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의 인물

셀롯 시몬

헤븐드림 2017. 4. 11. 04:29



    열심당원 :시몬

    (누가 6:12-19)

    1. 이름

    열 두 사도 가운데는 잘 알려진 시몬 베드로와 잘 알려지지 않은 셀롯 시몬 두 사람의 시몬이 있었다. 열광자의 이름은 사도들의 네 가지 명단 가운데 언급되어 있다.(마 10:4/막 3:18/눅6:15/행1:15). 어느 전설은 그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예수를 좇으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전한다. 신약성경에는 셀롯 시몬의 개인적인 역사가 없을 뿐 아니라 열 두 사도의 거의 끝머리에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재능 있든 없든 그의 이름은 그가 열광적이며 성급하고 열렬하고 감동적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2. 시몬은 열광자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마지막으로 강력한 지파로 등장한 셀롯(열심당) 등 예수 시대에는 여러 파가 있었다. 시몬은 "열광적"을 의미하는 카나나이오스(Kananaios)라고 한다. 사실상 카나나이오스는 열심당에 대한 아람어인데 이는 누가가 고쳐서 "시몬"이라고 부른 단언이다(눅 6:15). 가나안인이라고 잘못 쓰여진 단어는 지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옳게 쓰여진 카나나이스라는 단어는 "정치적인 명칭"이다. 시몬은 유대의 극단주의자이다.

    1)셀롯(열심당)의 기원
    주전 167년예루살렘 근처서 살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늙은 제사장 맛다디아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유대의 종교적, 정치적인 독립을 쟁취하려는 사움에서 그의 아버지를 도왔다. 그후 "대장장이"로 알려진 장남인 유다 막카베오가 지도자로 계승되었으나 로마군의 정복으로 막카베 시대는 막을 내렸다.

    2)로마제국시대(해롯 왕)
    외교적인 방법으로 준평화 상태를 유지했으나 그러나 헤롯이 죽자 팔레스타인은 중에 갈릴리 태생 유다가 궁궐을 습격하고 병기고를 부수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무장시켜 유혈폭동을 일으켰다. 얼마 안되어 유대 총독으로 새로 임명된 퀴리노는 인구조사를 하겠다고 하자 이를 계기로 다시 유다에 의해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났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혈참극 속에서 유다는 살해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셀롯이라고 알려진 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3)바라바
    외국의 세력에는 단호하게 대항하는 혁명주의자의 이름을 가진 셀롯은 자기들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투쟁할 때 무모하고도 냉혹하게 모든 이익을 포기해 버렸다. 이들은 살인과 폭동죄로 복역하다가 예수님 대신으로 석방된 셀롯 사람 바라바의 착상이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때 셀롯인들은 유화정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은 모두 살해하면서 실질적인 내란을 일으켰다. 셀롯인들은 포위, 공격하는 로마군에게 장기간 대적하여 그들의 분노를 격화시켰다.

    4)사해의 서쪽 해변에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
    마사다에는 천여 명의 셀롯인들이 최후까지 로마군에 항재하다가 지도자의 불을 뿜는 열변에 호응하여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도 끊었다. 그들은 광적인 애국자이며 자유투사였고 로마제국의 점령에 항거하는 과격파였다. 셀롯 시몬의 종족들은 외국의 세금부과에 반대하여 투쟁했으며 자신들의 의견을 고무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음모를 꾸미고 종교적인 열성이란 이름을 빌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난폭한 테러를 자행하였다. 시몬은 그와 똑같은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정치적인 모험은 가금 더 큰 위험을 가져오기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