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2월 27일, 태어난 화가 김환기는 한국 근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연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연속적인 사각 공간속에 배열한 점묘(點描)기법을 사용했다.
김환기(金煥基, 1913년 2월 27일 ~ 1974년 7월 25일)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수화(樹話)이다. 1936년 일본 니혼 대학교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에 출품했다. 여러 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1954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엠베지트 화랑을 위시하여 1957년 파리ㆍ니스ㆍ브뤼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ㆍ초대 예술원 회원ㆍ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브라질로 갔고, 동 국제전의 명예상을 받았으며, 그곳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金鄕岸)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중 그곳에서 사망했다. 전후 14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가졌고,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韓國美術大賞展)에서 대상을 받았다.
작품경향은 초기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관조(觀照)와 아취(雅趣)를 근간으로 한 반추상(半抽象)의 세계를 보이다가 도미(渡美) 후에는 완전히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여 옵티컬한 양식의 새로운 사조(思潮)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인다.
30년대 일본 유학 중에 모더니즘을 접한 김환기는 이후 모더니즘 1세대라 불려왔다. 1963년 작가로 참여했던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계기로 ‘세계미술’을 접하고 이후 ‘샘적추상’이라는 자신의 화법을 개척한 그는 이중섭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도 이응노처럼 정치적 시련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림에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따뜻한 우아함을 화폭에 담았다. 격동의 시대를 지나 온 예술가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느낌이다.
김환기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한국적인 것, 곧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이해하며 사랑한 화가였고, 한국적인 것의 가치를 자신의 방법에 따라 충분히 세계적인 것으로 창조해냈다는 점이다. 세련되고 승화된 조현언어로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하여 한국을 비롯,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으로까지 그 이름을 알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캐치프라이즈가 전 국민을 들뜨게 했던 적이 있었지만 세계적인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체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것을 만드는 시도를 성공했다는 의미에서 김환기는 세계적인 화가가 된 것이다.
작품으로 〈산〉, 〈산월(山月)〉, 〈야상곡(夜想曲)〉, 그리고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전시회 도록인 『김환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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