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하나님의 말씀
[1-6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낮]은 날[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심을 증거한다. 자연만물은 하나님을 증거한다. 이것을 자연계시라고 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선포하고 그의 창조 사역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은 이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의 지혜와 능력을 알 수 있고 그것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다(롬 1:20).
자연계시는 무언(無言)의 계시이다. 그것은 무언의 선포요 무언의 지식이다. 낮은 낮에게 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달과 별들을 통하여 전하지만,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없다. 자연계시의 소리는 세상에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미친다. 해는 멋있는 새 신랑과 같고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 선수와 같으며, 온 세상은 그것의 따뜻한 온기(溫氣)를 받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연 은총 속에서 살고 있다(행 14:17; 17:25-28).
[7-8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본문은 성경의 복된 성격과 유익에 대해 말한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은 다 성경을 가리킨다. 첫째로, 성경의 규범은 완전하다. 성경은 오류가 없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규칙이다. 그것은 완전한 규범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악됨을 깨우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나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고 병든 영혼을 고치며 침체된 영혼을 회복시킨다.
둘째로, 성경의 증거는 확실하다. 성경의 증거가 확실하므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와 내용이 된다. 그것은 우둔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준다. 누가복음 1:4는 그 책을 기록한 목적이 우리가 배운 내용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고, 디모데후서 3:15는 성경이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말했다.
셋째로, 성경의 교훈은 정직하다. 성경은 의로운 지침이 된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참 평안과 기쁨을 준다.
넷째로, 성경의 계명은 순결하다. 성경의 계명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며 우리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는 거룩한 계명이다. 순결한 말씀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한다. 죄는 영적으로 사람의 눈을 어둡게 만들지만, 의와 거룩은 사람의 눈을 밝게 만든다.
[9-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道)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악에서 떠나야 한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또 그의 진리는 영원하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할 것이다. 또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고 다 의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에 대해 확실하게 가르친다. 그것은 우리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말씀이다. 세상에서 금은 가치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세상 물건은 결국 썩어질 것이며 마지막 심판 날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한 것들, 즉 믿음과 의, 천국과 영생을 가져다 준다. 또 성경은 “송이꿀보다 더 단” 말씀이다. 꿀은 우리의 입에만 달고 좋지만, 성경은 우리의 영혼에 송이꿀보다 더 달아 참된 기쁨과 위로와 힘과 용기를 준다.
[11절]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하나님의 뜻은 계명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을 요구하신다(신 10:12-13).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키면 복을 누리며 큰 상을 받을 것에 대해서도 말한다. 신명기 28:2-6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할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사회적 복에 대해 증거한다.
[12-13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故犯罪)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에삼)[온전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허물(쉐기아)은 ‘실수로 범하는 죄, 부지(不知) 중에 범하는 죄’를 말한다. 레위기 4:2의 ‘그릇 범하는 죄’(쉐가가)와 같다. 우리는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는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전 4:4). 그러나 영적으로 어린 자들에게는 실수로 범하는 죄들이 적지 않으며 사람은 무지하여 자기 실수를 잘 깨닫지도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또 기도 중에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그리고 친구의 충고를 통해 자신의 부족과 실수를 깨달을 수 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책망과 징계를 통해 온전케 된다(잠 22:15).
우리는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난다’는 말은 ‘깨끗케 된다’는 뜻이다. 숨은 죄도 죄이다. 그러므로 숨은 죄도 깨닫고 버림으로 깨끗함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숨겨진 죄가 하나도 없도록 하나님께 고백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고범죄’(故犯罪)라는 원어(제딤)는 ‘뻔뻔스런 죄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인 줄 알면서 범하는 죄이다. 뻔뻔스런 죄는, 실수로 짓는 죄보다 더 큰 죄이다. 예를 들어, 배교(背敎)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고의로 저버리는 고범죄이다. 고의적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했다. 우리는 고범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직함’ 곧 ‘온전함’이다. 그것은 크고 작은 죄를 떠나는 것이다. 고범죄는 물론이고 실수의 죄까지도 깨닫고 버리는 것이다.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14절]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은 성도들의 마음의 묵상이요 입술의 고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고 후시대 성도들을 위해 교훈이 되게 하셨다. 그것들은 성령의 특별한 감동으로 기록되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전달하는 성경말씀이 되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심과 그의 속성이 어떠함을 알자. 자연만물은 세상에 하나님께서 계심과 그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핑계할 수 없는 증거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한 말씀임을 알고 그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자. 또 그 말씀이 꿀보다 더 단 것을 체험하자. 우리는 성경을 읽고 듣기를 힘쓰자.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며, 또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큰 상을 얻는다.
셋째로, 성경은 무엇보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멀리함으로 정직한 자, 곧 온전한 자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3: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온전함이다.
20편: 환난 날에 도우시기를 기원함
[1-3절]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인생의 여정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지난 130년의 세월을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표현했다(창 47:9).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시편 34:19는 의인에게 고난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육신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도우시며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를 높이 드신다는 말은 안전한 곳에 두신다는 뜻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고 표현했다(창 48:16).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시 46:1). 환난 때에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큰 복이다. 다윗에게 응답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응답하셨고 또 이 이후에도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신 곳 성소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성소는 일차적으로 천국을 가리키지만(왕상 8:30), 또한 땅 위에 있는 성막과 성전도 가리킨다(출 25:8).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성소에 거하시고 거기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말했고(왕상 8:29), 다니엘은 포로 생활 중에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단 6:10).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전이시다(요 2:19, 21). 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시온에서 우리를 붙드신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고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합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마태복음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본문의 ‘너’는 참된 성도를 가리킨다. 다윗은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다른 성도에게도 같은 체험이 있기를 기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다.
다윗은 소제와 번제에 대해 말한다. 소제는 곡물 제사로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온전한 순종을 상징하는 예물이고, 번제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예물이라고 본다. 또 구약의 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마음가짐을 교훈하는 뜻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헌신해야 한다. 원문에 ‘소제들’과 ‘번제들’이라는 복수명사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예배, 모든 신앙고백, 모든 봉사, 모든 순종, 모든 헌금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많은 예배와 많은 찬송과 많은 기도와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의 모든 예물, 모든 감사와 신앙고백과 헌신과 순종과 봉사와 헌금을 하나님께서 과연 기쁘게 받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옛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 4:4). 하나님께서는 그를 참으로 경외하고 중보자의 속죄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의 예배들, 찬송들, 기도들, 봉사들, 헌금들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예물들을 기쁘게 받으시면 그는 예물 드린 자에게 더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다.
[4-5절]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계획]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기뻐 외치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旗)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청원, 간구]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성도에게는 마음의 여러 소원들과 계획들, 기도의 제목들이 있다. 특히 환난 중에 있는 자에게는 그 환난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중요한 소원일 것이다. 성도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선한 소원과 기도 제목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과 청원을 들어주시기를 기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했다(빌 2:13).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소원은 육신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지만, 그가 주시는 선한 소원들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시다(시 65:2).
다윗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환난에서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면서 기뻐 부르고 승리의 깃발을 세우겠다고 말한다. ‘승리’라는 원어(예슈아)는 ‘구원, 승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확실하므로 성도의 구원과 승리도 확실하다. 또 동료들과 교회의 온 회중은 고난 당하던 형제의 구원과 승리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함께 기뻐할 것이다.
[6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고 본다. 구약시대에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은 다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표이었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다. 그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이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디도서 3: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그들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성령의 인치심 혹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성도가 환난 중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외면치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른손으로 그를 구원하실 것이다.
[7-9절]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저희는 굴복하였고 엎드러졌으나 우리는 일어났고 바로 섰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자랑한다’는 원어(나즈키르)는 ‘언급한다, 부른다, 자랑한다’는 뜻이다(BDB). 사람들은 병거와 말, 즉 세상적, 인간적 도움물을 의지한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재물을 의지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르다. 성도는 세상 것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성도는 오직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의 이름만 부르며 의지하며 자랑한다. 그것이 참 믿음이다. 세상 것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헛되이 만드실 때 확실히 실패하고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면 사람이 가졌던 건강도 잃어버리고 그 누렸던 물질적 유여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성도들을 건지시고 일어나게 하시고 바로 서게 하실 것이다.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요청해야 하며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여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왕이시다. 그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시편 20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세상 사는 동안 성도에게는 고난과 환난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특정한 죄에 대한 징벌로 주시는 것이든지, 또는 죄의 징벌이 아닌 경우에도 그의 깊으신 뜻 가운데 우리의 인격의 단련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고난과 환난일지라도 낙심치 말고 잘 대처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 즉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통치자 곧 왕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환난 중에 구원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올리는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날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우리의 선한 소원과 계획, 우리의 청원과 간구를 그는 외면치 않으실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오직 그의 계명을 지키자.
21편: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을 기뻐함
[1-2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다윗 왕은 하나님의 힘과 구원을 체험하였고 그 때문에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그의 구원을 기뻐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구원이며 그것은 모든 믿는 이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이다.
다윗이 구원받은 것은 그의 기도의 응답이었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소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그의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 백성의 진심의 기도와 소원을 잘 들어주신다.
[3-4절] [이는]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씌우셨음이니이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의 소원을 주셨다고 고백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선한 복으로 그를 맞으셨고 그의 머리에 금면류관을 씌우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나라의 왕위에 올라 금면류관을 썼고, 또 이방 나라들과의 여러 전쟁들에서도 다 승리하여 적국들의 왕의 면류관들을 머리에 쓰곤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다 선하고 아름답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슬픔 대신 기쁨을, 질병 대신 건강을, 가난 대신 일용할 양식을, 싸움 대신 평안을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치와 고통 대신 금면류관 즉 큰 영광과 존귀를 주신다.
특히,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도피하던 때나 주위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던 때들이나 압살롬의 반역의 때 등 자신의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들에 하나님께 생명의 보존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영영한 장수 곧 영생의 구원을 주셨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만 사람에게 생명의 연장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모든 죄를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에게 복종하기를 결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신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다. 이 구원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이다.
[5-7절]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이는]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하심이니이다]. [이는]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아니할 것임이니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때때로 고난과 모욕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고 영광을 주시고 존귀와 위엄을 입혀주신다.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로 인하여 요셉은 여러 해의 종살이와 감옥살이 후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하나님의 작정과 뜻 가운데 다윗은 외롭고 힘든 긴 도피 생활 후 왕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삼일 만에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셨다. 성도의 영광은 장차 부활의 몸으로 천국에서 영생할 때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이 다윗에게 영광과 존귀가 되는 것은, 그것이 크고 영원한 복이며 거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몸의 건강과 재물과 세상 권세 같은 복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 즉 영생과 부활과 천국은 영원하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구원은 현세와 내세에 지극한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이 성도들에게 영원한 복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지하는 자를 긍휼로 붙드셔서 요동치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정말 아는 자는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를 붙들어 요동치 않게 하실 것이다. 연약한 인생이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10에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했다.
[8-9절]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8-12절에서 한글성경에 ‘네, 너를, 네가’라고 번역된 말들은 ‘주의, 주를, 주께서’(2인칭)라고 번역하는 것(KJV, NIV, Poole)이 문맥적으로 바를 것 같다. 다윗은 말한다. “주의 손이 주의 모든 원수들을 발견하심이여, 주의 오른손이 주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시리로다. 주께서 노하실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주의 손이 원수를 발견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심판하신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의 원수이며 그들을 미워하는 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을 학대했던 애굽 왕 바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웠던 아말렉 사람들, 이스라엘을 자주 침공했던 블레셋, 암몬, 에돔 등의 이웃 나라들은 다 원수들이었다. 또 사울 왕이나 압살롬 등은 다윗 개인의 원수이었다.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던 로마 황제들, 천주교회, 일본 제국, 공산당은 참 교회의 원수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그들을 불로 삼키시며 소멸하실 것이다. 그는 심히 음란했던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비를 내려 멸망시키셨다(창 19장).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던 나답과 아비후를 불에 삼키어 죽게 하셨다(레 10장). 모세는 신명기 32:22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일어나서 지옥 깊은 곳까지 사른다고 말했다. 히브리서 12:29는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표현했다. 마가복음 9:43-48에 보면, 예수께서는 꺼지지 않는 불의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21:8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지옥 불못을 증거하였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섭다. 그것은 소멸하는 불이다.
[10절] 네가[주께서]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멸하심]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끊으시리로다].
사람은 보통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하기 원하지만, 참으로 그들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의인의 자녀들은 복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고(출 20:6), 또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의 복을 약속하셨다(신 28:4).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증거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 . . 그[의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하였다(시 37:25-2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자녀들을 땅에서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워하시는 자들의 죄를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갚겠다고 말씀하셨고(출 20:5),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자들의 자녀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신 28:18). 성경은 악인들의 자녀들이 망한 예들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와 그 동료들과 그들의 가족들, 즉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매장되게 하셨다(민 16장).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아간의 범죄로 아이 성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간뿐 아니라, 그 자녀들도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게 하셨다(수 7장). 또 그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아들들과 손자들 70명을 하루아침에 그들의 선생들에 의해 다 목베임을 당하게 하셨다(왕하 10장).
[11-13절] 대저 저희는 너를[주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네가[주께서] 저희로 돌아서게 함[하심]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당기시리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벌하실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을 계획하고 해로운 방책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방책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은 다니엘을 모함해 죽게 하려 했던 그의 동료들이나, 모르드개 죽이기를 왕에게 요청하려 했던 악한 하만처럼(단 6장; 에 7장), 악한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실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려고 돌아설 것이다. 악한 자들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그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굴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쫓던 애굽 왕 바로의 병거들과 기병들을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하셨듯이, 또 유다를 침공했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다 죽은 시체가 되게 하셨듯이, 악한 자들을 징벌하시고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을 높이고 노래하고 칭송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한 자들은 다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살리셨고 죄와 사탄과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시편 21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으로 성도를 도우시고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신다. 성도는 원수들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며,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아름다운 복을 주신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복을 ‘영영한 장수’ 곧 영생의 복, 큰 영광의 복, 존귀와 위엄의 복, ‘영영토록 지극한 복’이라고 표현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들을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다윗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악령들이며 또 악한 세상 권세자들과 핍박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셨고 지금도 구원하시며 앞으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며 우리의 원수들을 마침내 다 멸하실 것이다.
둘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을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졌던 죄인들을 그의 긍휼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하나님의 그 구원의 능력을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남은 죄인들을 오늘날에도 그 능력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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