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시편 1-3편

헤븐드림 2021. 10. 9. 09:06

 

시편 서론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 테힐림 (찬송들)이다. 시편은 성도들의 찬송과 기도의 책이다. 시편은 하나님의 진리의 보고(寶庫)이다. 이 책 속에는 하나님의 진리의 여러 주제가 풍성히 계시되어 있다. 시편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과 큰 위로가 된다.

시편의 저자는 여럿이다. 표제어에 의하면, 하나는 모세의 것(시 90편), 73개는 다윗의 것(대부분 1권과 3권에), 12개는 아삽의 것(시 50, 73-83편), 10개는 고라의 후손의 것(42, 44-49, 84, 97-88편), 한두 개는 솔로몬의 것(72, 127편), 한 개는 에스라인 헤만의 것(88편), 한 개가 에스라인 에단의 것(89편) 등이다.

시편의 저작 연대에 관해, 시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모세의 것으로 주전 1405년경이며, 다윗의 것들은 주전 1020부터 975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며, 아삽의 시들도 동시대의 것일 것이다. 고라의 후손들의 것과 두 에스라인의 것의 연대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포로 이전의 것 같다. 포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다(126, 137편).

19세기의 비평학자들은 시편의 대부분을 바벨론 포로 후기의 것이며, 많은 것들이 마카비 시대의 작품이라고 주장했고, 또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 등도 명백히 포로 후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악카드와 애굽의 시들이 주전 2천년대에 비슷한 장르를 사용하고 있음이 밝혀졌고 최근에는 히브리어에 아주 가까운 가나안어로 된 우가릿 시가 주전 15세기의 것으로 드러남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을 더욱 지지하게 되었다.1) 마카비 1서 7:17은 시편 79:3을 성경으로 인용하고 있다. 마카비 시대에 이미 히브리 성경에 시편이 있었다.2)

히브리시의 대표적 특징은 평행법이다.3) 예컨대, (1) 동의적 평행법(시 24:1; 19:2), (2) 반의적 평행법(시 1:6), (3) 종합적 평행법(잠 15:17). 또 고대 히브리시에는 운율이 없다. 델리취, “고대 히브리시는 라임(끝 글자를 맞추는 것)과 운율(meter)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후 7세기가 지나기까지 유대의 시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채택하지 않았다.”4)

시편의 표제어는 성경 본문은 아니지만 믿을 만하다고 본다. 그 중에, 시의 유형들을 말하는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미즈모르 --현악 반주로 부르는 시(48, 65-68편 등 57개).

쉬르 --성악을 위한 시(48, 65-68, 75-76, 83편 등 27개)

마스길 --명상시 혹은 교훈시(32, 42, 44, 45편 등 13개)

믹담 --명심할 내용이라는 뜻 같음(16, 56-60편 등 6개).

테필라 --기도의 시(5개).

테힐라 --찬양의 시(5개).

식가욘 --정확한 뜻은 모르나 변칙적인 시라는 뜻 같음(시편 7편만).

음악적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라메낫체아크(‘영장[伶長]으로’)--성전의 찬양대 지휘자를 위해 선정된 시들(4-6, 8-9, 11-14, 18-22, 31, 36, 39-42, 44-47, 49, 51-62, 64-70, 75-77, 80-81, 84-85, 109, 140편 등 55개).

네기놋 --현악기에 맞추어 부른 시(4, 6, 55, 61, 67, 76편).

네킬롯 --관악기에 맞추어 부른 시(5편).

쉐미닛 --여덟 줄의 현악기나 혹은 한 옥타브 낮추는 것을 의미한 듯함(6, 12편).

알라못 --높은 음을 가리키는 것 같음.

마칼랏 --슬프게 부르는 것을 가리키는 듯(53, 88편).

을 나타내는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알 무스 압벤 --‘아들의 죽음이라는 곡으로’라는 뜻(9편)

알 아옐렛 하솨카르 --‘아침의 암사슴이라는 곡으로’라는 뜻(22편)

알 쇼솬님, 슈솬 --‘백합 혹은 백합들에 맞추어’라는 뜻(69편)

알 타쉬케스 --‘파괴하지 말라는 곡으로’라는 뜻(57, 58, 59, 75편)

알 요낫 엘렘 레코킴 --‘침묵의 비둘기라는 곡으로’라는 뜻(56편)

알 학깃티스 --‘깃팃 사람의 악기로’(탈굼), 혹은 ‘깃팃 풍의 곡으로’라는 뜻일 것(8, 81, 84편)

39개 시편들 중 71번 나오는 셀라 라는 말은--(1) ‘쉬라’는 뜻으로 시 낭송자가 이 지점에서 쉬고 악기가 연주되도록 하라는 표시이든지, 아니면 (2) ‘목소리를 높이라’는 뜻인 것 같다.

시편은 5권으로 나뉘어 있다. 제1권(1-41편)은 인간의 행복, 타락, 및 회복에 대한 내용이고, 제2권(42-72편)은 이스라엘의 파멸과 구속에 대한 내용이고, 제3권(73-89편)은 성전 중심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고, 제4권(90-106편)은 광야 생활에 대한 내용이고, 제5권(107- 150편)은 말씀 중심의 생활에 대한 것이라고 대략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제1권은 다윗이나 그의 지도 아래 편집된 것 같고, 제2권과 제3권은 히스기야나 요시야 때에 편집된 것 같고, 제4권과 제5권은 에스라나 느헤미야 때에 편집된 것 같다(아춰, 511-12쪽). 옛부터 성경연구가들은 시편의 5권을 모세의 오경에 각각 맞추어 보려 했다.

시편의 특징적 주제는 찬송과 기도이다. 시편을 내용적으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찬송과 감사와 간증--1, 8, 33, 50, 57, 95, 147-150편 등.

2. 죄의 고백과 용서를 구함--32, 51편 등.

3. 구원을 간구함: (1) 원수의 핍박으로부터--3, 6, 10, 12편 등.

  (2) 질병으로부터--38, 39편 등.

  (3) 국가적 재난으로부터--74, 80편 등.

* 저주시(Imprecatory Psalms)--하나님께서 공의를 세우시기를 간청함.

4. 메시아 예언들: (1) 고난의 메시아--22, 40편.

  (2) 승리의 메시아--2, 47, 67, 96-100, 110, 117편 등.

  (3) 기타--8, 16, 41, 45, 68, 69, 72, 102, 109, 118편 등.

 

제 1 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1편 강해: 복 있는 사람

[1-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로 묘사된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거의 동의어이다. 죄인은 악하고 오만하다. 꾀는 생각을 가리키고, 길은 행위를 가리키고, 자리는 교제를 가리킨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인과 어울리면 악의 영향과 본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잠언 13:20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말했다.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모세오경을 가리키든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모세오경의 율법도, 구약성경 전체도 세 가지를 가르쳐준다. 첫째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며, 둘째는 구주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의롭고 선한 삶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게 된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규칙적이게 읽고 그 뜻을 항상 음미하는 것을 말한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본문은 복된 자, 즉 악인을 멀리하고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나무들 중에 가장 복된 나무이다. 나무에게 필수적인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나무로서 걱정거리가 없다. 이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과 함께 또 그 말씀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감동과 활동을 상징한다고 본다.

이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나무로서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많이 열어야 하고 포도나무는 포도를 많이 맺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우리가 많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요 15장). 열매는 성도의 좋은 인격과 선한 행실을 가리킨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땅에는 때때로 가뭄이 있다. 땅이 가물면 나무 잎사귀가 마르게 되며 심하면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냇가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물 부족이 없고 시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시냇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의 시냇가이며 그것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결코 영적 침체가 없다.

또 이렇게 경건한 사람이 계획하고 행하는 일은 다 형통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교훈된 바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영육으로 복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죄짓는 일을 두려워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범사에 그를 형통케 하셨다(창 39:2-3, 23). 또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의 계명을 지킨 히스기야와 함께하셨고 그를 형통케 하셨다(왕하18:6-7).

[4-5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본문은 악인 즉 불경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가 복된 자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즉 악인은 선한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가뭄을 타고 범사에 형통하지도 못하다는 뜻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본문은 악인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한다. 이 바람은 세상의 풍조나 환난의 바람 등을 가리킬 것이다. 악인은 세상의 풍조를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고 또 환난의 때에 매우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의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풍조와 환난 앞에서 든든히 설 수 있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시편 125: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본문은 또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평안한 때에는 악인과 의인이 별차이가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평시에는 악인도 번창하고 형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악인은 그 앞에 서지 못하고 그 심판을 감당치 못할 것이다. 잠언 24:16의 말씀대로, 의인들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들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진다.

본문은 또 악인 곧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악인은 죽음과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과 영생을 가진 의인들의 회중인 참 교회에 들지 못한다. 악인은 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고 장차 영광의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요 3:5). 의인과 악인은 본질상 차이가 있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신다. ‘인정한다’는 원어(요데아, 현재분사)는 ‘알고 있다’는 뜻이다. 길은 행위와 삶을 가리킨다. 의인의 삶은 불경건과 악을 버리고 그것들을 미워하고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를 멀리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항상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신다. 그는 의인의 행위와 삶을 처음부터 아시고 또 그의 마음도 다 아신다(시 139:1-4; 히 4:12-13). 그는 단지 그것을 지식적으로 아시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인정하시고 의인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영생의 복을 주신다. 다윗은 시편 16:11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악인의 삶은 하나님을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뜻을 거슬러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유행과 여론과 풍습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삶이다.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다. 그 육신은 늙고 병들고 쇠약하여 마침내 죽을 것이다. 그들이 쌓은 부와 재물은 허무하여 독수리처럼 날아가기도 하고(잠 23:5)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남에게로 돌아갈 것이다(눅 12:20).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요 5:29). 그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며 마지막 날 부활하여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인과 악인의 길은 확실히 다르다. 그 둘의 생활방식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목표가 다르고 그 결말이 다르다.

시편 1편은 시편의 서론과 같고 또 결론과도 같다. 그 주제는 복 있는 자이다. 복 있는 자는 악한 자를 멀리하고 성경말씀을 가까이하는 자이다. 우리는 악을 멀리하고 불경건하고 악한 자들과 친근히 하지 말고, 오직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의로운 교훈대로 살기를 힘쓰자.

복 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계절을 따라 좋은 열매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고 그 하는 일들이 다 형통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이 되지 말고 의인이 되고 의인의 길을 걷자. 우리는 모든 죄악된 일을 멀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말씀의 교훈대로 순종하여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자. 그것이 복 있는 자의 삶이다.

 

 

 

 

제 2 편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2편 강해: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편 2편은 메시아 예언시이다. 

 

[1-3절]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분노한다’는 원어(라가쉬)는 ‘소란하다, 격분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은 서로 꾀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속박으로 여기며 그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였다. 악인들은 당을 지어 악을 행하며(롬 2:8)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잘하지만, 그들의 모든 계획은 헛될 것이다.

이 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이루어졌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롯 왕과 로마 총독 빌라도는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행 4:27-28).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고 그의 보내신 메시아를 대항하였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4-6절]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온 땅과 거기 있는 왕들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보고 웃으신다. 주님(아도나이)이신 그는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셔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자이지만, 또한 그를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시는 자이시다. 그는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노하시면 모든 사람은 다 놀라며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놀라게 하시며,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원문에는 ‘내가’라는 말(아니)이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과 하나님을 대조시킨다. 또 ‘나의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혈통에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과 뜻에 따라 세움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왕이시다.

내 거룩한 산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 메시아를 그곳에 세우신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그곳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육체로 그곳에 오셨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하셨고(행 2:36),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전파될 것이며 또 장차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계 22:3).

[7-9절] 내가 영(令)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영’(令, 코크)은 ‘칙령, 작정(decree)’이라는 뜻이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작정을 전한다. 그는 메시아의 예표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본문의 내용은 확실히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그것은 세 가지의 내용이다.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실 것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오늘날’은 언제인가? 하나님께도 우리에게와 같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자가 아니신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오늘날’은 영원한 현재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관계는 영원적이다. 그것은 그의 아들의 신성(神性)에서 증거된다. 시간 세계 속에서의 관계라면 아들은 참된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창세 전에 그가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다(요 17:5). 성경의 풍성한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은 그가 행하신 기적들과 부활로 확증되었다(요 20:30-31; 롬 1:4).

둘째로, 메시아 왕국은 온 세상 땅끝까지 미칠 것이다. 다윗 왕국의 확장은 메시아 왕국을 예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며(마 28:19; 행 1:8)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이 큰 무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계 7:9). 이 예언은 오늘날 거의 이루어졌다.

셋째로, 메시아께서는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실 것이다. ‘저희를 깨뜨린다’는 원어(테로엠)는 고대 번역들(LXX, Syr, Vg)에서 ‘저희를 다스린다’(티르엠)는 말로 읽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니엘 2:34에서 ‘열방을 부서뜨리는 돌’로 예언되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철장으로 다스리는 자’로 묘사되셨다(계 2:27; 12:5; 19:15). 그의 통치권은 그의 구원 사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는 또한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행 17:31; 딤후 4:1).

[10-12절]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패하게 하시고 메시아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과 온 세상 사람들은 지혜와 교훈을 받아야 한다. 본문은 세 가지의 교훈을 말한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 태도이다(잠 1:7).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어야 한다. 그러나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3:28도,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교훈하였다. 경건함과 두려움과 기쁨은 성도의 정상적 신앙생활의 덕이다.

둘째로,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와 중보자이시며 세상의 모든 왕들 중의 왕이시다. 모든 사람은 그를 구주와 주로 고백하고(롬 10:9; 고전 12:3)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들의 삶의 길에 속히 임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셋째로, 하나님만 의지하라. 세상이나 세상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사람이나 그의 지혜도 의지하지 말고 돈이나 재물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참으로 의지할 자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뿐이다.

 

시편 2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소란하고 하나님과 그의 뜻을 거역할지라도, 우리는 창조자와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뜻을 거역하지 말고 그의 왕권을 속박으로 여기지 말고 자원함으로, 자발적으로 그를 경외하고 섬기며 그의 모든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또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 인류의 유일한 구주로 보내신 자이심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이시며 그의 나라인 신약교회가 땅끝까지 확장될 것이며 그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자.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신 창조자와 섭리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고, 이 세상의 헛된 부귀 영화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자.

 

 

제 3 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3편 강해: 곤경 중에 부르짖음

[1-2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이 시의 표제어에 의하면, 다윗은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이 시를 썼다. 그 당시에 다윗을 반역하는 일이 커갔고 반역자 압살롬에게로 오는 백성이 많았다고 성경은 증거한다(삼하 15:12).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며 그를 향해 등을 돌렸다(마 27:22-23). 사도 바울의 전도사역의 말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버리고 그와 입장을 같이하지 않았다. 디모데후서 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디모데후서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다윗의 대적자들은 그에 대해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다윗을 낙심시킬 만했다. 사람들이 그를 대적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지지하시고 도우신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나,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지하지 않으시고 돕지 않으신다면 큰 일이 아닌가? 그러나 다윗은 그런 어려운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이었다.

[3-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다윗의 대적자들의 말은 완전히 잘못된 비난이었다. 다윗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의 비난과 공격을 막아주실 그의 방패이시며, 그에게 왕의 영광을 주셨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주실 그의 영광이시며, 그의 머리를 드시는 자, 즉 그로 낙심하거나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고 그에게 힘과 명예 회복을 주시는 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그의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보통 마음 속으로나 조용한 소리로 기도하지만(느 2:4), 때때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잡념에 떨어질 수 있는 묵상 기도나, 비성경적 신비주의에 떨어질 수 있는 관상 기도보다는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고, 시시때때로 우리는 부르짖는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부르짖음은 기도하는 이의 간절한 심령을 나타낸다.

기도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사람의 기도에 응답할 수 없는 우상이나 그를 도울 수 없는 거짓 신이 아니다. 아합 시대에 참 선지자 엘리야와 대결하였던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었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다(왕상 18:26). 그러나 엘리야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셨다(렘 10:10). 그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나아가 그에게 기도하는 자는 복되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그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이다. 그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불로 응답하셨다(왕상 18:37-39). 본문은 그가 그 성산에서 응답하신다고 말한다. 그 성산은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과, 그가 계신 표를 두신 예루살렘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도의 응답이 있다.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기도가 응답받는다(요 14:13-14). 기도는 아름다운 말이나 경건한 모양에 가치가 있지 않고, 믿음과 진실함에 있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있다.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 중에 있었던 다윗 왕은 많은 대적자들과 그들의 악한 비난 중에 있었지만, 그는 밤에 누워 평안한 잠을 잤다. 그에게 상심함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는 단잠을 잘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했던 그는 편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치 않는 자의 받는 벌들 중의 하나가 경심증(驚心症)이지만(신 28:28),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단잠을 주신다(시 127:2).

다윗이 단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었다. ‘나를 붙드신다’는 원어(이스메케니)(미완료시제)는 ‘나를 계속 붙드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한번만 도우시고 붙드신 것이 아니고 계속 도우시고 붙드셨다. 다윗이 환난 중에서도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다윗은 또 그를 대적하여 둘러선 수만명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다윗에게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담력과 용기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용기와 담력이었다. 사무엘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窘急)하였으나[고통스러웠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구약시대의 선지자 엘리야나 미가야, 초대교회의 아다나시우스나 종교개혁 때의 루터의 용기와 담력도 그러했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7-8절]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는]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꺾으셨음이니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지 말고 일어나 행동하시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부터, 그 대적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그를 건져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는 큰 곤란 중에 낙심하거나 당황한 채로 있지 않았고 또 단지 인간적 대책을 궁리하거나 의논하지 않았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도우심과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것은 성도의 놀라운 특권이다. 우리에게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

원문의 7절 중간에 있는 ‘이는[왜냐하면]’이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을 요청하는 근거를 보인다. 그의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의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셨다는 사실이었다. ‘뺨’이라는 원어(레키 는 ‘턱, 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그의 과거의 경험은 고난 중에 그의 현재의 기도의 근거가 된다.

8절 상반절도 그의 기도의 근거를 계속 말한다. 그의 기도의 근거는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다윗의 지식과 확신이었고 성경에 확실히 증거된 하나님의 진리이다(시 37:39; 62:6; 렘 3:23; 욘 2:9; 계 7:10; 19:1).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도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었다(삼상 17:47). 구원은 사람들에게나 군대의 힘에나 그 어떤 인간적 수단과 방법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끝으로 “주의 복이 주의 백성에게 있게 하소서[혹은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구할 내용이며 그들이 이 땅 위에서 또 영원토록 받아 누릴 내용이다.

 

시편 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자.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믿는 자마다 환난의 날은 기도할 기회이다. 우리는 기도하되 때때로 소리내어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하자.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잡념들에 떨어지기 쉬운 묵상 기도나 명상보다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좋고 때때로 소리내어 기도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해치려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방패로 삼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신다(3절). 다윗은 시편 18:1-2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시시때때로 그 구원을 체험하자. 구원은 단순히 인간적인, 세상적인 방법들에 있지 않고, 오직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적자들을 능히 물리치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그는 언제나 우리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방패로 삼자.

 

말씀 묵상

 

시편 묵상을 시작하며 감회가 새롭다. 귀절 귀절마다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나타나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시는 주의 말씀이 너무도 감사하다.

말씀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말씀을 깨닫고 2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이 땅으로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어찌 말씀을 소중히 묵상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간절함, 그 아들의 십자가의 고통과 승리를 다윗왕 시대에 이미 아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살자. 이제 다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철장 권세를 가지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고통을 겪는 3편은 참 나를 슬프게 한다. 권력이 무엇이길래 친아버지를 해치려 하는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어리석은 일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말씀이다.

특별히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래 말씀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말씀이라 생각한다.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토해내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토록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될까? 꼭 자신의 삶 속에 현재적으로 실존하는 하나님을 뵈온듯 그는 믿음과 용기와 확신이 넘치는 선포를 하고 있다. 다윗의 시편 3편을 묵상하며 나도 좀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뵈옵는 것처럼 기도 드려야 하겠다고 마음을 굳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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