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편
〔다윗의 시〕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28편 강해: 부르짖어 기도함
[1-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보르)[구덩이]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다윗은 죽음의 구덩이에 내려갈 듯한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앙훈련의 기회이었다.
다윗은 그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1절, “여호와 나의 반석이시여(KJV, 원문의 액센트),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2절, “내가 . . . 주께 부르짖을 때에.” 부르짖음은 조용히 묵상하거나 속삭이는 기도가 아니고 큰 소리로 하는 기도, 때때로 울부짖는 기도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귀를 막지 마시기를 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의 작은 소리도 잘 들으신다. 하물며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얼마나 더 잘 들으시겠는가. 우리의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지 않는다면,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하며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다윗은 주의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성소’라는 원어(데비르 코드쉐카)는 ‘성소의 내실(內室)’ 곧 지성소(NIV)를 가리킨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간절함의 표시라고 본다.
[3-5절]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과 함께 이끌지 마시기를 구한다. ‘함께 끈다’는 말은 동등하게 행하게 버려두거나 동등하게 취급하여 처리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악인처럼 악하게 행동하게 버려두지 마시고 그를 지켜 바른 길로 행케 하시며, 또 그를 악인처럼 멸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 것이다. 즉 그는 자신과 악인의 결말이 다름을 증거해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본문은 악인들의 모습도 증거한다. 그들은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다. 즉 악인들은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다. 또 악인들은 악하며 악을 행한다. 악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생각지 않는다. 즉 그들은 불경건하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다.
본문은 악인들의 결말도 증거한다. 4절,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행한]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의인의 결말과 악인의 결말은 명백히 다르다.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이다.
[6-7절]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고 진심으로 그를 의지하였고, 그의 믿음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표현되었다. 믿음은 기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주께서는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고 교훈하신 후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부언하셨다(눅 18:8).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주셨고 그를 도우셨다. 7절,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나의 힘’이라는 말은 낙심하거나 연약할 때 힘이 되셨다는 뜻이며 ‘나의 방패’라는 말은 원수들의 비난과 공격을 막아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를 도우시고 힘 주시고 지켜주신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마가복음 11:24,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받는]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제 다윗은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한다. 찬송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높이는 노래이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자마다 찬송할 것이다.
[8-9절]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저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며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왕 다윗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힘이시요 기름 부음 받은 자신에게 구원의 산성이 되심을 확신한다.
다윗은 그 하나님께 몇 가지 소원을 아뢴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구한다. 구원은 원수의 핍박이나 질병이나 여러 재난에서 건져내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특히 그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셨다. 이 큰 구원에 비교해보면,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어떤 어려움에서라도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산업에 복 주시기를 구한다. ‘그의 산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다(시 7:6; 14:2; 26:18; 시 135:4). 하나님의 산업은 오늘날 신약교회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주시는 자이시다. 그의 복은 영육의 것을 포함하고 현세적인 것과 내세적인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영육의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셋째,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 목자가 되시기를 구한다. ‘목자가 된다’는 원어(라아)는 ‘[양을] 먹인다, [양을] 인도한다’는 뜻이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양된 우리에게 영육의 양식을 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넷째,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영원토록 붙드시기를 구한다. “영원토록 드십소서.” ‘든다’는 원어(나사 )는 ‘들어올린다, 붙든다, 돕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도우셨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붙드시고 도우실 것이다.
시편 2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죽음의 구덩이에 내려갈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시며 특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 전심으로 올리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예레미야 29: 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둘째로, 우리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깨닫고 악인으로 살지 말고 의인으로 살자. 우리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오직 선을 취해야 한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고, 특히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하자. 우리는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영육으로 먹이시고 영원히 붙드시는 하나님의 힘과 구원을 믿고 간구하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때,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진심의 찬송을 올리자.
제 29 편
〔다윗의 시〕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29편 강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송함
[1-2절]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은 이 세상 권세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다윗은 이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영광과 능력을 자기 자신들에게 돌리기 쉽다. 그러나 모든 권세는 이 세상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만 온 우주에 홀로 참 권세자시다. 사람의 권세는 일시적이며 얼마 동안 있다가 조만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라’는 말을 두 번이나 말한다. 이 세상의 권세자들은 모든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
다윗은 또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 사람의 이름이 그 자신의 인품과 사회적 지위와 영광을 나타내듯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과 그의 지위와 영광을 나타낸다.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은 하나님께서 본래 가지고 계신 영광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피조물이 만든 분이 아니시고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 즉 영원자존자(自存者)이시다. 그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것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지혜와 능력, 아름다움이 충만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본래 가지고 계신 영광, 즉 그의 이름에 합당한 그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한다.
다윗은 또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한다. ‘거룩한 옷을 입고’라는 원어(베하드랏 코데쉬)는 ‘거룩함의 영광으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와 구별되고 특히 죄악된 것들과 구별되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되 이 세상의 죄악된 것들과 구별된 거룩한 생각과 방식으로 경배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거룩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부패하되 예배까지 부패하여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거룩하게 드려져야 한다.
[3-6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3절부터 9절까지에 ‘여호와의 소리가’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 그것은 하늘의 천둥소리를 가리킨다고 본다. 비올 때 때때로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는 창조자와 섭리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폭우를 쏟아내시기 전에 하늘이 캄캄한 비구름으로 뒤덮이게 하시고 천둥과 번개를 치게 하신다. 자연 세계의 큰 위엄은 창조주 하나님의 큰 위엄을 나타낸다.
천둥과 번개가 얼마나 요란하고 힘이 있든지 그 소리는 백향목을 꺾어 부순다. 백향목은 키가 36미터까지나 크고 튼튼한 나무이다. 그러나 번개와 벼락이 치면 그런 큰 나무도 꺾이며 그 토막들은 송아지같이 사방으로 뛸 것이다. 레바논과 시룐은 들송아지같이 뛸 것이다. 시룐은 헤르몬 산을 가리킨다. 헤르몬 산은 레바논 산 동편에 있는데, 시돈 사람들은 그 산을 시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7-9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본문도 뇌성과 번개를 가리킨다. 광활한 광야는 하나님의 우렁찬 천둥소리로 진동한다. 9절에 ‘낙태한다’는 원어(쿨)는 ‘출산한다’는 뜻이다(KJV, NASB). 본문은 새끼를 밴 암사슴이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새끼를 출산한다고 표현한다. 천둥, 번개, 폭우로 수풀에 감추인 것이 다 드러난다. 9절의 ‘모든 것’(쿨로)은 ‘그의 모든’이라는 뜻으로 ‘그의 모든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자연만물도 그러하지만, 특히 그의 모든 백성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10절]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坐定)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홍수 때에’라는 원어(람맙불)는 ‘그 홍수 때에’라는 말로서 노아 시대의 홍수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에 그 홍수 가운데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홍수를 내리셨고 그 홍수를 주관하셨다. 창세기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노아 홍수 때에 증거되었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유일하고 영원하신 왕이시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한 분뿐이시다.
[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실 수 있고 주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완전하여 사람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는 힘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는 자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사야 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빌립보서 4: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신다. 그는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왕이시며 천지를 진동시키실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천지에 평안과 안정을 주실 수도 있다. 이사야 45:7,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그에게는 사람의 모든 시끄러운 문제들을 해결하실 능력이 있으시다. 참 평안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편 2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영광과 능력을 우리 자신이나 어떤 피조물에게 돌리지 말고 하나님께만 돌리자.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즉 그의 본래의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룩한 방식으로 그에게 경배하자. 2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우리는 자연만물 속에, 특히 천둥과 번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깨닫고 거룩함의 영광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영원한 왕이심을 깨닫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또 그가 자기 백성에게 힘과 평강을 주심을 깨닫고 그에게 구하여 얻자.
제 30 편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30편 강해: 죽음의 위기에서 건지심을 찬송함
[1-3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쉐올)[무덤]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보르)[구덩이]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의 대적들은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끌어내소서,”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또 그는 심한 질병으로 거의 죽을 지경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나를 고치셨나이다,”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성도에게는 종종 죽음의 위기가 있다.
다윗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어려운 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지만,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줄 모르는 자는 불쌍하다. 고난은 유익하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인격을 단련시키신다(롬 5:3-4). 다윗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체험하며 하나님을 높인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곤란에서 건져내셨고 병을 고치셨고 죽음의 구덩이에서 그를 끌어내셨다. 다윗은 이 체험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위해 살게 되었다. 성도는 기도의 응답, 즉 구원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더 높이며 그를 섬기며 그를 위해 살게 된다.
[4-5절] 주의[그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레제케르 코드쇼)[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이는 잠시간은 그의 진노 안에 있으나 생명은 그의 호의 안에 있음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다윗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그의 뛰어나신 위엄과 영광, 그의 크신 긍휼의 영광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것이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잠시 동안 지속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했다(애 3:33). 그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매를 들어 그들을 때리시지만, 자기 백성을 영원히 노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다윗은 “생명은 그의 호의 안에 있다”고 말한다(KJV). ‘생명’이라는 원어(카임)는 ‘평생’이라는 뜻보다는 ‘복된 생명’이라는 뜻 같다. 그것은 구원과 기쁨과 복을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물론 본문은 이러한 생명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전반부의 ‘잠시간’이라는 말(레가)과 대조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또한 고치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호의는 그의 진노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이다.” 사사기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평강의 기간은 그가 내리신 징벌의 기간보다 보통 2배에서 심지어 5배 가량까지 길었다.
[6-7절]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형통할 때 자신감과 안정감을 가졌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지 못하는 육신적 자신감과 안정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상 그런 자신감과 안정감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삶에는 평안과 고난이 번갈아 나타나며 고난이 닥치면 사람은 여지없이 자신의 연약과 무력을 드러낸다. 우리의 평안과 힘은 하나님 안에서만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힘과 용기를 가진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자신의 산을 세우셨다고 고백한다. ‘내 산’ 곧 다윗의 산은 다윗의 왕국을 가리킬 것이다. 그 왕국은 시온 산에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구약성경은 왕국을 ‘산’으로 자주 표현한다(사 2:2; 단 2:35, 44). 자신의 왕국이 하나님의 은혜로 굳게 세워졌다는 다윗의 깨달음은 바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127:1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도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고전 15:10). 우리의 가정이나 사업도, 교회도 그러하다.
그러나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가리우시니 자신이 근심하였다고 말한다. 세상이 밝은 것은 태양 때문이며 그것이 가려지면 땅 위에 그늘과 어두움이 생기는 법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아래서 인생은 평안과 형통을 누리지만, 그 빛이 가려지면 그에게 즉시 환난과 곤고함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이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8-10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죽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9절 전반부를 직역하면, “나의 피에,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이다. ‘나의 피에’라는 말은 ‘내가 피 흘려 죽을 때에’라는 뜻 같다. 그것은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라는 구절과 같은 뜻이라고 보인다. 다윗은 자신이 죽고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죽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그가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9절 후반부가 그것을 보인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이었다. 그는 삶의 의미를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서 찾았다. 이러한 삶의 목표는 매우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사 43:21). 사도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고후 5:15).
다윗은 자신의 생명의 회복과 연장이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으로 될 것을 믿었다. 그것은 올바른 생각이다. 우리의 생명의 연장과 강건함 그리고 의롭고 바른 삶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11-12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다윗은 전에 슬픔 가운데 있었고 베옷을 입은 자와 같았다. 그것은 그의 대적들 때문에, 그의 질병 때문에, 죽음의 위협 때문에이었다. 그는 큰 질병 중에, 죽음의 위기에 있었다. 이 세상은 슬픈 일이 많은 세상이며 우리도 구원받기 전에는 슬픈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고 그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다. 죽음의 곤경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이처럼 기쁨의 춤을 출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에게서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뻐하였다(출 15장). 에스더 때 유다인들은 멸절될 위기에서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로 구원받았을 때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해 즐거움이 되었던 12월 14일과 15일을 부림절로 지키기 시작하였다(에 9:21-22).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때 슬픔이 변하여 춤추며 즐거워함이 되리라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다(렘 31:13).
다윗은 그런 기쁨으로 춤추며 기뻐하였다.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교훈한다(살전 5:16; 빌 4:4).
하나님의 큰 구원을 체험한 다윗은 이제 심령에서 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고 영원히 그에게 감사를 올리고자 한다. ‘내 영광으로’라는 말은 ‘내 영혼으로’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그의 은혜를 찬송케 하시기 위함이다(엡 1장).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야 한다(히 13:15).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하지 말자. 성도에게는 대적자도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때도 있고 주께서 얼굴을 가리우셔서 근심하며 슬퍼할 때도 있다.
우리는 고난받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의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다. 우리는 잠깐 그의 진노 안에 있으나 그의 호의 안에 우리의 생명이 보존될 것이다. 저녁에는 울음이 있을지라도 아침에는 곧 기쁨이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자. 우리는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감사하자. 우리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원히 그에게 감사하자.
묵상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대표적 믿음의 인물이다. 마음이 간절하고 긴박한 상황에는 정말 부르짖어 기도하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날을 계속 보내다 보면 기도가 점점 약해짐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때로 믿음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심을 감사드리면 어찌 매일 매일이 새롭고 감사드리지 않겠는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부르짖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격과 감사와 주님의 은혜가 가슴에 가득해서 기도드리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 질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늘 선포하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의 태도는 참 중요하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 공의로우심과 선하심 전지전능하시며 거룩하심
더구나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드리는 성도들을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성경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34편-36편 (0) | 2021.12.02 |
---|---|
시편 31편-33편 (0) | 2021.11.26 |
시편 25편-27편 (0) | 2021.11.12 |
시편 22편-24편 (0) | 2021.11.09 |
시편 19편-21편 (0) | 2021.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