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1)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31편 강해 : 고통 중에 담대히 기도하여 응답받음
[1-4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였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것이다. 그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은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가 말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의를 가리킬 것이다. 그는 시편 4:1에서 하나님을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다.
다윗은 지금 급박한 구조가 필요한 고난 가운데 있다. 그는 하나님께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을 “나의 반석과 산성”이라고 고백하였다. 또 그는 하나님께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라고 기도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그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지 않고 영광을 얻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해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또 다윗은 원수들이 비밀히 친 그물에서 자기를 빼어내 주시기를 기도한다.
[5-8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救贖)하셨나이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다윗은 자신의 영을 하나님께 부탁한다. 우리의 영을 돌보아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다윗은 또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그가 자신을 구속(救贖)하셨음을 고백한다. 진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속(救贖), 곧 구원하셨다.
다윗은 또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허탄한 거짓’이라는 원어(하벨레 솨웨)는 ‘헛된 우상들’이라는 뜻이다. 이방인들의 신들과 우상들은 속이는 헛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사람에게 구원이나 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멸망의 지옥으로 인도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그가 곤란 중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아셨고 그를 대적의 손 안에 감금되지 않게 하셨고 그의 발을 넓은 곳, 곧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세우셨다고 말한다.
역사상,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과 백성들을 환난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여러 번 비상한 방법으로 구원하셨다. 성경은 성도들의 이런 체험을 많이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뿐 아니라, 아사 왕 때, 여호사밧 왕 때, 히스기야 왕 때, 다니엘과 친구들의 때 등의 역사는 그런 예들을 보여준다. 신약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큰 환난을 통과할지라도 장차 흰옷 입은 승리자로 나타날 것이며(계 7:9-10, 14) 또 천국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9-13절]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깨진 그릇]와 같으니이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있다. 그의 심신은 쇠약해졌다. 그의 사는 날들은 슬픔과 탄식의 시간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들이 여러 날들과 아마 여러 해들 계속되었다. 그의 기력이 약하며 그의 뼈는 쇠하였다. 다윗은 그의 연약과 고통이 자신의 부족과 죄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징벌은 엄격하고 혹독하였다. 그러나 그의 징계는 그가 죄인을 사랑하시는 표이며 그 영혼을 구원하고 그 인격을 거룩케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서만 자신이 고통의 현실에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다.
다윗은 대적들과 이웃들에게 모욕과 비난을 당하였다. 친구들은 그를 놀라고 사람들은 그를 따돌렸다. 그는 죽은 자같이, 깨진 그릇같이 사람의 생각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다. 또 그는 죽음의 위협을 당했다. 원수들은 그의 생명을 빼앗기를 의논하였다. 다윗이 당한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비슷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모욕과 비난을 당하셨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의 전도사역 초기부터 그를 죽이기를 의논하였고 마침내 그 일을 이루었다(마 12:14; 요 5:18; 마 26:3-4, 59). 성경은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에서 모욕과 핍박과 비방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행 14:22; 딤후 3:12).
[14-16절]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참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 다윗은 또 자신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한다. ‘내 시대’라는 원어(잇토사이)는 ‘나의 시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다.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다윗은 원수들의 손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원수들과 핍박하는 자들의 손이 힘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은 더 힘이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윗은 또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빛을 간구한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였다(민 6:25). 하나님께서 긍휼과 인자하심을 다윗에게 베푸신다면, 그가 원수들과 핍박자들의 손에서 구원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7-20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잠잠히 무덤으로 가게]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 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로케스)[공모(共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니 그로 부끄럽게 마시기를 구하였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셔서 그들로 잠잠히 무덤으로 내려가게 하시기를 구하였다. 또 그는 교만과 경멸로 거만하게 의인들을 비방하는 거짓 입술들로 벙어리 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악한 비방의 말은 그쳐져야 할 것이다. 다윗은 성도를 ‘주를 두려워하는 자,’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라고 묘사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 경건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를 위해 큰 은혜를 쌓아두시고 베푸신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를 위해 그의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그의 좋은 것들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셔서 사람의 공모(共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실 것이다. 누가 사람들의 음모를 막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막으시고 건지실 것이다.
[21-22절]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견고한 성에서 그의 기이한 인자를 그에게 보이셨기 때문이었다. 견고한 성은 하나님의 품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의 품보다 더 견고한 피난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품에서 다윗에게 기이한 인자하심을 베푸셨다. 다윗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놀라고 당황해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보다, 그의 눈길과 관심이 나를 떠나셨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마음의 눈이 어두워 현실만 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연약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주셨다.
[23-24절]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다윗은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교훈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의 핵심 내용이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그가 천지만물을 만드신 자이시요 그것들을 섭리자시며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에게 천국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신 10:12-13; 요일 5:3).
둘째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에 필수적 요소이다.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지 못하면 우리는 불신앙과 죄악과 타협하고 변절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히 10:34-35).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지만,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공의의 형벌로 엄중히 갚으신다. 주께서는 성령으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마 28:20; 요 14:16) 우리와 우리가 받은 구원과 영생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요 10:28).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자. 다윗은 심신의 심한 고통과 원수들의 위협 중에서 그것이 자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느꼈으나 오직 하나님께 피하며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 그의 반석과 산성으로 삼았다.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인자만 의지하며 기도하자. 다윗은 하나님의 의와 그의 인자만 의지하며 기도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의 때문에, 그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은밀한 그물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그는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하게 의인을 비방하는 악인들을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성도를 사람들의 꾀와 공모로부터, 구설의 다툼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이다.
모든 성도는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의 고난 중에서도 지키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또 모든 성도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우리는 불신앙과 죄악과 타협하거나 변절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한다.
제 3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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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마스길〕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2)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32편 강해 : 회개와 죄사함의 복
[1-2절]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은 죄사함에 대해 증거한다. ‘허물’(페솨 )이나 ‘죄’(카타아)는 구약성경에서 죄를 가리키는 대표적 용어들이다. ‘정죄’라는 말(아본)은 ‘죄, 죄책, 죄의 형벌’이라는 뜻이 있다. 허물이 사함을 얻고 죄가 가리움을 받고 정죄를 당하지 않는 것은 다 죄사함을 말한다. 죄사함은 죄 자체가 없어진다기보다 하나님께서 그 죄를 덮으시고 그 죄의 책임을 묻거나 그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죄 없는 것처럼 간주하시는 것을 말한다.
죄사함을 받은 자는 그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의 영혼 속에 거짓이 없게 된다. 원문에는 2절 앞부분이 중간에 나온다.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사도행전 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죄사함은 법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사람의 심령을 깨끗케 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죄사함은 참으로 복되다. 다윗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한다. 죄사함의 복은 인간에게 가장 큰 복이다. 죄의 결과는 모든 불행, 특히 죽음과 지옥 형벌이지만, 죄사함의 결과는 하나님의 모든 복, 특히 영광스러운 천국과 영생이다. 생명의 구속(救贖)은 너무 귀하다(시 49:8). 사람의 목숨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이 가치 있는 것이다(마 16:26). 주께서는 한 비유에서 죄사함의 구원이 사람이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18:23-27). 이 세상에서 죄사함의 복보다 더 큰 복은 없다.
[3-5절]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다윗은 자신이 토설치 않고 잠잠했을 때, 즉 자신이 죄를 고백지 않았을 때의 심적 고통을 증거한다. 그때 그는 병든 자와 같이 종일 신음하였고 뼈까지 쇠하는 고통을 당했다. 하나님의 손은 밤낮으로 그를 누르셨고 그의 심신의 진액은 변하여 여름 가물에 메마름같이 되었다. 성도는 죄를 짓고 회개치 않을 때 이런 고통을 당한다. 죄는 잊으려 해도 쉽게 잊을 수 없고 지우려 해도 쉽게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한 회개를 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였다. 원문은 5절의 첫 부분이 중간 이후에 나온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자복하였다. 다윗이 죄를 고백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셨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다 아시지만, 그가 원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그 앞에서 인정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켜 떠나는 것이다. 잠언 28:13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그것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신다. 요한일서 1:9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6-7절]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이로 인하여”라는 말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면 용서받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가 있다. 죄인은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이사야 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지금은 은혜받을 때이다. 고린도후서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다윗은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한다. 홍수는 큰 환난과 어려움을 가리킨다. 성도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면 큰 환난도 극복할 수 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신다(시 34:19). 의인도 때로는 넘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손으로 그를 붙들어주심으로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다(시 37:24).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잠 24:16). 환난의 큰 바람은 의인을 삼키지 못한다.
다윗은 또한,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신처이시다. 그는 우리의 요새이시며 피할 바위이시며 방패이시다(시 18:2).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우리를 둘러싸실 것이다.
[8-9절]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죄인의 길을 살피며 바른 길을 지시하고 교훈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주목하시고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이시고 교훈하신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교훈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시편 119:105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디모데후서 3:16-17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교훈과 인도는 가장 선하다.
특히, 다윗은 무지한 말과 노새같이 되지 말라고 교훈한다. 노새와 말은 지혜와 이해력과 판단력이 없는 무지한 짐승들이다. 그것들은 자기 편한 대로 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주인들은 그 짐승들에게 재갈을 끼우고 굴레를 씌워서 그것들을 통제한다. ‘재갈’은 짐승의 입에 끼우는 쇳토막이며, ‘굴레’는 그것과 짐승의 목을 걸쳐 맨 끈이다. 짐승들은 재갈과 굴레로 통제된다. 즉 그것들은 주인의 지속적 간섭과 제재를 통해 이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비로소 바른 길을 걷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10-11절]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악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지 않고 그 명령대로 행치 않고 자신의 쾌락을 따라 사는 자인데, 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다. ‘슬픔’이라는 원어(마크오브)는 ‘고통, 슬픔’이라는 뜻이다. 악인은 마음의 고통, 육신의 질병, 가정적, 환경적 고통 등 여러 가지 고통과 슬픔을 당한다.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 48:22; 57:21). 의인에게도 고난이 많지만(시 34:19) 그러나 그 심령에는 하늘의 기쁨이 있다. 사도행전 5:40-41, “[저희가]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의(義)는 도덕적 표준에 맞는 것을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요 마음이 정직한 자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자이다. 사람의 마음은 군대의 지휘통제소와 같아서 마음이 정직하면 말과 행동도 정직하게 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함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도덕성을 가진다. 도덕성이란 의와 선과 진실을 말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와 사랑은 이런 의인들을 두루 감싼다.
다윗은 또 의인들에게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평강과 형통의 복을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신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6, 18).
우리는 죄사함의 복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돌리자. 또 죄사함 받은 자답게 모든 죄를 버리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죄는 감추어 둔다고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이 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다 고백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신처이시며 환난에서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을 찾아 만나도록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의 갈 길을 보이신다. 우리는 무지한 말과 노새같이 되지 말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순종하자.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그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자. 그러면 기쁨이 우리의 삶에 넘칠 것이다.
제 33 편
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33편 강해 :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송함
[1-3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여호와 안에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오늘날 의인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쁨의 이유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해야 하며 또 기쁨으로 그를 찬송한다. 찬송은 정직한 자들의 마땅히 할 바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찬송은 경건한 성도의 신앙고백이며 삶의 특징이며 삶의 열매이다(히 13:15).
본문은 찬송의 방법에 대해 말한다. 첫째, 우리는 악기를 사용하여 찬송한다. 수금(키노르)은 리라(lyre)라는 작은 통속적 악기이다. 비파(네벨)는 수금보다 조금 나은 작은 하프 같은 악기이다. 악기의 가장 좋은 용도는 찬송이다. 둘째, 우리는 새 노래로 찬송한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찬송하라는 뜻일 것이다. 셋째, 우리는 즐거운 소리로 찬송한다. 찬송은 즐거움으로 불러야 찬송답다. 넷째, 우리는 공교히 연주한다. 우리는 목소리든지 악기든지 가장 아름답게, 잘 연습하여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4-7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진실하심이로다].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시며 그의 행사들이 다 진실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진실로 세상을 섭리하신다. 이 사실은 악인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되지만, 성도들에게는 기쁨의 찬송의 이유가 된다.
하나님을 기쁘게 찬송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 때문이다. 창조 세계가 그의 사랑의 결과이며 그의 섭리의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그는 그의 선하심으로 만물을 돌보시고 먹이신다. 특히 그는 그의 긍휼과 인자로 죄인들을 구원하셨고 또 여전히 연약성을 가진 성도들을 오래 참으시고 돌아보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모든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신다(시 103:3-5).
하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 만상(萬象) 곧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 즉 해와 달과 별들은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다. ‘그 입 기운’은 성령을 가리킬 것이다. 입 기운은 말할 때 나오므로 말씀과 거의 같은 뜻일 것이다. 삼위는 하나이시다. 또 바닷물은 육지로 올라와 뒤덮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에 중력을 주셔서 바닷물이 고이게 하시며 달의 인력을 인해 바닷가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게 하신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사용해 자연만물을 보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위대한 관리자이시다.
[8-12절]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이는]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섰음이로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에차)[의논, 계획]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마카솨보스)[생각들, 계획들]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모든 사람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광대한 우주 안에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그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이유는 그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은 ‘그대로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창 1:7, 9, 11, 15, 24, 30).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의 목적과 계획들을 다 폐하시고 무효케 하신다. 역사상 세계적 제국들, 즉 바벨론, 메대 파사, 헬라, 로마 등의 제국들의 계획들이 폐해졌다.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나, 그 후 러시아나 중국이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목적과 계획들이 그러했다. 그들의 계획들은 다 폐해졌지만,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영원히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사 46:10).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인 나라, 곧 그가 자기 기업으로 택하신 백성은 복되다. 왜냐하면 세상 나라들의 계획은 다 폐하여지고 세상 나라들은 다 망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그의 뜻은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행복자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신 33:29; 시 65:4).
[13-15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야카드 립밤)[그들의 마음을 비슷하게(KJV), 그들의 마음을 다(NASB, NIV)]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말한다(시 2:4; 11:4; 115:16; 사 66:1; 마 5:34; 계 4:2).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9). 시편 115:3은 하늘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시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높은 하늘에 계실지라도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신다. 오늘날 인공위성들은 고성능 망원렌즈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땅에 있는 물체들과 그 움직임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이 만든 인공위성보다 더 성능이 좋으시다. 비록 사람들이 많고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고 있을지라도, 또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다양할지라도, 그는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실 수 있다. 그래서 시편 139편 저자는 하나님을 떠나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하였고(7-9절), 또 히브리서 4:13은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으신 자이시므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다 감찰하신다. 그는 사람의 생각과 심리와 감정을 통달하시는 가장 뛰어난 심리학자이시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다 아시고(히 4:12; 계 2:23) 그들의 모든 말과 행위도 다 아신다(시 139:3-4).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의 모든 언행에 대해 공의롭고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이다(마 12:36; 롬 2:6; 계 20:12).
[16-19절]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많은 군대와 용사와 말의 힘은 구원이 되지 못한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큰 용사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하였지만, 소년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쓰러졌고 죽임을 당했다.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헬라나 로마가 망한 것이나 소련이 붕괴된 것은 군사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큰 군대와 많은 군사력이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하였고(삼상 17:47), 또 시편 3:8에서도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보살피신다. 그는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기근 시에 살게 하신다. 죄로 인해 죽은 영혼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며, 영혼이 살면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의 육신적 필요도 공급하시고 채우실 것이다.
[20-22절]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이는]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이는]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면 그를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이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고 바라면, 우리는 그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것이며 그가 우리의 도움과 방패 되심을 풍성히 체험할 것이다.
시편 3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자. 찬송은 성도가 마땅히 할 일이며 악기로, 새 노래로, 즐거이, 또 공교히 찬송해야 할 일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긍휼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자. 우리는 왜 그러해야 하는가? 그것은 열방의 계획들은 다 폐하여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복되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감찰하신다. 인간의 힘이나 말(馬)의 힘은 무익하고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건져주신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과 방패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의지하고 또 주의 인자하심을 늘 사모할 때, 우리의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방패 되심을 늘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자.
묵상
시편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존하심을 강하게 느낀다.
수많은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높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완전하심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어서 시편을 읽고 묵상할 때 가슴에 기쁨이 차오르고 마음이 든든해지고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온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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