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욥--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
[1-3절]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아말)[고통을 주는] 안위자로구나. 허망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격동되어 이같이 대답하는고.
욥은 친구들이 ‘[그를] 번뇌케 하는 혹은 고통을 주는 안위자’라고 표현한다. 그의 친구들은 고난이 죄의 형벌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그 생각을 욥에게 줄곧 적용하였다. 그들의 충고는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고통을 더하였다. 죄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의 진리이지만, 욥의 고난은 단순히 신앙 인격의 성숙을 위한 것이었다.
[4-5절]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말을 지어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카사크)[덜었으리라](KJV, NASB, NIV).
욥은 만일 친구들이 자기 같은 처지에 있다면, 자기도 그들을 비난하며 책망하며 그들을 향해 머리를 흔들며 그들을 멸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욥은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가상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때에도 자신은 입으로 그들을 위로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우리의 고난 당하는 형제나 이웃을 위로하는 것이다.
[6절]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나니 잠잠한들 어찌 평안하랴.
사람이 잠잠히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보통 그의 마음의 근심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이 없이 그의 근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욥은 심각한 고난 중에서 친구들에게 말해도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7절] 이제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시고 나의 무리를 패괴케 하셨나이다.
‘나의 무리’라는 원어(아다시)는 욥의 가족들과 종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BDB, NIV). ‘패괴케’라는 말은 ‘황폐케’라는 뜻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곤고케 하셨고 자기 가족들을 황폐케 하셨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있었다.
[8절]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
욥은 자신이 심신으로 쇠잔케 된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하며 그의 파리한 모습이 그를 대적하여 증거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고난 중에 자신의 죄를 생각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원문에는 ‘나의 죄’라는 말은 없다(KJV, NASB, NIV). 우리는 욥처럼 고난 중에 “내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9-14절]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窘迫)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
욥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그를 찢으시며 대적하신다고 말한다. ‘군박하다’는 원어(사탐)는 ‘대적하다’는 뜻이다. 또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해 이를 가시고 뾰족한 눈으로 보신다고 말한다. 뾰족한 눈은 동정 대신 미움의 마음을 나타낸다.
[10-11절]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
‘입을 벌린다’는 말은 남을 비난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위문하기 위해 와서는 그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그들은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더 나았다. 이웃 사람들도 그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그를 대적했다. 욥은 또 하나님께서 그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욥의 소들과 나귀들과 약대들을 탈취해간 이웃 나라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12-14절]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던져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 살(라브)[궁수]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 없이 내 허리를 뚫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가 나를 꺾고 다시 꺾고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욥은 평안히 지냈던 자신에게 닥친 이 혹독한 고난이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것임을 확실하게 증거한다.
[15절] 내가 굵은 베를 꿰어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굵은 베는 꺼칠하고 감촉이 좋지 않다. 구약 성도들은 금식할 때 보통 굵은 베옷을 입었다. 욥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그의 고통과 탄식을 나타낸다. 또 욥은 자신의 뿔, 곧 힘이 티끌에 더럽혔다고 말한다. 욥은 힘도 없었고 존영도 잃어버렸고 그의 명예도 더러워졌다.
[16절]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사람이 마음의 고통이 심해 많이 울 때 그의 얼굴도 붉게 상기된다. 또 욥은 자기의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그가 많이 울어 그 눈이 쇠해졌고 그의 기력도 쇠하여 곧 죽을 사람처럼 눈꺼풀이 감기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17절]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카마스)[‘강포, 악행’]이 없고[내 손에 악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Gesenius)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욥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자신이 악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또 그는 나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말한다. 그는 고난 중에도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가 기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믿음을 증거한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한다. 또 욥은 정결한 기도 즉 거짓과 위선의 말로가 아니고 진실과 진심의 말로 한 기도를 하였다.
[18절] 땅아, 내 피를 가리우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으로 쉴 곳이 없게 되기를 원하노라.
욥은 자신이 남의 피를 흘린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감추지 않기를 원한다. 또 그는 그의 부르짖음으로 쉴 곳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 그는 고난 중에 낙심치 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19절]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보인이 높은데 계시니라.
‘보인(保人)’[변호자](KJV, NASB, NIV)이라는 원어(사헤드)는 ‘증인’(에드)과 동의어이다(BDB). 욥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늘에 계신 그의 변호자가 그를 위해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20-22절]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변백하시기를 원하노니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의 친구들은 그를 조롱하고 있으나 욥은 낙망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하나님, 저의 중심을 살피시고 제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 바르고 선하게 살고자 애쓴 것을 증거하여 주옵소서.” 욥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바른 판단을 받기를 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친구를 번뇌케 하고 그에게 고통을 주는 위로자가 되지 말고, 바른 말로 충고하고 권면하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참된 위로로 위로하는 자가 되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욥처럼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믿고 우리에게 고난의 현실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그것을 거두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인내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며 살자.
셋째로, 우리는 평소에 불의와 강포와 악행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대로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 또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 중에 낙망치 말고 인내하며 계속 진실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자.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증인이시며 변호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사람의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께서 아시고 판단하실 것을 믿고 그에게만 의탁하며 호소하자.
17장: 욥--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함
[1절]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구나.
욥은 기운이 쇠했고 살날이 다했고 무덤에 들어갈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중한 병에 걸린 자들이 겪는 심적 과정일 것이다.
[2절]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오히려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그를 조롱하는 자들이 그와 함께 있고 그의 눈이 그들의 격동함을 항상 보는 것은 그를 더욱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3절] 청컨대 보증물을 주시고 친히 나의 보주(保主)가 되옵소서. 주 외에 나로 더불어 손을 칠 자[나를 보증할 자]가 누구리이까?
욥은 심신의 고통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보증자가 되셔서 보증물을 주실 것을 기도한다. 자신이 죄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4절]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구들의 마음에 아직 깨달음을 주지 않으셨다.
[5절] 친구를 지적하여 해를 받게 한 자의 자식들은 눈이 멀지니라.
본절은 “친구들에게 아첨의 말을 하는 자의 자식들은 눈이 쇠할 것이라”는 뜻이든지(KJV), “자기 소득을 위해 친구들을 비난하는 자와 그의 자식들은 눈이 쇠할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NASB).
[6절] 하나님이 나로 백성의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건강하고 부요할 때는 그 앞에 친근히 하고 그를 무시하지 못하던 사람도 그가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잃으니 그를 떠나가고 그를 비웃고 그를 멸시하는 것은 흔히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다.
[7절] 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그의 온 지체가 그림자 같다는 말은 그의 사지백체가 쇠해져서 그의 어두어진 눈으로 보기에 그림자같이 희미하다는 뜻이거나, 그의 몸이 쇠해져서 그림자같이 죽어 없어질 것 같다는 뜻일 것이다.
[8절] 정직자는 이를 인하여 놀라고 무죄자는 사곡한 자[불경건한 자] (NASB, NIV)를 인하여 분을 내나니.
욥은 자신을 정직자와 무죄자로 표현하고 그를 비방하는 자들을 불경건한 자로 표현하며, 자신이 그들로 인해 분을 낸다고 말한다.
[9절] 그러므로[그러나 nevertheless](NASB, NIV)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굳게 붙들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욥은 자신의 고난의 현실을 인해 놀라고 친구들의 공박에 대해 화와 분이 나지만, 자신을 ‘의인’과 ‘손이 깨끗한 자’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굳게 붙들기를 원하며 점점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참된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10-11절] 너희는 다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모라쉐)[품은 생각]가 다 끊어졌구나.
욥은 친구들이 다 무지하다고 말한다. 또 그는 자신의 날이 지나갔으며 그의 계획과 마음에 품은 생각이 다 끊어졌다고 말한다. 그가 계획하고 그 마음에 생각했던 바는 그의 건강과 행복 등을 포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들이 다 끊어졌다. 그는 이제 자신이 오직 죽음 앞에 서 있음을 느끼고 있다.
[12절]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 데 가깝다[어두움 앞에서 빛이 가깝다](NASB, NIV) 하는구나.
‘그들’이라는 말은 악인들을 가리키든지(NIV) 아니면 그가 마음에 생각했던 바(‘그것들’)를 가리킬 것이다(Amplified Bible). 후자라면, 내 마음에 품은 생각들이 밤부터 낮까지 계속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뜻이라면, 후반부의 ‘어두움’은 심적 고통을 가리킬 것이다.
[13-15절] 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진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욥은 이제 죽음을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만 생각하게 되는 자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사람의 소망이 죽음으로 다 깨어지는 것이 아닌가?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의 심정과 심리는 절망적이었다.
욥기 17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욥은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는 참으며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호소하였다. 우리는 고난 중에 참고 하나님만 바라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시다.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이다. 주께서는 그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난 시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고(마 24:11-13), 요한계시록은 대환난 때에 성도들에게 필요한 덕이 인내와 믿음이라고 교훈하였다(계 13:10).
둘째로, 욥은 의인이 그 길을 독실히 행한다고 말했다. 참된 성도는 때때로 이유 없는 고난에 떨어지고 그런 현실 때문에 놀라고, 또 그를 오해하고 비방하는 자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때에도 자기 길을 굳게 붙들고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욥은 인간적으로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죽음의 문 앞에 선 인생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런 자를 위로할 말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의 복된 소망을 주셨다. 사람에게 참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과 부활과 영생뿐이다.
18장: 빌닷--악인의 빛은 꺼진다
[1-2절]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빌닷이 욥에 대해 ‘너희’라고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대상은 욥이다. “말을 찾는다”는 원어(키네츠)는 “말에 올무를 놓는다”는 뜻이다(BDB, NASB). 빌닷은 욥이 친구들의 말에 올무를 놓는다고 비난한다. 그는 욥에게 심지어 “깨달으라”고까지 말하며 그를 무지한 자로 몰아댄다. 그러나 그는 욥에게 바르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3절]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不淨)하게 보느냐?
‘부정(不淨)하게 본다’는 원어(타마)는 ‘부정(不淨)하게 여긴다’(KJV)는 뜻도 있으나, ‘어리석게 여긴다’(게세니우스, BDB, NASB, NIV)는 뜻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욥은 친구들에 대해 17:4에서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했었다.
[4절]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라는 원문은 “자신의 분노 중에 자신을 찢는 자”라는 뜻이라고 보인다(KJV).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에 불평하고 대항하여 분노를 품고 자신을 찢고 상하게 만든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선조들은 광야에서 항상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멸망을 자초하였다(민 11:1; 14:1-3; 20:4; 21:5). 물론 그것은 욥의 경우에는 적절치 않았다.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기겠느냐?”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가 불변적이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5-6절]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빛과 불꽃은 기쁨과 행복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의 기쁨과 행복은 사라질 것이다. 그의 가정의 기쁨과 행복도 사라질 것이다. 잠언 13:9는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고 말했고, 잠언 24:20도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말했다. 악인의 기쁨과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7절] 그 강한 걸음이 곤하여지고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악인들은 일시적으로는 그 걸음이 강한 것 같고 그의 베푸는 꾀가 형통하게 될 것 같아 보이지만, 그의 강한 걸음은 곧 곤하여지고 그는 자기가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8-10절] 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밟음이며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악인이 스스로 망하는 까닭은 그의 발이 스스로 자기가 만든 그물에 들어가고 올무의 줄을 밟기 때문이다. 빌닷은 그를 동여맬 줄이 땅에 숨겨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려 있다고 말한다.
악인은 자기의 올무에 자기가 걸린다.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 뜰에 높은 장대를 만들었던 하만은 자신이 거기에 달려 죽임을 당하였다(에 7장). 또 다니엘을 모함해 사자굴에 던져 죽게 하려 했던 동료들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지워 죽었다(단 6장).
[11-12절]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 올 것이며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악인에게는 도적이나 강도나 무서운 짐승이나 무서운 질병과 큰 사고 같은 무서운 것이 임하여 사방에서 그를 놀래며 그 뒤를 쫓아올 것이다. 잠언 10:24는,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라고 말한다. 악인의 힘은 기근으로 쇠해질 것이며 그의 곁에는 무서운 재앙이 기다릴 것이다.
[13절]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라는 원문은 “그것이 그의 피부의 부분들을 먹으리니”라는 뜻이다(MT, NIV). 원문에서 ‘그것’은 그에게 임한 재앙을 말할 것이다. 재앙이 그의 피부의 부분들을 해할 것이며 마침내 그는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14절]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힌다는 말은 가족들의 안정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며, 또 ‘무서움의 왕’에게 잡혀간다는 말은 평안을 잃고 극한 두려움에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보인다.
[15-16절]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한다”는 원문은 “그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그의 장막에 거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든지(BDB, NASB), 혹은 “그것[무서움의 왕]이 그 장막에 거하므로 그것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리라”는 뜻일 것이다(게세니우스).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라는 말은 그 집이 완전히 불태워지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악인은 그와 그 가정이 일시적으로 번창하는 것 같아도 결국 자신도, 그의 자녀들도 다 멸망할 것이다.
[17절] 그의 기념[기억]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
의인들의 기억은 세상에 오래 남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만, 악인들의 기억은 땅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그의 이름은 거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함도 없을 것이다. 멸망의 예(例)로 경계를 삼는 것 외에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18-19절] 그는 광명 중에서[광명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악인들은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만 곧 불행 속으로 몰려 들어가며 또 세상에서도 쫓겨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전까지 세상을 적어도 양심 있는 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유지되게 하실 것이며, 악인들이 세상에서 쫓겨나게 하실 것이다.
[19절] 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자손]도 없을 것이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
악인은 대를 이을 자들이 없을 것이며 또 그가 부요하였을 때 그의 집에 머물었거나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도 다 그를 떠날 것이다.
[20-21절] 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가 앞선 자의 두려워하던 것 같이 놀라리라.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
건강하고 부요하고 행복했던 자가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망할 수 있는지 이전 사람들도, 후대 사람들도 놀랄 것이다. 이와 같이, 불의하고 악한 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자기 자신만 망할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집과 가정도, 가족들까지도 멸망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믿음 없고 무지한 자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불평하거나 대항하지 말고 그의 섭리를 항상 긍정하고 순응하자.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온전함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선하시다.
둘째로, 악인들은 일시적으로 강하고 형통한 것 같으나, 그들의 빛은 꺼지고 그들의 기쁨과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오직 경건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고(사 48:22) 질병, 사고 등의 무서운 것들이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의인들은 주 안에서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기억하고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묵상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이 생각나는 욥기서를 읽으며 욥을 비판하는 친구들의
충고에도 눈을 옮겨 보았다. 악인에 대해 말하는 친구 발랏의 말도 맞다. 하지만 욥은 악인이 아니기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이토록 자신을 처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가를 탄식하는 욥의 기도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당대의 의인이라 욥을 칭찬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욥을 현실에 비유하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며칠 전에 내가 쓴 '하나님의 섭리'라는 찬양시에서는 비교적 삶의 고통을 가볍게 다루며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욥의 고통과 한탄의 기도를 생각하면 이런 환난 중에 나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드릴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하나님의 섭리는 주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작정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주님의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뜻과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께 찬양을 올린다.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나의 믿음의 행실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를 하는 시간은 좀더 성숙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 수 있는 소중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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