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책읽기

리라가 읽은 인상적인 독후감 주홍글씨/나다니엘 호돈

헤븐드림 2010. 2. 2. 00:38

 

 

 
 리라가 읽은 인상적인 독후감 주홍글씨/나다니엘 호돈
 
이 소설은 간통의 죄악이나 윤리적 타당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의식이 죄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과 죄와 승화된 사랑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은 동시대 작가 멜빌의 절망적인 분위기의 소설들에 비하여 다분히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작가의 긍정적 기조가 옅보인다. 헤스터와 딤즈데일 간의 사랑의 믿음이 그러하고, 냉혈한 칠링워스가 임종하면서 자신의 유산을 펄에게 남겨놓는 실낱같은 점에서도 그런 면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홍글씨』에서는 세가지 형태의 죄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드러난 죄, 숨겨진 죄, 그리고 용서 못할 오만의 죄이다. 헤스터는 현세에서 그 죄의 대가를 치루었다. 즉 치욕스러운 A자를 몸에 단채 갖은 수모와 고통을 치루면서도 이웃에 봉사하는 헌신적 삶을 살며 대가를 치루게 된다. 그녀는 속죄를 하면서도 자신과 목사와의 사랑은 신성한 것이었다는 신념을 믿으며 하느님의 구원을 열망하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반면 자신의 죄를 숨겨야만 했던 목사는 자기의 죄를 고백할 용기도 없으며 자신의 신분이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는 헤스터가 자신의 몸에 지닌 A자와 같은 수치의 상징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자책과 번민은 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 그는 헤스터와 숲속에서 은밀히 만나 자신의 심정을 밝히지만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도저히 감내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헤스터는 오히려 그에게 담대해 질 것을 요구한다. 독자는 과연 그의 믿음이 올바른 것인지, 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독자는 그러한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칠링워스는 어떠한가? 이 의사는 복수의 일념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계획하에 목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면서 인간정신의 성역을 서서히 파멸시키는 것을 유일한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가 저지르는 죄는 오만의 죄이다. 그는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김으로써 스스로를 인류로부터 고립시킨다.
하느님이 내릴 심판을 이렇게 자기가 맡고 나서는 것은 주제넘은 오만이다. 오만은 인간의 죄 가운데 최악의 죄, 즉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단테는『신곡』에서 밝히고 있다. 오만은 왜 용서 받지 못할 죄인가? 그 이유는 오만한 마음이 인간을 하느님과 동포들에게서 고립시켜 놓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모든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생각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마태 22:37-39)는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오만은 이런 사랑을 모두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만하면 동포를 무시하게 된다. 칠링워스는 복수하려고 일부러 자기 신분을 감춤으로써 스스로 인류로부터 소외된다. 인간관계의 부재,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부재, 즉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결여는 가장 큰 인류의 죄인 것이다.
헤스터 역시 소외와 고립의 고통을 겪지만 그녀의 고통은 강요된 사회의 제재일 뿐이다.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목사 역시 고독하면서도 황폐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딤즈데일은 목사라는 만인이 존경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번뇌를 토로할 사람이 없는 처절한 소외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소외의 원인은 청교도적 계율이 강요하는 죄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율이나 종교 자체라기보다는 부족한 인간을 부둥켜안을 수 있는 진솔한 사랑이라는 점이다. 호돈이 이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의도는 인간사이의 사랑이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우선 한다는 사실이다. 헤스터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인이다. 그녀의 사랑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하고 존엄하다. 반면 칠링워스가 자신의 높은 학식과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타인을 파멸로 이끌려고 했던 근본적 이유는 그에겐 애시당초 인간 본연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침침하고 육중한 감옥 문 한 옆에 핀 빨간 장미꽃이 제1장에서 언급되는데 이 꽃으로 상징되는 사랑의 힘으로 인간생활의 비극성을 덜어보자고 작가는 염원하고 있다. 사랑보다 율법이 강조되어 종교가 경화되고, 인권보다 조직이 우선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굳어버리는 풍조가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한 이 소설은 영원히 기억되어져야 할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