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의 인물

엘리야

헤븐드림 2024. 7. 19. 23:47

 

 

뜻 : 여호와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 가장 무서웠던 예언자. 북왕국 아합왕(B.C. 876-854)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걸쳐 사역하였다.

엘리야(영어: Elijah, 히브리어 אֵלִיָּהוּ)는 분열 왕국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하나님의 선지자다. ‘엘리야’라는 이름을 풀이하자면 ‘엘리’는 ‘나의 하나님’, ‘야’는 ‘여호와’를 각각 가리킨다. 따라서 이름을 해석하면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뜻이 된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Ahab, B.C. 871~852 재위)이 통치하던 시기에 주로 활동했으며, 생의 마지막에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

그의 고향은 ‘디셉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길르앗의 디셉으로 추정된다(열왕기상 17:1). 그 외에 부모의 이름이나 그가 속한 반차 등 상세한 인적사항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마치 멜기세덱과 같이 그 정보가 무척 희박한 인물이지만 그는 성경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엘리야, 성경 속 행적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왕은 아합이다. 아합은 바알을 숭배하는 시돈 사람 엣바알왕의 딸 이세벨과 혼인했고,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 전역에 바알 숭배 사상이 퍼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세벨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건축한 후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 목상 숭배를 강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합과 이세벨에게 크게 진노하셨다(열왕기상 16:29~33).

이 때 하나님께서 진노의 메시지를 전달하시고자 아합에게 보내신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다. 그는 아합에게, 앞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고 예언한다. 그 예언대로 북왕국 이스라엘 전역에는 비가 끊어졌다. 비가 내리지 않자 초원의 풀은 시들고 가축들은 죽어가고 농작물도 말라 죽었다. 엘리야 선지는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그 시냇물이 마르기 전까지 그 물을 마시며 지냈다(열왕기상 17:1~7).

1. 사르밧에서 만난 과부

그가 숨어 있던 지역뿐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시냇물이 말라버릴 무렵, 하나님께서는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 그를 보내셨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 얀 빅토르(Jan Victors) 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사르밧 성문 어귀에서 땔감을 줍고 있는 과부를 만났다. 그는 그 과부에게 물과 음식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과부가 가진 것이라고는 한 움큼의 가루와 기름 약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으로 아들을 위해 떡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가난한 과부에게 재차 음식을 부탁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비가 내리기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고. 사르밧 과부는 그 말에 믿음을 가지고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그 결과 흉년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과부는 밀가루와 기름을 무한히 공급받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엘리야 선지자와 사르밧 과부의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의 아들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엘리야가 하나님께 그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아들은 살아났다. 성경에 따르면 그제야 사르밧 과부는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열왕기상 17장 참조).

2. 갈멜산에서의 대결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은 지도 3년 6개월이 지났다. 그 무렵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갔다. 아합은 그의 저주 때문에 비가 멎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은 세월 내내 그를 찾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열왕기상 18:10~11). 무려 3년 6개월 만에 그토록 찾던 엘리야와 마주한 아합은 여러 가지 의미로 그가 반가웠을 것이다.

“왔구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선지자!”
“천만에. 이스라엘은 당신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것이오.”

서로의 입장은 첨예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제안했다.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와 아세라를 숭배하는 선지자 각각 450명,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주면, 누가 살아계신 참 신인지 가려내 주겠다고. 8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엘리야에게 별다른 묘수는 없을 듯했으므로, 아합은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엘리야가 아합 왕과 대립하다 – 작자미상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다

약속한 날, 갈멜산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수많은 선지자들과 많은 백성들이 모였다. 그는 대결에 앞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언제까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할 셈이냐!”라고 책망했지만, 백성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 꼴이었다. 그는 갈멜산에 모인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제안했다.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 놓되 불은 피우지 말자는 것이다. 불은 자신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부를 것이며, 그 요청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야말로 참 신이라 하니 모든 백성들이 그 말에 찬성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봐도,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베고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소리쳐도 그들의 신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좀 큰 소리로 불러 봐라!” 하는 엘리야의 조롱에도 바알은 잠잠하기만 했다.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말았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부르다

그렇게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맞춰 백성들을 모았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로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쌓았다. 또한 단 주위에는 도랑을 파서 물을 부었고, 번제물과 나무에도 물을 부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진심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18:36~37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벼락처럼 불이 내려와서는, 물을 부어 적셨던 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다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도 다 살라버렸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 기적이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그제야 엎드리어 외쳤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다 –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作

참 신이 누구신지를 깨달은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기손 시내로 끌고 가 죽였다. 그리고 그날, 이스라엘에는 가뭄의 마침표를 찍는 폭우가 내렸다(열왕기상 18장 참조).

3. 엘리사를 만나다

갈멜산에서의 대결 이후,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며 이를 갈았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승리를 거뒀던 엘리야라도 우선은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세벨의 손에 죽임을 당했는데, 그녀는 그것도 모자라서 엘리야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니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탄식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뒤를 이을 선지자를 택하게 하셨다. 그의 이름은 엘리사(Elisha)였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평범한 농부였던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겉옷을 던져주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고 추구해오던 육신의 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오직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한 길을 가겠다는 각오로 미련이 남을 만한 모든 것을 청산했다. 농부의 입장에서 가장 큰 재산은 소나 쟁기다. 엘리사는 쟁기를 불사르고, 농부로써 함께 해오던 소를 잡은 후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나눠주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절대적 순종으로 따르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였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던지다 – 작자미상

4. 나봇의 포도원 사건

그 무렵 아람과의 전쟁이 있었는데(열왕기상 20장 참조), 그 전쟁이 끝난 후 아합은 문득 궁궐 근처에 있는 포도원이 갖고 싶어졌다. 그 포도원은 이스르엘(Jezreel, 이스라엘이 아니다) 사람 나봇의 것이었는데 아합은 그곳이 자신의 채소밭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아합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 것을 제안했지만, 나봇은 포도원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기에 팔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

아합이 이 일로 기분이 상해서 식사까지 거르자, 또 왕비 이세벨이 나섰다. 그녀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계략을 꾸며서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와 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의 내용인즉슨, 나봇을 높은 곳에 앉힌 후 불량배 두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 증언을 하도록 시켜서 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장로와 귀인들은 이세벨의 편지를 받고 그 분부대로 나봇을 곤경에 빠뜨렸다. 백성들은 거짓 증언에 선동되어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은 포도원을 갖기 위해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는데, 바로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아합을 보고 저주에 가까운, 아니 저주 그 자체인 예언을 한다. 그 저주에는 이 사건의 원흉인 이세벨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느니라

열왕기상 21:20~24

나봇의 포도원에서 엘리야가 아합왕을 책망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단순히 아합의 탐욕과 이세벨의 사악함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일종의 예언의 성격을 갖는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 속에 숨은 이세벨의 계략’이라는 포스트에서 다루고 있다.

5.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실 때가 되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벧엘에 가면서, 엘리사에게는 길갈에 머무르라고 명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간절히 청하여 벧엘까지 동행하였다. 벧엘에 도착하여 이번엔 하나님께서 여리고로 가기를 원하셨다고 하자 엘리사도 그 뒤를 따랐다. 여리고에 도착해서는 요단으로 부르신다며 엘리사에게는 재차 남아 있기를 권했다. 하지만 끝까지 엘리야를 따르겠다는 그의 굳은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엘리야는 그와 함께 요단을 함께 건넜다.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였을 수 있다. 자신을 끝까지 따랐던 엘리사에게 그는 무엇을 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엘리사는 “당신이 가신 영적 능력을 두 배로 받기를 원합니다”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후 엘리사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많이 행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말(horses of fire)들과 불수레(chariot of fire)가 나타났다. 불말과 불수레는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돌연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엘리사 앞에서 승천하였다. 이것이 엘리야의 마지막 행적이다.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

세례(침례) 요한과의 관계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Malachi)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는 구원자보다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할 것이다(말라기 3:1 참조). 이 예언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침례) 요한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는 예수님보다 앞서 등장해서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었으며, “내 뒤에 오실 이가 있다”라는 말로 예수님의 등장을 예고했다(요한복음 1:26~27). 예수님께서도 그가 엘리야의 사명을 수행했던 선지자였음을 인정하셨다(마태복음 17:9~13).

2천 년 전에는 완수되지 않은, 엘리야의 사명

그러나 침례 요한이 말라기 4장의 예언을 완전히 성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등장할 엘리야가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 즉 최후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등장해야 한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다(말라기 4:1, 5 참조). 또한 말라기 4장의 예언에 따르면 다시 등장할 그 선지자는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구약 당시 엘리야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전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다. 이때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직접 대적하며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했는데,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공간이므로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다시 회복될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례(침례) 요한은 최후의 심판 직전이 아니라 2천 년 전에 등장했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회복하는 행보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앞서 열거한 예언들 역시 성취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엘리야 선지자가 다시 등장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등장할 그 선지자는 우선 첫째, 최후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등장해야 하며 둘째, 아비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에게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제사를 다시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그는 구원자의 길을 예비할 자이므로 그를 따라가면 반드시 구원자를 만날 수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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