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시편 4편-6편

헤븐드림 2021. 10. 21. 01:43

제 4 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4편: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평안

표제어에 ‘영장(伶長)’이라는 말(메낫체아크)은 ‘찬양지휘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시편에 ‘현악’(네기노스)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어를 가진 것은 7개가 있다(4, 6, 54, 55, 61, 67, 76편).

[1절] 내 의(義)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의(義)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성도의 의는 그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의에 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구약시대에는 짐승 제사로,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성도는 그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기도한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곤란 중에 너그럽게 하셨다고 말한다. ‘너그럽게 하셨다’는 원어(히르카브타)는 ‘안심케 하셨다, 건지셨다’는 뜻이다. 과거에 다윗이 어려운 일을 당하여 마음에 근심과 걱정, 불안과 초조함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주셨고 그를 건져주셨다. 다윗은 과거에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현재의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다윗은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말한다. 실상, 다윗이 가진 의(義)도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그가 지금 당한 환난에서도 그에게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주시고 그를 건져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2-3절]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다윗은 사람들이 여러 날 동안 그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한다고 말한다. 그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왕권의 영광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셨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백성들은 그의 왕권의 영광을 인정하고 높이고 그를 존경했어야 했다. 그를 왕으로 세우신 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해치려 하고 있었다.

다윗은 또 그들이 허사를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악인들은 거짓을 구하고 그들의 계획은 다 허사(虛事)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지 않으시며 그것을 무(無)로 돌려버리시기 때문이다. 옛날에 동생 요셉을 종으로 팔아버렸던 형들의 계획이나, 훗날에 왕을 속이고 다니엘을 모함했던 그의 동료 총리들의 계획은 다 허사가 되었다. 악한 자들의 악한 계획은 다 허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계획을 폐하시고 경건한 자들을 택하신다. ‘경건한’이라는 원어(카시드)는 ‘인자(仁慈)함’(케세드)을 가진 자라는 맛을 가진 단어이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인자(仁慈)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의 인자한 성품을 본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그런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또 그는 이런 자를 인정하시고 도와 주시고 그의 대적들을 파하신다. 경건한 자에게도 어려운 일들이 있으나 그는 결국 그 모든 일들에서 승리할 것이다.

[4-5절]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다윗은 대적자들에게 말한다. ‘떨라’는 원어(리게주)를 헬라어 70인역은 ‘분노하라’고 번역했다. 본문은 다윗의 대적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뜻이거나, 에베소서 4:26의 인용처럼 그들이 다윗을 향해 분노함을 지적하는 뜻일 것이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노한 감정을 버리고 범죄치 말아야 한다.

다윗은 또 그들이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하라고 말한다. 사람은 밤에 침상에 누울 때 자신을 반성케 된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밤에 침상에 누워서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잘못되고 지나친 말이나 감정이나 행위를 버리고 잠잠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그들에게 의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한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를 예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은혜의 수단이었다. 참된 제사는 사람의 죄를 씻고 그에게 의를 준다. 물론 성도는 형식적 종교 의식을 버리고 참된 믿음과 진심으로 의로운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또 다윗은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을 의뢰하라고 말한다. 아마 그들은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인간적 생각과 계산, 사람들의 수와 힘을 의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다 헛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들에게 그런 것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한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뿐이시다.

[6-8절]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에게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절망적 전망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앙망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다. 그것은 그의 진노의 얼굴이 아니고 그의 은혜의 얼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기쁨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 성령의 열매는 기쁨이다(갈 5:22).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이 충만한 나라이다(롬 14:17).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즉 추수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고백하였다.

또 그는 많은 대적자들의 비난과 핍박 속에서도 평안한 잠을 잤고 안전한 삶을 누렸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義)로 삼고 그를 의지하며 사는 성도가 누리는 복이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셨고 허락하셨다. 주 예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시편 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義)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의(義)가 되신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신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둘째로, 이 세상에는 곤란한 일들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곤란 중에 안정을 주셨고 지금도 또 미래에도 그러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대적자들의 악한 계획을 파하실 것이다.

셋째로, 악한 자들과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항상 주의 얼굴빛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기쁨과 평안을 주신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기쁨을 주신다. 성도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참 평안을 주신다.

 

 

 

5편: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심

 

[1-3절]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心思)를 통촉하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본문은 다윗의 기도에 대해 말한다. 첫째로, 그의 기도는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이었다. ‘심사’(心思)라는 원어(하기그)는 ‘중얼거림, 탄식’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고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 간절한 탄식의 기도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말한다. 그의 기도는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이었다.

둘째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하는 기도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른다.그는 하나님을 그의 왕으로 인정하며 그 앞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참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질 때 올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다. 우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올바른 고백이다. 참된 기도는 바로 이런 지식과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셋째로, 그의 기도는 정성스런 기도이었다. 그는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며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그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은 가장 합당하다.

[4-6절] [이는]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留)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못할 것임이니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원문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원수들을 물리치셔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악이 그와 함께 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그의 속성에 맞지 않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와 함께 있게 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므로 다윗은 지금 그를 대적하는 악한 자들의 위협 속에서 탄식하는 중에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곧 그들을 물리치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악자들을 미워하시며, 오만한 자들이 하나님의 눈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오만한 자’라는 원어(홀렐림)는 ‘자랑하는 자들’(BDB, NASB)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하시며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사람이 존귀하게 지음을 받았지만 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악하게 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실 수밖에 없다. 사람도 자기에게 있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더러워지면 버릴 수밖에 없다.

[7절]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을 믿는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에서 비롯된다.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사랑으로 택하심과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느냐, 못 입었느냐의 차이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가!

다윗은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를 힙입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고 그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주의 집’ (베세카)과 ‘성전’(헤칼 코드쉐카 ‘주의 거룩한 전’)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지만(시 65:4), 본문에서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을 가리킬 수도 있고(시 68:29) 하늘 성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시 11:4; 18:6). 여하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해 경배하는 것은 성도의 모습이다. 여기에 경건한 성도와 불경건한 악인과의 차이점이 있다.

[8절]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義)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나의 원수들’(KJV, NASB)이라는 원어(쇼레라이)는 ‘나를 해하려고 엎드려 주목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BDB).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의(義)로 삼고 살았을 뿐 아니라(시 4:1), 이제 원수들 앞에서 그의 공의로운 인도와 판단과 처분을 바란다. 성도는 스스로 원수에게 보복할 필요가 없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신 32:35; 롬 12:19). 하나님께서는 곧 공의로운 판단과 처분을 보이실 것이다.

[9절] [이는]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아첨함이니이다].

그가 하나님께 공의로운 판단과 처분을 호소한 이유는 그의 원수들이 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었다. 악한 자들은 자기의 이익과 불이익을 따라 이 말도 하고 저 말도 한다. 신실함이 없는 말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진실한 자는 그가 처한 상황이 그에게 이익이 되든지 해가 되든지 관계치 않고 바른 말을 하고 한결 같은 말을 한다.

또 그들의 심중은 심히 악하였다. 악인들은 겉보기는 선량할지라도 마음 속은 심히 악하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심히 악하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증거하였다(렘 17:9).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5:19).

또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다. 무덤이 열리면 나쁜 악취가 날 것이다. 악인들의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온다. 주께서는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말씀하셨다(마 12:35). 중생한 자에게도 악한 본성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교훈하였다(엡 4:31).

또 그들은 혀로 아첨의 말을 했다. 아첨의 말은 남의 비위를 맞추는 말이며 일종의 거짓말이다. 시편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아첨의 말은 상대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잠언 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10절]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다윗은 그의 원수들에 대해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시기를 구한다. ‘정죄하소서’라는 원어(하아쉼)는 ‘유죄(有罪)라고 선언하소서’(BDB), ‘유죄(有罪)라고 여기소서’(NASB), ‘벌하소서,’ ‘멸망시키소서’(KJV, Langenscheidt)라는 뜻이 있다. 다윗은 원수를 보복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판단하셔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벌은 공의롭고 철저하며 사람의 보복보다 훨씬 더 무섭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꾀로 인해 넘어지게 하시기를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악인들을 자기 꾀로 인해 넘어지게 하신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은 높이가 50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집 뜰에 세우고 의로운 모르드개를 거기 달아 죽이려고 계획하였으나 그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임을 당했다(에 5:14; 7:10). 다니엘서에 보면, 악한 자들은 선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죽이려고 한 법령을 제정케 하였으나 그들과 그 처자들이 거기에 던지웠다(단 6:7, 2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한 대로, 공의로 보응하신다.

셋째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쫓아내시기를 구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허물이 많았기 때문이며 또 주 하나님을 배역하였기 때문이다(9절). 하나님의 종 다윗을 대적하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쫓으시고 징벌하시기를 호소하였다. 그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자이었다.

[11-12절]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이는]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호위하실 것임이니이다].

본문은 성도에 대해 몇 가지로 묘사한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이다. 피하는 것은 환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다. 둘째로,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자요 섭리자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신 자임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것이다. 셋째로, 성도는 의인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자이다.

본문은 또한 성도의 기쁨에 대해 증거한다. 다윗은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다 기뻐하며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 성도도 똑같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고, 빌립보서 4:4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다.

본문은 성도의 기쁨의 이유로 11절에 “주의 보호로 인하여”라고 말하고, 12절은 원문에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실 것이기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원수들의 비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의인을 복 주시며 보호하시기 때문에 기뻐한다. 성도는 환난 중에도 기뻐한다.

시편 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악을 멀리해야 한다. 4 -6절,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고 교만한 자, 거짓말하는 자, 불신실한 자, 더러운 말을 하는 자, 아첨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버림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악을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도다운 삶을 늘 지켜야 한다. 리는 고난과 원수들의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만 의지하며 그를 경외하고 참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를 행해야 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주권 곧 그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의 공의의 판단과 처분만 구하며 아침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수고로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과 그의 약속 때문에 항상 기뻐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세의 복된 천국과 이 세상에서의 보호를 약속하셨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이며 그것은 우리의 기쁨의 이유요 원천이다. 또 주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그는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신다.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 또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기쁨이 된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자.

 

제 6 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6편: 눈물의 탄식을 들으심

 

[1-2절]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시고 악령으로 고통 당하게 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섭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그를 징계하지 마시기를 구한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이 수척하며 쇠약하고 뼈가 떨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긍휼과 치료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긍휼로 그의 몸의 연약을 치료하시고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부족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그에게 무엇을 구할 수 없다.

[3-5절]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는]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없음이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다윗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심히 떨린다고 말한다. 심령의 두려움은 몸의 연약 못지 않게 문제이다. 또 그의 고통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말한다.

마치 파선 당한 배의 선원들이 구조 신호를 보내면서 구조 요청을 하듯이, 다윗은 그의 연약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다윗과 함께 계셨고 그를 지키시고 도우셨으나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 곁에 계시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잠시 그를 떠나가셨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여, 돌아오소서”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그가 우리를 구원하셔야 할 이유가 도무지 없다. 그의 공의뿐이라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긍휼과 자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중단과 마침이 있고 우리의 구원과 회복이 가능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한 이유는 그가 죽으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으며 무덤에서 주께 감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람이 죽어 몸이 무덤에 묻히면 그 몸은 의식이 없는 시체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다. 그가 좀더 살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이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단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6-7절]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다윗은 지금 심한 고통의 상태에 처해 있다. 그는 탄식함으로 곤핍했다. 그의 심령은 답답하고 괴로워 신음하며 한숨지었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며 지쳤다. 또 그는 밤마다, 즉 여러 날들을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그의 침상과 요는 밤마다 많은 눈물로 적셔졌다. 그의 고통은 매우 컸다. 또 그의 눈은 근심으로 인해 쇠해졌다. 특히 그의 근심은 그의 많은 대적자들을 인한 것이었다.

다윗의 고통은 성도의 고통의 예이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통을 겪으셨다. 그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 하였고(요 5:16, 18), 그가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분기(憤氣)가 가득하여 저를 죽이고자 했다(마 12:14; 눅 6:11). 또 요한복음에 보면, 그가 성전에서 설교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돌을 들어 그를 치려 한 적도 있었고(요 8:59; 10:31), 누가복음에 보면, 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는 설교를 하셨을 때에 그들은 그에게 맹렬히 달라붙어 그를 비난하였다(눅 11:53-54). 마침내,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그를 죽이려고 의논했고 그 일을 이루었다(마 27:1). 그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사람들에게 멸시와 미움을 당한 질고를 아는 자’이셨다(사 53:3). 사람이신 예수님의 고통은 참으로 크셨다.

[8-10절]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들으셨음이로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본문은 다윗의 기도를 세 가지의 단어로 말한다. 첫째는 ‘곡성’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그는 밤마다 눈물로 그의 침상과 요를 적셨다. 둘째는 ‘간구’이다. 그는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었다. 1-4절에는 ‘여호와여’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1, 2, 2, 3, 4절).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하여 간절히 불렀다. 셋째는 ‘기도’라는 일반적 용어이다.

눈물의 간구를 올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한다. 그는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음이로다”(8절)라고 말하고, 또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9절)라고 말한다. ‘들으셨다’는 원어(완료형)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그의 확신을 나타낸다. 기도 응답이 아직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평안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라고 말한다.

다윗에게 주신 기도 응답의 내용은 그에게 악을 행하던 원수들이 홀연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떨며 그를 떠나가는 것이다. 전에는 교만하고 의기양양했던 그들이 이제는 몸둘 바를 모르게 부끄러워하며 심히 떨고 당황할 것이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구원과 승리도 있고(시 34:19) 천적(天的)인 평안도 있다(요 14:27).

시편 6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성도는 때때로 심신의 연약함에 떨어진다. 많은 경우 그것은 자신의 죄와 부족 때문에 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그가 우리의 심신의 연약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하자. 신약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십자가 대속의 의(義)를 힘입고 다시 일어나야 하고 의와 거룩과 선의 목표를 향해 담대히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의지하며 그렇게 하자.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세상에서의 환난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또 우리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과 그의 뜻에 맡기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게 감사하자.

이 세상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도 탄식과 눈물과 근심의 심한 고통의 때가 있을 수 있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다. 고난 중에 아뢰는 성도의 간절한 눈물의 간구와 호소는 반드시, 속히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며 우리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는 원수들도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물리쳐주실 것이다. 기도는 성도의 승리의 비결이다.

 

 

 

묵상

 

흔히 시편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 형편에 대해 탄식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라 하지만

나는 시편 4편과 5편 6편을 묵상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보다 더 친밀하게 느끼는 다윗의 믿음을 알 수 있었다.

 

때로 실수하고 부족해도 여전히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그의 기도와 기도드리는 마음의 자세를 보며 하나님의 관대하신 사랑을 확신하는 다윗의 아름다운 영적 고뇌를 생각케 하는 말씀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때때로 나 역시 하나님께 나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간구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에 차곤 한다.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시니까 긍휼을 베푸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다윗처럼 나를 억울하게 하거나 치명적인 아픔을 준 사람을 정죄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

그 얼마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절절한 그의 호소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참 놀랍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잘 자고 기뻐하며 담대하게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실 것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편을 읽고 묵상하며 가슴이 벅차다. 이토록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살아갈 힘을 주는 말씀이

너무도 귀한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며 나의 삶의 형편을 아뢰며 하나님이 나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며 살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힘쓰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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