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의일상

2018년 신춘문예 시들을 읽으며..

헤븐드림 2018. 2. 27. 03:50




[詩 당선작] 조선일보 신춘문예 작품


돌의 문서 - 이린아



잠자는 돌은 언제 증언대에 설까?

돌은 가장 오래된 증인이자 확고한 증언대야. 돌에는 무수한 진술이 기록되어 있어. 하물며 짐승의 발자국부터 풀꽃의 여름부터 순간의 빗방울까지 보관되어 있어.

돌은 한때 단죄의 기준이었어.
비난하는 청중이었고 항거하는 행동이었어.

돌은 그래.
인간이 아직 맡지 못하는 숨이 있다면 그건 돌의 숨이야. 오래된 공중을 비상하는 기억이 있는 돌은 날아오르려 점화를 꿈꾼다는 것을 알고 있어.

돌은 바람을 몸에 새기고 물의 흐름도 몸에 새기고 움푹한 곳을 만들어 구름의 척후가 되기도 해. 덜어내는 일을 일러 부스러기라고 해. 하찮고 심심한 것들에게 세상 전부의 색을 섞어 딱딱하게 말려 놓았어.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쌓은 저 딱딱한 돌의 축대들 때문일 거야.

잠자던 돌이 결심을 하면 뾰족했던 돌은 뭉툭한 증언을 쏟아낼 것이고 둥그런 돌은 굴러가는 증언을 할 거야.

단단하고 매끈한 곁을 내주고 스스로 배회하는 돌들의 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굴러다닌 거야.
아무런 체중도 나가지 않을 때까지.




나의 생각

어제 오늘 신춘 문예가 궁금해 찾아 보았는데 돌에 대해 세심히 생각한 작가를 만났다

현대시는 산문적이며 사색적이다

때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꿈과 한을 섞어서 그림을 그려 놓은 것처럼 어렵고 풀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이다

그러나 비교적 이런 시들이 나에게 도전을 주는 것은 현세대의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의 자리에 서있는지를 알게 하는 까닭이다

시대적으로 겪는 환경이 다르니까 당연히 그들의 문학적 시각은 첨단에 있을 것이다

그 의식 속에서 문화의 유산을 남기는 문학인들이 고뇌하며 창작의 세계에서 살아갈 때 독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작품을 읽으며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복도 - 변선우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낼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심사평

우선 응모한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신뢰감을 주었다. ‘복도’는 소재를 다층적 은유에 의해 능란하게 확장함으로써 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를 보여줬다. 시가 감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과장으로 치닫거나 지적 퍼즐로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현상이 빈번하게 목도되는 이즈음에 소재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힘과 다층적 사유를 전개하는 역량을 지닌 신인에게 출발의 즐거움과 불쾌하지 않은 부담감을 함께 안겨주는 것이 제법 그럴듯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변선우 씨에게 축하의 악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의 생각

소리를 지를 수 있을 것 같아서 복도는고래가 된다 채식을 하는 고래가 과수원을 간다 다른 골목, 길과 길의 연결고리가 복도라면 거기에는 우글거리는 생각과 먹잇감들이 있고 미래의 문들이 열리고 시인은 일기를 쓴다 고래등에서 길을 걷는다 생각과 현실과 함께..


           예술가들은 꿈을 먹고 산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의 내면을 잘 살펴보면
           다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것 같지만 진실은 언제나 평범한 것이라서 시의 세계로
           가면 연민과 정, 정의와 투쟁 선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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