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독칼럼

오늘에 충실하라/2021. 5.2. 애트란타 섬기는 교회(안선홍 목사님) 실시간 주일 설교 요약

헤븐드림 2021. 5. 3. 02:03

마태복음 6장 25절-34절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말씀 요약

 

오늘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말씀은 오늘을 충실히 살면 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질거라는 소망이 땅에 있다면 염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26절로 30절에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고 31절로 34절에는 온전히 구해야 할 것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을 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믿음과 염려는 상대적인 언어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염려는 무엇을 얻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이 죄인 것처럼 생활의 염려 역시 명백한 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염려는 시작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염려를 던지는데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터 멀어지게 합니다. 

염려는 비생산적입니다. 과연 염려하는 일들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염려의 40%는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30% 과거의 일이며 겨우 4%만이 염려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염려는 지혜롭지 못한 생각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큰 사건들이 벌어지고 이혼의 위기가 닥치기도 하는 것이 쓸데없는 염려와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라 합니다.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많은 병들의 원인이 마음으로부터 있다고 합니다.  마음의 병 곧 염려가 각종 암의 시초가 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또한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감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잠깐 멈추어 모든 존재하는 만물에 가득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꽃과 새와 풀을 비유하여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며 사람의 귀한 존재감을 표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떻게 자연까지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겠느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때로 이 말씀이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과 믿음은 다를 수 있지요. 생사의 기로에 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환경을 이기는 믿음이 예수님 본인에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시는 중에도 예수님에게는 십자가의 고난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형편을 이기는 진정한 자유의 선포입니다.

의식주를 무시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의, 복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는 거 참 속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충분히 공급하시고 계시는데 우리의 나눔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삶 곧 사랑의 부족으로 낳은 참상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염려를 던집니다. 두렵지요. 하지만 안돼! 하며 염려를 냅다 다시 던지십시오.

오히려 사람들은 염려를 끌어안고 책임을 던져버리지요. 아담의 원죄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항상 그렇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자기 안전에 몰두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몰두하며 살것인가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다.

이민 생활에서 열심을 내어 살았으나 나이 들어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허무해지는 이유도 궁극적인 삶의 

가치가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깨어 나서 염려하지 않는 삶 오늘에 충실하는 사람들이 되어 계획하고 행동하는 오늘을 살아갑시다.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늘을 잘 사는 것입니다.

주여 내 발걸음을 지켜 주소서

저 먼 곳 보려 하지 않으니 다만 한걸음씩 인도 하소서 타임즈 사장의 기도 한 구절입니다.

문제들은 이런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해결 되는 것입니다 결코 염려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선택하십시오

믿음이요 염려냐.. 믿음을 선택하여 염려에서 자유케 되는 지혜로운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