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제 1 장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여호와의 말씀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죄로 가득 찬 성읍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받으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서론
본서의 저자는 선지자 이사야이다. 옛 전통에 의하면, 그는 유다 왕 므낫세 통치 기간 중 톱으로 켜져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성경비평학자들은 이사야 40장 이하를 ‘제2 이사야서’라고 부르며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무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성경의 진실성(시 19:7-8)과 신적 권위(요 10:35; 딤후 3:16)와 단어 영감(마 5:18; 갈 3:16)을 부정하는 이단 사상일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도 위배된다.
1. 이사야 40장 이하의 부분에 나타난 지리적 배경, 동식물에 관한 언급, 또 기후 조건 등은 저자가 바벨론보다 팔레스틴에 살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백향목, 디르사 나무, 상수리나무 등은 팔레스틴의 고유의 나무들이다.
2. 우상숭배에 대한 책망(44:12-17; 57:3-10; 65:2-4)은 왕국 말기의 상황에 맞고 포로 시대나 그 후에 맞지 않는다. 에스라, 느헤미야나 말라기 등을 보면, 포로 시대나 그 후에는 우상숭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3. 이사야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용어나 문체의 차이점은 그것들이 다루는 주제에 관계되며, 두 부분의 공통점 혹은 유사점도 분명히 많다. 예를 들어, 구약의 다른 곳에서 오직 5회만 나오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이사야 전반부에서 21회, 후반부에서 14회 나온다. 보수적 학자들은 두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구절들이 적어도 40-50구절이 된다고 말한다.1)
4. 이사야 후반부도 주전 7, 8세기의 선지자들, 특히 미가의 글들과 문학적 유사성이 많다. 이사야의 후반부는 언어적으로 바벨론 포로 시대의 특성인 아람어나 바벨론어의 영향이 전혀 없다. 그것은 전반부와 같이 순수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5. 특히 신약성경은 이사야서 전체를 한 사람 이사야에게 돌린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2:38, 40에서 사도 요한은 이사야 53:1과 6:10을 인용하면서 이사야의 글이라고 증거한다.
이사야서의 주요 내용은 심판과 구원이다. 이사야서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61번, ‘영광’이 38번,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거룩한 자’라는 말이 약 30번,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라는 말이 14번 사용되었다.
1장 강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부패상
1-9절,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
[1절]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異像)이라.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80년 사이에 남쪽 유다 나라에서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인데, 다른 선지자들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인용되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였다. 그들이 전한 내용은 모세의 율법과 일치하며 그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한 내용의 요지는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그리고 회복의 예언들이며 그 회복의 예언들 중에는 메시아 예언도 포함되었다.
[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배반]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됨을 지적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셨고 양육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효막심한 자식같이, 배은망덕한 사람같이 하나님을 거역했고 배반하였다. ‘거역하다’는 원어(파솨)는 ‘배반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수없이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하나님께 순종했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었다. 소와 나귀도 그 정도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들은 그 주인을 알아보고 순종하였을 것이다. 죄인들이 다 그러하다.
[4-5절] 슬프다, 범죄한[죄악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악을 행하는 자들]의 종자[씨, 자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경멸하며]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거역]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된 나라이며 허물진 백성이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씨[자손]이었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경멸하며 멀리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자이시며 가장 사모하며 귀히 여겨야 할 보배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알지 못하고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거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는 ‘거역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배교하며 변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패역하였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 속에 있는 치료 불가능한 죄성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고칠 수 없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하였다. ‘심히 부패한’이라는 원어(아누쉬)는 ‘절망적이게 악한’(KJV), ‘치료 불가능한’(NIV)이라는 뜻이다.
[5-9절] . .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오이밭의 원두막](KJV, NASB)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징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을 빼앗으셨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 나라의 높은 지도자들로부터 천한 백성들까지 미쳤고, 그것이 육신적 질병과 정신적 피곤과 연약을 포함하였음을 보인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중한 병에 걸렸으나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하고 좋은 약의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와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받지 못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또 이스라엘 땅은 황폐했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하나님의 징벌은 사회적, 경제적 재앙으로 임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징벌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도 있었다. 이사야는 딸 시온이 포도원의 망대와 같이, 오이밭의 원두막과 같이, 에워싸인 성읍과 같이 겨우 남았다고 표현하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그들이 소돔 성과 같고 고모라 성과 같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금 남겨 두셨다. 이사야서에는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 등의 말이 14번 나온다. 이것은 죄로 멸망케 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암시하며 그 멸망케 된 인류 중 일부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의 선택을 암시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효막심하고 배은망덕한 자식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짐승들보다 못한 자들이 되었다. 이성 없는 짐승들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주인을 거역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주인의 말을 듣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이신 하나님을 버렸고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거역하며 변절하였다. 그것은 인간 본성 속에 있는 치료 불가능한 죄성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치 말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전염병으로 치셔서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빼앗으셨고 또 그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는 또 그들에게서 사회적 평안과 경제적 안정도 빼앗으셨다. 그들에게는 전쟁과 혼란이 있었고 기근과 궁핍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악에 대해 내리시는 엄하신 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징벌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조금 남겨두셨다. 남은 그들은 포도원의 망대 같고 오이밭의 원두막 같았다.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더라면 그들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 중 얼마를 남겨두셨다. 구원의 본질은 의(義)의 회복이다. 우리에게 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했다(롬 3:21-24).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그 의(義)만 믿고 의지해야 하며, 이제는 죄와 결별한 삶을 살아야 한다.
10-20절, 헛된 종교의식
[10절]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옛날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들과 백성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성들이었지만, 심히 죄악되었고 불경건하고 음란했고 이웃을 사랑함이 없었다(창 13:13; 18:20; 19:1-13; 겔 16:49-50).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회를 세우는 일에 무관심했고 해이하고 안이했고 부도덕했던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렸고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드렸다.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들을 드렸고 헌금들을 바쳤다. 그러나 그런 예배들과 그런 헌금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짓밟을] 뿐이니라.
‘밟는다’는 원어(라마스)는 ‘짓밟는다’는 뜻이다(BDB, NASB).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은 형식적으로 성전을 드나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멸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셨다.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월삭들]과 안식일[안식일들]과 대회[대회들]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많은 제물들을 ‘헛된 제물’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형식적인 것들, 즉 그들의 마음에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물들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향과 월삭들과 안식일들과 정한 절기들의 모임들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는 그것들을 미워하셨다. 왜 그러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종교의식이 아니었고 그들이 악을 떠나는 것이었다. 악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형식적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일이며 가증한 일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악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하고, 그렇지 않은 형식적 예배나 기도나 헌금, 형식적 예배회들과 기도회들과 집회들은 헛된 일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그들의 정기 집회들은 헛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이었으며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이었고 그가 지시기에 곤비한 일이었다. 그런 형식적 종교 의식들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런 예배, 그런 헌금, 그런 기도, 그런 찬양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는 참된 경건과 순종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15절]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기도는 왜 응답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손에 가득한 피는 살인의 피이며 미움의 피이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3:15). 그들에게 미움과 살인이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16-17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伸寃)하며[원통함을 풀어주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책은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모든 악을 버리고 선과 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18-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많은 죄를 씻는 길은 한마디로 회개하는 것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밖에 없다. 그것은 ‘마음의 순종’ 즉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였지만, 이제는 그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하였다(행 2:3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 형식적인 교회생활이란 하나님을 믿는 모양만 있고 악을 버리지 않고 선을 행치 않는 교회생활이다. 그것은 실상 교회를 짓밟는 일이다. 이사야 1:12-14,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형식적인 교인에게는 진실하고 진지한 마음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배와 기도, 그러한 헌금과 그러한 집회들을 헛되고 가증하며 짐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진지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지적하신 바들을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바른 교회생활은 악을 버리고 계명을 순종하면서 하는 것이다. 이사야 1:15-17,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는 계명에 어긋나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악을 버려야 하고 부모를 공경치 않는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음란을 버려야 하고 도적질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고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계명의 내용은 의와 선이며 사랑이다. 우리는 범사에 올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해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또 힘있는 대로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1-31절, 예루살렘의 타락과 회복
[21-23절]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의]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원통함을 풀어주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의 타락한 현실을 지적한다. 예루살렘 성은 본래 ‘신실하던 성읍’이었으나, 지금은 육신적 음행과 영적 음행 즉 우상숭배가 가득한 성이 되었다. 공평과 의가 충만했던 그 성은 지금 살인자들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죄에 대한 이성과 양심의 정죄가 없었다. 경건의 변질은 도덕적 부패를 가져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잠 16:6). 선지자는 또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라고 말한다. 찌끼가 섞인 은은 가치가 떨어지며 물이 섞인 포도주는 맛이 떨어진다. 이와 같이, 그 성은 무가치해졌고 그들은 더 이상 삶의 참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였다.
또 유다의 지도자들은 패역했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르)는 ‘완고하다, 반항적이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그들은 도둑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도둑들과 단짝이 되었다. 그들은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좋아했다. 그들은 고아나 과부 같은 자들의 억울한 송사를 정당하고 의롭게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 구약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2천년 신약교회의 역사도 종종 비슷하였다.
[24-27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아비르) [권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의 사사[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救贖)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선지자는 자기의 말과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구별한다. 물론 그는 성령의 특별한 감동 속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도 있다. 선지자는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선포하는 자이다. 이사야는 이제 타락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전한다. 그것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마음을 함께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 성을 징벌하시고 깨끗케 하시고 이전과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24, 25, 26절에서 ‘내가,’ ‘내가,’ ‘내가’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행하실 것을 보인다.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며 또한 구원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인가? 그는 악인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과 원수는 바벨론 사람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 악인들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로로 삼은 바벨론 나라를 징벌하실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지만, 그는 또한 이스라엘 나라 안의 모든 악인들도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 안의 찌끼와 혼잡물을 온전히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한 사회가 바르게 되려면 그 사회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없을 것이다. 참된 교회 안에도 드러나게 죄를 짓는 악인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예루살렘은 다시 경건하고 의로운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 교회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은 의(義)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의인 되게 하시며(롬 1:17; 3:21-26) 실제로 의와 거룩을 행케 하실 것이다. 구원받고 회복된 새 세계는 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참된 교회와 천국에서 그것을 볼 것이다.
[28-31절]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테레빈 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tinder)[부싯깃](부싯돌 위에 두고 부시로 쳐서 불붙이는 물건)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이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그 곳들에서 행했던 우상숭배로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선지자 호세아도 말하기를,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라고 하였고(호 4:13), 후에, 선지자 예레미야도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하였다(렘 2:20).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며 물 없는 동산 같을 것이다. 강한 자는 삼오라기[부싯깃]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물 없는 동산에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완전히 불타서 멸망할 것이다. 패역한 자들과 죄인들은 함께 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행한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예루살렘 성은 신실하고 공평이 충만하며 의가 있는 성이었고 은과 같이 가치가 있고 포도주같이 맛이 있고 즐거움을 주는 도시이었으나, 지금은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찌끼가 섞인 은 같고, 물이 섞여 맛이 없는 포도주같이 되었다. 물론 우리가 과거의 잘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가 어떠한지에 대해 물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잘한 점들을 자랑하지 말고 현재 우리의 영적 상태, 신앙적 상태가 어떠한지 또 우리의 현재의 도덕적, 인격적 부족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찌끼를 청결케 하고 그들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실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 얻은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깨닫고, 사람이나 사람 속에 있는 선한 무엇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찬송하며 예수 그리스도만 항상 의지해야 하고 또 우리의 성화(聖化)[거룩하여짐]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만 의지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와 방향은 의와 거룩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를 이루셨다(롬 10:4).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행 10:43; 롬 3:28). 이것은 법적인 의이며 법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적으로도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불결한 자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