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그 고난 중에 두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그것을 알기를 원한다.
[3-4절]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호의의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욥은 하나님께서 악한 꾀를 품는 악한 자들을 징벌하지 않으시고 호의를 베푸시는 것 같음에 대해 묻는다. 또 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외모로 보고 악한 자를 선한 자로 잘못 판단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다르지 않으신가라고 반문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삼상 16:7) 공의로, 완전하게 판단하실 것이다.
[5-7절]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査實)[실상을 조사]하시나이까?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그러나]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자가] 없나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달리 사람의 일생의 모든 일들을 단숨에, 완전히, 정확하게 파악하시고 판단하시며, 그래서 자신이 악하지 않음도 아실 것이지만, 자신이 현실의 고난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8-9절]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에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게 하시면, 그 몸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10-11절]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출산케 하시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사람의 몸과 신체기관의 시작은 참으로 신비롭다. 엉긴 젖 같은 작은 수정란이 어떻게 정교한 몸과 몸의 각 기관이 되는지 참으로 신비롭다.
사람의 몸은 9,000억개 이상, 아마 수조 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또 사람의 몸에는 200개 이상의 뼈들과 600개 이상의 근육들이 있다고 한다. 또 눈, 귀, 코, 입 외에 약 130개의 많은 기관들이 여러 계통들을 구성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위와 식도와 내장과 간 등으로 구성된 소화기 계통, 코와 폐 등으로 구성된 호흡기 계통, 피와 심장 등으로 구성된 순환기 계통, 임파와 호르몬 등으로 구성된 내분비 계통, 뇌, 척추, 신경 등으로 구성된 신경계통, 그리고 비뇨기 계통 등이 그러하다고 한다. 사람의 몸의 구조는 참 정교하다.
[12절]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몸뿐 아니라 생명을 주셔서 살아 움직이게 하셨는데, 그것은 그 몸 속에 영을 주셨기 때문이다. 영 혹은 영혼은 사람의 생명 원리이다. 그것이 몸과 결합되면 몸은 산 자가 된다.
[13절]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고난의 일들, 현재의 재앙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섭리하신다.
[14절]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
욥은 자신이 범죄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범죄한 적이 있으나 하나님의 죄사함을 믿었음을 보인다. 그러나 지금 그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해주셨는지 의문을 가진다.
[15절]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
욥은 자신이 악하면 화를 받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데도 머리를 들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많은 환난과 부끄러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인가?
[16-17절]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번갈아 가며]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번갈아 가며](칼리포스 웨차바)[교대(交代)들과 군대가](원문) 치는 것 같으니이다.
욥은 머리를 높이 들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항변하지만, 주께서는 사자처럼 그를 대하시고 그의 기이한 능력을 그에게 나타내신다. 주께서는 그의 친구들로 번갈아 가며 그를 치게 하시며 그를 향해 진노를 더하시며 군대가 번갈아 가며 치는 것같이 하신다. 의인도 때때로 고난을 당하고 그 고난의 이유를 잘 모를 때가 있다.
[18-19절]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있어도 없던 것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 왜 자신을 태어나게 하셨는가라고 하나님께 질문한다. 그가 차라리 태어날 때 죽어서 태어났더라면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있어도 없던 것같이 되어 태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20절]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저으기[조금이라도] 평안하게 하옵시되.
욥은 고난 중에 자신의 일생이 짧음을 더욱 느낀다. 다윗도 죽음 앞에서 인생이 손넓이만큼 되고 없는 것같이 짧다고 고백하였다(시 39:5). 욥은 이 짧은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고난을 그치시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거두시고 자신을 버려두셔서 조금이라도 평안을 얻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이 수고로운 세상에서 참 평안은 오직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
[21-22절]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세데르)[질서]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욥은 그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즉 그가 죽기 전에 그렇게 해달라고 소원한다. 무덤은 흑암의 땅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질서가 없다. 무질서와 혼돈뿐인 곳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경건하고 의롭게 살다가 당하는 고난을 참고 악인의 형통에 대해 불평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오직 바르고 선하게만 살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다리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신비한 창조물임을 알고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영광을 돌리자.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고난의 이유를 잘 모르는 때에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선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이사야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넷째로, 우리는 짧은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만 참 평안을 주심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11장: 소발--욥에게 회개를 촉구함
[1-6절]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바드)(공허한, 쓸데없는)(BDB)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소발은 욥이 자기의 말이 정결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고 말한다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벌하심이 그의 죄보다 경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욥의 경우에는 맞지 않다. 욥의 고난은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었다. 욥기는 그가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였다고 말한다(욥 2:3; 42:7-8).
[7-9절]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지옥]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밋다)[크심]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사람은 하나님 자신과 그의 지혜와 지식을 다 알 수 없고, 또 그의 섭리의 모든 일들, 그 목적과 그 방법도 알 수 없다. 시편 145: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8:17,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하시는 일들에 대해 우리 자신의 지혜로 알 수 없고 오직 성경말씀을 통해 또 하나님의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다.
[10-12절]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開廷)하시면[법정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허망한 사람이 지혜가 있으리라](NASB).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가 하시는 일들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또 그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행위들, 특히 사람의 모든 악한 행위들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그러나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듯이, 허망한 사람은 지혜와 지식이 없다.
[13-14절]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가다듬고, 준비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우리가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 우리 손에 죄악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멀리 버려야 하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손을 깨끗이 해야 한다. 우리는 죄악을 멀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죄와 불의가 우리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집에서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 아간은 멸망할 물건을 장막 땅 속에 묻었다가 온 가족이 멸망을 당하였다(수 7장). 아나니아 부부는 함께 하나님과 사도 베드로를 속이다가 즉사하였다(행 5장).
[15절]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얼굴을 못 든다. 죄를 짓고도 얼굴을 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뻔뻔한 자이거나 위선적인 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면 담대함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담대함의 비결은 의를 행하는 데 있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요한일서 3:21,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죄는 양심에 불안을 가져오지만, 의는 양심에 평안과 담대함을 준다.
[16-17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그러나 우리가 손을 깨끗이 하고 악을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우리는 곧 환난을 잊을 것이며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다. 지금 환난이 강물처럼 부닥쳐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비가 그치면 곧 말라버리는 골짜기같이 곧 지나갈 것이다.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자는 평안을 얻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그의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을 것이며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다.
[18-19절]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보고 안전히 쉬리니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
‘첨을 드린다’는 원어(킬라, 피엘형)는 ‘호의를 구한다’는 뜻이다. 성도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며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성도를 두렵게 할 자가 없고 도리어 그에게 호의를 구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20절]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
‘기운이 끊친다’는 말은 영혼의 호흡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악한 자는 불경건하고 악하고 회개치 않는 자를 가리킨다.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 재앙을 피하여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한다. 그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거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악인은 소망이 없다. 악인의 소망은 절망이다. 그의 소망은 기운의 끊침 곧 죽음뿐이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벌하심은 우리의 죄보다 가볍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에게 내리시는 징계는 실상 그들의 죄보다 가볍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달게 받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고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작은 지식을 가질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또 그의 하시는 모든 일들도 측량할 수 없다. 또 그는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정확히 다 아시고 공의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그가 주신 성경을 읽고 배움으로써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기도할 때 우리의 손에 죄가 없고 우리의 집에 죄가 없어야 담대함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실을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품거나 또 우리 집에 죄가 있으면 우리의 양심을 불안하고 두렵게 하실 것이다.
넷째로, 죄는 불행과 재앙의 원인이지만, 죄를 회개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평안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환난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12장: 욥--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형통을 허용하셨다
[1-5절]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편안한 자는 발이 미끄러지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재앙을 멸시하는구나](NASB).
욥은 자신의 경건과 도덕적 삶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음을 증거한다. 그는 자신의 의로움과 순전함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실족하는 자같이 재앙을 당하고 있고 또 지금 친구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6절]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소발은 앞장에서 욥의 재앙이 그의 죄의 결과이므로 죄를 회개하라고 욥에게 말했는데, 욥은 이제 그의 권면을 반박한다. 모든 재앙이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왜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한가라고 반문한다. 과연, 세상에는 악인이 평안하고 형통한 일들이 있다. 시편 73편도 악인의 평안과 형통에 대해 말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시 73:4-5, 12, 14).
[7-8절]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욥은 악한 자들이 형통하다는 것은 자연계도 아는 진리라고 말한다. 자연계는 강한 것들이 약한 것들을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약한 짐승들을 잡아먹고, 독수리나 매는 약한 새들을 잡아먹고, 상어 같은 큰 물고기들은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 강한 것들은 평안한 것 같고 형통한 것 같다.
[9-12절]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네페쉬)[생명](NASB, NIV)과 인생들의 영(루아크)[호흡](KJV, NASB, NIV)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이 모든 자연계의 현상은 하나님의 손이 행하신 것들이다.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들이다. 인간 세계에서 악한 자들이 활개치고 일시적으로 형통한 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며 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들이다.
이런 도덕적 무질서는 창조 세계의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 세상은 본래의 도덕성과 질서를 잃어버렸고 악화되어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고 천국에서는 완전한 의와 질서가 있을 것이지만, 세상에서는 악인이 형통한 일들이 있다. 이것은 단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도덕 개념으로는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않는다.
[13-25절]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이지 못하느니라.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속하도다.] 모사(謀士)[고문들]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열왕의 맨 것을 풀어[푸시며]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크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만민의 두목들[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개인들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국가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다 지혜와 권능, 모략과 명철이 충만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 영원하신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유일하신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그가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주관하시고 인간 나라를 주관하신다. 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다니엘 4:17,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또 세상에는 악인들이 형통하고 의인들이 고통 당하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일들이 있다. 또 세상에는 인간의 능력 밖의 일들, 즉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다 주권자 하나님의 손 안에서 되어지는 것들이다. 전도서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욥은 자신의 경건과 도덕적인 삶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인의 형통함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홀로 다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도덕적 무질서로 인해 당황하거나 낙심치 말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고 그의 공의로운 심판도 믿자. 우리는 오직 경건하고 성경의 교훈에 절대순종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의인은 결국 승리할 것이며 악인은 결국 망할 것이다.
묵상
이 땅에서의 삶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하지만 그 중에 온갖 역경과 고난도 있다. 혹시 그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자. 그는 참으로 불행한 자다. 왜냐하면 삶의 풍족함과 편안함 속에서 부자와 같이 살다 결국은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욥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에는 우선 하나님과 사단, 욥과 욥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네 친구가 있다.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구원의 주님과 마귀, 의로운 자와 그의 가족들, 의롭지 못한 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율법에만 치우친 자들이라 하겠다
말씀만 읽고 그 말씀의 잣대로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하다
욥은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말을 하고 그를 떠났다. 자식들은 한 순간에 다 죽고 욥의 심정이
어땠을까? 나라면 통곡하며 내 자신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주변의 사람들조차 보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만큼 욥의 성품이 하나님이 칭찬할 만한 의로운 자였음을 욥기서에 나타나고 있다.
그럼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겠는가?
첫째, 욥의 담대함이다. 그가 자신이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난하는 친구들에게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욥의 믿음이다.
셋째, 현재의 고난 중에도 슬프고 죽고 싶지만 모든 우주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그것은 옳으신 것이라고 동의하는 그의 모습이다.
욥기서를 읽으며 잠언이 지혜서이지만 욥기서도 참 깊은 지혜가 곳곳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읽으며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보석을 찾아내듯 열심이 묵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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