신비한 위로와 기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 증거하였다(고후 8:2).

[14-15절]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고난 당하는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그는 전능자 경외하기를 폐하도다.] 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거짓되이 행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

욥은 지금 고난 당하고 있으나 그를 위로하러 온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폐한 자와 같고(KJV, Poole), 마치 우기(雨期) 외에는 말라 있는 시내(와디 wadi라고 부름)와 같다.

[16-23절]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취었을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그 길들은 굽어지고 없어지는도다](KJV, NASB)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리고[바라던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너희도 허망한 자라.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대적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속(救贖)하라 하더냐?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일진대 고난 당하는 친구를 동정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마음과 그의 고통스런 처지를 이해하고 같은 마음과 감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고(엡 4:32),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같은 감정을 가지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했다(벧전 3:8).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도 이웃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24-27절]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 너희가 말을 책망하려느냐?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

욥은 자기를 향한 자기 친구들의 책망이 잘못된 책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의 허물을 구체적으로 지적함이 없는, 단지 추측만 가지고 하는 막연한 책망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고 말한다. 책망은 확실한 잘못에 근거해야 한다. 또 그는 남의 말꼬리나 잡는 책망도 잘못이라고 한다. 절망하는 자의 말은 바람 같은데 그 말꼬리나 잡고 책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또 그는 그들의 책망이 동정심이 없는 책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너희는 고아를 제비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남을 책망하려면 그의 허물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지적하며 책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상대방의 말꼬리나 잡는 자가 되지 말고 그의 말의 중심내용에 대해 논하며 잘못된 점을 책망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책망은 동정심을 가진 책망이어야 할 것이다.

[28-30절] 이제 너희가 나를 향하여 보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

욥은 자기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 확신하며 말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4장에서 자신이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고백하였다. 고린도전서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의 판단에 스스로 자책할 것이 없을 때 담대함을 얻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2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말했다.

욥기 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자. 우리는 우리의 현실이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인 줄 알자.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남의 탓으로만 돌려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자.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자.

둘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의로운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자.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우리는 의를 행함으로 고난 중에도 기쁨과 위로를 얻고 담대히 살자.

셋째로, 우리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지 말고, 변함 없는 참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고난 당하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고 구제하고 선을 베풀자. 또 우리는 남에게 잘못된 권면이나 책망을 하지 말고 바른 지식과 동정심을 가지고 권면하고 책망하자.

 

묵상

 

욥기를 읽으며 인생의 진면목을 본다. 슬프고 불완전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일이 우리에게도 파도처럼 범람한다.

욥의 심정을 묵상하며 나도 많이 마음이 울컥한다. 상실과 절망 속에서 그의 모습이 처참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옳으시다고 하는 그는 참 자랑스럽다.

세 친구의 조언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우리 인생들이 살아가며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생각과 마음과 행실을 분명히 아는 그가 참 부럽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의로운 자라고 자랑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면 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질문이 관건이다.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말자.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삶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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