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전통을 이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우리의 진정한 근대문학이 이어진 건 6,70년대가 아닌가 생각해요. 동아시아의 근대문학을 보면, 한 30년 쓰면 자신의 방식이 표출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동아시아에서 보는 세계, 자기의 문학을 자기 식대로 개척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심청.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 사람 저 사람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을 먹고 자란 청이, 열다섯 나이에 중국 상인에게 팔려가 황해 바다 인당수에 뛰어든 그 ‘심청’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 ‘심청’이 새로 태어났다. 그저 심성 고운 효녀 심청이 아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고, 또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여자로! 그렇다, 그네 심청은 “여자”였다.
심청을 새로 태어나게 한 이는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 선생. 방북사건으로 5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1998년에 출감한 이래, 2000년에 『오래된 정원』, 2001년에 『손님』을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집중시킨 이순의 황석영 선생이 새로 내놓은 『심청』은 그가 耳順의 귀가 아닌, 청년의 귀와 감각을 지닌 불꽃의 작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는 작품이다.
황해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매춘의 오디세이아
『심청』은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 한 여자의 일대기다.
은자 삼백냥에 중국 선상들에게 팔려갈 때가 열다섯. 아직 달거리도 시작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 ‘청’은 풍랑을 잠재우는 제물이 되어 굿을 치른 후 중국의 한 부잣집에 팔려간다. 황해 바다를 건너 중국 진장을 거쳐 그네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난징. 중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렌화(연꽃)’라는 이름을 얻은 후 차 장사로 부자가 된 첸 대인의 어린 첩실로 팔려간 것이다. 첸 대인의 보약 노릇을 하던 청은, 첸 대인이 죽은 후 그 집 막내아들 구앙을 따라 그가 운영하는 진장의 기루(妓樓) ‘복락루’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청은 처음으로 자기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판다. 그후 떠돌이 악사 동유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둘만의 혼례를 치른다. 복락루에서 도망친 두 사람은 만두집을 열어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하지만 운명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청이 다시 창녀가 되어 팔려간 곳이 타이완의 지룽 섬. 하룻밤에 열 두세 명의 사내를 상대해야 하는 밑바닥 창녀의 삶이 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녀들의 대모 격인 샹 부인을 만나고, 그녀 아래 들어가 일하던 청이는 영국인 제임스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되어 싱가포르로 가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다시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로, 다시 나가사키로, 다시 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