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장: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심
[1-4절]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세상에는 선과 악, 의와 불의가 섞여 있다. 어리석은 자는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말하고(잠 12:18), 또 아무 말이나 다 믿지만(잠 14:15), 지혜로운 자는 선과 악, 의와 불의를 분별하여 듣고 말한다.
[5-9절]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거짓말쟁이]가 되었고[내가 나의 의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랴?](KJV, NASB)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조롱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욥은 전에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욥 27:2)이라는 표현을 했고, 또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거짓]을 발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욥 27:4). 아무리 고난 중에라도 욥이 만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조롱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여러 가지 점에서 유익이 많다. 고난은 우리에게 교정의 유익뿐 아니라, 예방의 유익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아무 소용도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10-12절]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행치 않으시고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 또 그는 각 사람을 그 행위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고 보응하신다. 이것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전 12:14; 롬 2:6). 엘리후의 말은 욥도 하나님의 엄격한 잣대로 보면 흠과 점이 없지 않으므로 그가 당한 고난이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13-15절]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그가 만일 자기의 결심대로’(NASB) 혹은 ‘자기의 의도하신 대로’(NIV)] 그 신[영]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흙]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가진 자이시다. 그가 자기의 뜻대로 그들의 영과 호흡을 거두신다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과 모든 사람은 다 죽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권한을 사용치 않으시고 우리에게 많은 은혜와 선을 베푸셨고, 우리는 그의 선하신 섭리 속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16-17절]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의롭고 전능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그의 섭리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겸손히 또 잠잠히 받아들여야 한다.
[18-20절] 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치 않으신다. 사람의 외적 영광과 아름다움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가치 있지 않다. 사람은 실상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밤중에 순식간에 죽어가며 심지어 권세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기도 한다.
[21-22절]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죽인 가인의 악행을 보셨고(창 4:9-10), 동생을 팔아넘긴 요셉의 형들의 악행을 보셨다(창 45:4-8). 시편 139:7-8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지옥](KJV)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말하였다.
[23-25절]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세상의 재판은 확실한 증거들을 수집하고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은 무엇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완전한 지혜와 지식으로 즉시 바른 판단을 하신다. 또 그는 그 바른 판단에 의거하여 그의 능력으로 악한 권력자를 꺾으시고 그를 폐하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기도 하신다.
[26-28절]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無關)히 여김이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케[이르게] 하며 환난 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악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은 그를 경외치 않고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과 그가 명하신 모든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그 결과,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과 해를 당하고 호소할 곳이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된다.
[29-30절]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 이는 사특한 자(카네프)[불경건한 자] (BDB, NASB)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陷害)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평안을 주실 때 아무도 그것을 정죄하지 못한다. 또 그가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시면 그의 은혜와 도우심을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일반이다. 또 그는 공의로우셔서 악한 자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도 하시며 자기 백성들로 그의 압제의 올무에 걸리지 않게도 하신다.
[31-32절]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패역하게 행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사람은 자신의 패역함을 깨닫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혹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그에게 아뢰어야 마땅하지만, 악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33절]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
33절은 번역하기 어려워 보이고 영어번역들도 다양하다. ‘싫어하다’는 원어(마아스)는 ‘거절하다, 멸시하다’는 뜻이다. 본절 전반부는 아마, “네가 멸시하였기 때문에, 그가 네 생각대로 보응하시겠느냐?”일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대로 보응하지 않으심을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의 생각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완벽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34-37절] 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엘리후는 욥이 지혜와 지식이 없이 자신의 죄 위에 하나님께 패역한 말을 더한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고난 중에서라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욥의 부족이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욥기 3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조롱하거나 비방하지 말자. 욥은 자신이 의롭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제하셨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비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과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 그의 지식은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그의 공의의 판단도 완전하다. 엄격한 잣대로 보면, 욥도 흠과 점이 없지 않으며 그의 당한 고난도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의로우심을 의심치 말고 그의 섭리를 조롱하거나 비방치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처럼 살지 말고 바르고 선하게만 살자.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며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법을 힘써 지키며 그의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특히 고난 중에 겸손히 자신을 살피며 혹시 우리 속에 악한 것이 없는지 반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며, 모든 일을 섭리자 하나님께 맡기며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고 또 패역한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악한 자들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오직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자.
35장: 사람의 의는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지 못함
[1-5절]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네가 이것을 합리[합당]하게 여기느냐?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여 이르기를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하는구나[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느냐? 이는 네가 이르기를, 주께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함이니라]. 내가 너와 및 너와 함께 있는 네 동무들에게 대답하리라. 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솨카크)[구름](BDB, KJV, NASB)을 바라보라.
사람은 하나님보다 의롭지 않다. 또 자기가 의로워도 주께 유익이 없고 자신에게도 이익이 없다는 말도 잘못이다.
[6-8절]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하나님의 섭리는 지극히 공의로우시다. 또 우리가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그 의로운 행위가 하나님께 아무 유익을 드리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거나 가기 자신에게 유익할 뿐이다. 사람의 죄도 하나님께 해를 끼치지 못하고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죄를 징벌하실 것이다.
[9-11절]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사람들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참으로 찾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9장에 보면, 사도 요한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환상을 보았다. 그것은 큰 강 유브라데 주위에서의 세계적 전쟁에 관한 것이다. 그 전쟁에 동원될 군인들은 ‘이만만’ 명 즉 약 2억명이다. 그러나 이 재앙에서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않았다(계 9:13-21). 그것이 심히 죄악된 인생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 때 그의 고난이 그에게 구원과 성화가 되는 것이다. 시편 119:67, 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2-13절] 그들이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믿음 없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받지 못하는 헛된 부르짖음일 뿐이다. 잠언 1:24-33,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14절]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하는 너랴.
본절은 아마, “참으로 네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보지 못한다고 하나, 판단이 그 앞에 있으니 너는 그를 간절히 기다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BDB). 성도는 고난 가운데 비록 하나님을 뵈올 수 없으나 그가 모든 일을 공의롭게 판단하실 것을 믿고 오직 그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다.
[15-16절]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횡포(파쉬)[어리석음](BDB)를 심히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하나님께서 욥에게 진노하여 보응하신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의 심판 앞에 설 의인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 헛된 말, 지식 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욥기 3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자신의 의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를 내세우지 말고 또 그의 섭리를 어리석게 비난하지 말자.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 앞에 설 수 있는 의인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의는 누더기 옷과 같다.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또 우리의 좁은 생각은 하나님의 높고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오직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참으로 하나님을 찾자. 우리는 환난 중에라도 모든 일을 판단하실 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만 간절히 기다리자. “판단이 그 앞에 있으니 너는 그를 간절히 기다리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섭리하신다. 고린도전서 4:5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교훈했다.
36장: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선하심, 엄위하심
[1-7절]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내가 먼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시나(카비르)[능력이 많으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코아크 레브)[마음(지혜)의 힘]이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시며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位)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4절에 ‘지식이 구비한 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께 지식을 얻어 하나님의 정당하심을 말하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창 18:14) 아무도 멸시치 않으신다. 그는 사람과 대화하시고 언약을 맺으신다. 심지어 그는 아브라함과 변론하셨고 모세와도 변론하셨다(창 18:22-33; 출 32:30-34). 그는 고아를 돌아보시며 도우시는 자이시다. 그는 지혜가 많으시다. 그러나 그는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고 죽이시며 고난받는 자들의 억울함을 갚아주시는 공의의 심판자이시다. 또 그는 의인에게서 눈을 돌이키지 않으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시고 존귀케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긍휼의 통치자이시다.
[8-10절] 혹시 그들이 누설(縷絏)(직킴)[차꼬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사람들이 죄수들이나 포로들처럼 포승줄이나 차꼬들에 묶이거나 환난의 줄에 매였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셔서 그들의 교만한 행위, 즉 그들이 교만하고 높은 마음으로 처신한 것을 알게 하신다. 사람들의 교만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악을 행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의 귀를 여셔서 교훈을 듣게 하시고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켜 돌아오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시 119:67).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시며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신다(히 12:10).
[11-12절]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훈계를 듣고 그를 순종하고 섬기는 자들은 고난에서 건짐을 받고 형통한 날과 즐거운 해를 보낼 것이지만,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결국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다.
[13-14절] 마음이 사곡한(카네프)[불경건한](BDB, NASB)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男娼)(케데쉼)[몸을 파는 남자들]과 함께 망하려니와.
불경건한 자는 온갖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징벌로 어떤 환난의 속박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 회개하며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는다. 그런 자는 젊어서 죽을 것이며 음란한 자들과 함께 망할 것이다. 불경건은 모든 죄와 멸망의 근본이다.
[15-16절]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곤고할 때 부르짖는 자들을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신다. 시편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학대당할 즈음에 그들의 귀를 여신다. 시편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욥을 포함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을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셔서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다. 또 욥의 밥상에 차린 모든 것은 살진 것이 되었을 것이다.
[17-18절]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代贖)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지니라.
18절은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아마, “분노가 너를 조소하는 데로 이끌지 않도록 주의하라. 또 대속물의 큼이 너로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라”(NASB)는 뜻 같다. 엘리후는 욥이 악인의 벌 같은 고난을 받는 중에 분노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분노를 조심해야 한다. 시편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에베소서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야고보서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19절] 너의 부르짖음(슈아)[‘부르짖음’ 혹은 ‘부요’]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
KJV, “그가 네 부요를 귀중히 여기겠는가? 아니라. 금도 모든 힘의 세력도 아니라.” NASB, “네 부요와 네 힘의 모든 세력이 너를 곤경으로부터 지키겠는가?”
[20-21절]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 것이니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는 ‘죽는 때’를 가리킨다. 그는 욥에게 비록 고난 중에서라도 죽음을 사모하지 말라고 말한다. 또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악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음이니라”는 구절에 ‘이것’은 앞에서 말한 ‘악’을 가리킨다.
[22-23절]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높임을 받으신다] (NASB, NIV)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위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교훈을 베푸시고 행할 바를 다 작정하시고 항상 의롭게 행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를 향해 두려움을 가져야 하고 함부로 대항하는 말이나 조롱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24-26절]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일들을 알고 그를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고 먼 곳에서도 본다. 특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속사역은 오늘날에 온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찬송한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은 지극히 크시다. 그의 연령은 계산할 수 없다. 그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27-33절]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구름의 폐임(펼쳐짐)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豊備)히 주시느니라.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와 호수 등에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셔서 안개와 구름을 만드시고 또 때를 따라 공중에서 풍성한 비를 땅 위에 내리신다. 또 천둥과 번개도 그가 내리시는 것들이다. 그는 그것으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시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패하게도 하셨다. 사무엘상 2:10에 보면, 한나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라고 기도했다. 사무엘상 7:10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으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므로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했다.
욥기 3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신다. 그는 지혜가 많으시며 악인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고난받는 자들의 억울함을 갚아주신다. 그는 또 크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 그는 환난을 통하여 인간의 교만과 악을 깨우치시고 교훈하신다. 만일 그들이 그의 교훈을 청종하면 그들이 형통할 것이나, 만일 그들이 그의 교훈을 청종치 않으면 그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날에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겸손히 그에게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분노함으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엘리후는 욥이 고난 중에 분노함으로 권능과 위엄의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그에게 함부로 대항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함부로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말이나 특히 분노하며 대항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묵상
욥의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혹독한 연단의 과정에서 욥의 의로움을 보시고 계시다.
비록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는 일을 허락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욥의 믿음을 아신다.
친구 엘리후도 역시 하나님을 무척 경외하는 자이고 본받을 점이 많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고통이 심하다하여 자신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생은 죽음 넘어 또 다른 생이 있지 않은가? 혹시 하나님께서 욥을 하늘로 데려 가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땅은 어차피 고난과 슬픔의 여로이기 때문에.. 하지만 마귀에게 그의 생명을 지키라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의 삶의 시간을 나는 과연 어떻게 보내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한 믿음을 행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그러러면 늘 성령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욥과 같은 의로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경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욥기 40장-42장 (0) | 2021.10.02 |
---|---|
욥기 37장-39장 (0) | 2021.09.26 |
욥기 31장-33장 (0) | 2021.09.15 |
욥기 28장-30장 (0) | 2021.09.12 |
욥기 25장-27장 (0) | 202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