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은 인생과 꿈을 노래하며 믿음과 구원과 소망의 시들을 쓴 보기드문 작가이다 눈물과 견고한 고독은 내가
즐겨 읽던 시이기도 하다
아 침
새벽의 보드라운 촉감이 이슬 어린 창문을 두드린다.
아우야 남향의 침실문을 열어제쳐라 어젯밤 자리에 누워 헤이던 별은 사라지고
선명한 물결 위에 아폴로의 이마는 찬란한 반원을 그렸다.
꿈을 꾸는 두 형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고 바라보는 푸른 해변은 어여쁘구나.
배를 쑥 내민 욕심 많은 풍선이 지나가고 하늘의 젊은 푸리탄~
동방의 새 아기를 보려고 떠난 저 구름들이 바다 건너 푸른 섬에서 황혼의 상복을 벗어버리고
순례의 흰옷을 훨훨 날리며 푸른 수평선을 넘어올 때
어느덧 물새들이 일어나 먼 섬에까지 경주를 시작하노라
아우야 얼마나 훌륭한 아침이냐. 우리들의 꿈보다는 더 아름다운 아침이 아니냐.
어서 바다를 향하여 기운찬 돌을 던져라. 우리들이 저 푸른 해안으로 뛰어갈 아침이다.
(김현승·시인, 1913-1975)
행복의 얼굴/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고독한 이유
고독은 정직하다. 고독은 신(神)을 만들지 않고, 고독은 무한의 누룩으로 부풀지 않는다.
고독은 자유다. 고독은 군중 속에 갇히지 않고, 고독은 군중의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 목적 위의 목적이다.
(김현승·시인, 1913-1975)
김현승님의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그러니까 나 역시 고독한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고독을 느끼는 날에는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살아가려하는 외침이다
절대 고독.. 이 시는 고독의 끝을 준비하며
절대 고독/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