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부친의 형제
[1] 사마리아의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왕 오므리의 아들(B.C.869-850).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유다왕 여호사밧과 동시대이며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 그녀의 바알종교를 주력 지원했다.
엘리야가 아합의 배교를 꾸짖고 전국에 가뭄이 들리라고 예언했다(왕상 17:1).
[2]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예언자 바벨론에서 백성을 속였다
당시는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시대였는데 아합 왕은 오므리 왕 못지않게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합 왕은 그 자신의 행적이나 정치적인 능력보다도 그의 아내, 이세벨로 인해 더 유명한 인물이다. 아합 왕 자신은 원래 인격적으로 무난하고 재치가 있었으며 왕으로서 특별한 결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왕상16:31)한 후 통치에 있어서 아내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이 그의 큰 약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 이세벨을 따라 그녀의 바알종교에 지배되었고 우상숭배의 노예가 되어 이방신을 섬기는 전성기를 이루었으니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왕으로 지적받아왔다. 엘리야가 아합의 배교를 비난하고 전국에 가뭄이 들리라고 예언했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왕상17:1)”
위와 같이 아합 왕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범죄로, 아합 왕 때 3년 이상의 기근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때에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이 갈멜산에서 참신을 밝히기 위한 대결을 하게 된다. 이 유명한 사건으로 이방 선지자들이 전멸되었고 칠천 명의 군사로 아람군을 격파하고 대적 벤하닷을 구해주고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결국 아합 왕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북조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이 지속되다가 아합 왕 때에 와서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극적으로 숭배하고 국교가 될 만큼 타락했던 것이다. 그리고 위증으로 억울하게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으며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거역하고 위장하여 전쟁에 나갔으나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왕상16:29-33)”
이세벨의 계교에 의해 선량한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하고 그를 죽인 사건은 아합의 씻을 수 없는 범죄였으며 그 죄 값으로 인해 그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고 말았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왕상22: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