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9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8장 강해: 사랑은 죽음같이 강함
1-7절, 사랑은 죽음같이 강함
[1절]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라는 표현은 어릴 때부터 한 가정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형제 관계를 말한다. 그런 관계의 형제는 가족의 정이 깊고 두터울 것이다.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과 그런 관계였다면, 그가 밖에서 그를 만나 입을 맞추어도 그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다. 신부가 신랑에 대해 그렇게 표현한 것은 신랑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사모하는 그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는 시골 처녀였고, 솔로몬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 술람미 여자가 감히 왕인 솔로몬에게 접근하여 입을 맞추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를 자기 처지와 분수를 모르는 자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며,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자유로이 접근하고 교제할 수 있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우리의 처지도 비슷하다. 주 예수께서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며, 우리는 비천한 인생이요 죄인이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주님과 교제하며 주의 사랑을 입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께서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며 우리와 친근히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요 20:17; 롬 8:29; 히 2:11).
[2절]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본절 전반부는 영어성경들처럼 “내가 너를 이끌어 나를 교훈한 내 어미 집에 들였으리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KJV, NASB, NIV). ‘나를 교훈한 내 어미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갈라디아서 4:26, “위에 있는 예루살렘[신약교회]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출산하며 교훈하며 양육한다. 신부는 신랑을 이끌어 그를 교훈한 어머니의 집과 같은 교회 안으로 가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교회에 있다. 세상에 복잡한 많은 일들이 있어도, 주님의 마음과 눈길은 그 무엇보다 교회의 일들에 있다. 그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신부는 그의 어미의 집에서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로 신랑에게 마시울 것이라고 말한다.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은 그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음료수를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신랑을 위한 신부의 최선의 봉사와 섬김을 가리킬 것이다.
신명기 6:5는 우리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으로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가 어떤 분이시며 그가 죄인인 우리에게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깨닫는 자마다 그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려 할 것이다.
주님의 귀하신 인격과 사랑을 깨달은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그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다(요 12:3). 그가 부은 향유는 가격이 300데나리온 즉 오늘날 우리 돈으로 약 3천만원의 가치이었다.
[3-4절]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아가 2:6-7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손’은 주의 사랑과 배려와 보호를 가리킬 것이다. 보통 ‘왼손’은 약한 손, ‘오른손’은 힘있는 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은밀하게 섭리하기도 하시고 드러나게 섭리하기도 하신다. 성도들은 주의 사랑과 섭리의 손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보호함을 받는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라고 증거했고(신 33:27),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23:4).
주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요 10:28),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말하였고(롬 8:35), 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지어다”라고 말하였다(살후 3:16).
4절은, 본서의 앞부분의 구절들에서와 같이(2:7; 3:5), 신랑의 말이라고 보인다(NASB). 신랑은 친구들에게 잠든 신부를 흔들거나 깨우지 말라고 말한다. 신랑은 신부의 사랑스러운 잠든 모습이 유지되도록, 신부가 혹시 잠에서 깨면 싫증이나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5절]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辛苦)한[해산의 고통을 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신부는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로 묘사된다. 거친 들은 나무 그늘이나 샘이 없고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가 있고 사나운 짐승들이 있는 곳이다. 그것은 고난의 세상을 상징한 듯하다. 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많고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세상에서 ‘그 사랑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구원을 얻었고 지금도 그를 의지하며 산다.
본절 후반부는 신랑의 말(NASB, Poole)이라기보다 신부의 말(NIV, JFB)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네 어미,’ ‘너를 낳은,’ ‘너를 깨웠노라’는 말들의 ‘네’ 혹은 ‘너’라는 말이 원문에서 남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부가 신랑에 대해 하는 말이라고 본다.
본문은 사과나무 아래서 그의 어미가 그를 낳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하였다고 묘사한다. 여기의 ‘그의 어미’는 구약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사과나무는 아가 2:3에서 신랑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구약교회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약속된(창 3:15) 메시아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사모하여왔고 마침내 때가 되어 그가 오셨다(요 1:14). 구약교회는 큰 고통 중에 약속된 메시야를 낳은 것과 같았다.
신부는 그 사과나무 아래에서 신랑을 깨웠다고 말한다. 그는 신랑과의 교제를 사과나무 열매를 먹는 것으로 비유하였었다(2:3). 그가 신랑을 깨웠다는 말은 기도로 그의 위로와 도움을 구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주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큰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처럼(막 4:38), 성도는 주께 기도하며 그의 도움과 위로를 구한다.
[6-7절] 너는 나를 인(印)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圖章)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무덤]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家産)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것은 신부의 소원과 고백이다. 도장은 사람에게 귀중한 것이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을 도장같이 마음에 혹은 팔 혹은 손가락에 가장 귀중하게 간직하라고 말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이 부자도 권세자도 지혜자도 다 이기듯이, 사랑은 그렇게 강하다. ‘투기’는 뜨거운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은 성격상 소유욕을 가지며 질투는 그것의 한 단면이다. 뜨거운 사랑은 무덤같이 모든 것을 삼키며 불같이 모든 것을 태우며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전 13:7).
신부는 사랑의 강인함과 가치에 대해 계속 말한다.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고 홍수라도 엄몰치 못한다고 말한다. 많은 물과 홍수는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들을 가리킬 것이다. 또 그 사랑은 온 가산(家産)을 주고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랑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또 그 사랑을 깨닫고 응답하는 성도들의 사랑이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죽음까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고(고후 5:15),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빌 3: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주께서 우리를 형제같이 여기심을 감사하며 우리는 담대히 그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히 4:16).
둘째로, 우리는 주께서 능력과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품으시며 때마다 일마다 평안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거친 들 같은 이 세상에서 구주 예수님만 의지하고, 또 많은 고난 중에서도 구주 예수님의 도움과 위로를 구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특히 주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우리를 인같이 마음에 품으셨고 도장같이 팔에 두셨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의 사랑을 본받아 그를 사랑하며 그를 따라가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일에 힘써야 한다.
8-14절, 포도원 같은 교회
[8절]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본절은 친구들의 말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오래된 신자들이 볼 때 초신자이거나, 유대인들의 교회에서 볼 때 장차 교회에 편입될 이방인들의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그는 어리며 결혼할 만큼 성숙되지 못하다. 그는 자녀를 출산하거나 양육할 만하지 못하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초청받을 때 오래된 신자들 혹은 유대인들의 교회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로 나오는 것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눅 15:1-2). 유대인들의 교회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원망하고 불평할 것인가? 오래된 신자들은 불신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올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그들은 그에 대해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도리어 그를 기뻐하고 사랑하고 영접하고 그를 위로 격려하며 그의 약한 믿음을 북돋우어 주어야 할 것이다.
[9절]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 망대(티라)[흉벽=톱니자국 난간)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초신자가 굳게 믿었다 할지라도 마귀의 시험과 공격이 예상되므로 성벽에 은 망대를 세우듯이 그를 영적으로 더욱 견고케 해야 할 것이며 마귀와 악한 자들이 그의 마음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의 마음 문을 백향목 판자로 튼튼하고 견고하게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먼저 믿은 자들, 오래된 신자들이 힘써야 할 의무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히 3:13)고 말하고, 또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교훈하였다(살전 5:14).
[10절]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솰롬)[평안]을 얻은 자 같구나.
본절은 신부의 말이라고 본다. 신부는 교회를 상징할 것이다. 신부는 자신을 성벽이라고 표현한다. 성벽은 도시를 원수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는 벽이다. 옛날의 도시들 중에는 성벽 있는 도시도 있고 성벽 없는 도시도 있었다. 성벽으로 묘사된 교회는 견고한 교회이다. 그것은 확실한 지식과 굳센 믿음과 견고한 소망을 가진 교회이다.
신부는 또 그의 유방이 망대 같다고 표현한다. 신부의 유방은 교회의 말씀의 봉사자들, 즉 어린 신자들을 교훈하고 양육하는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의 우뚝솟은 유방은 망대에 비유되었다. 망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분별하여 대처하는 용도로 쓰이는 곳이다. 이와 같이, 교회의 목사들은 굳건한 믿음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양들을 교훈하며 지키며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신부는 이제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평안을 얻은 자와 같구나”라고 고백한다. 주께서는 그를 진실히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평안을 풍성히 주신다. 이사야 26:1-3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신실함]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요 14:27).
[11절]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1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신부는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큰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기고 그들로 그 실과를 인해 은 1천을 바치게 한다고 말한다. 이사야 7:23은 포도나무 1주에 은 1개씩의 가치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그의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1천 주나 되는 포도원일 것이다. 그의 포도원은 크고 거기서 일하는 농부들도 많았을 것이다. 솔로몬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본다. 교회는 큰 포도원과 같고 우리는 주인 되신 하나님께 풍성한 실과를 바쳐야 한다.
[12절] 솔로몬 너는 1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2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신부는 솔로몬이 1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들이 2백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과 지키는 자들 혹은 포도원 농부들은 교회의 목사들과 전도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풍성한 선한 열매들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은 1천 개로 표현된다. 그러나 포도원의 농부들에게도 은 2백이 돌아간다고 표현된다. 그것은 교회의 일꾼된 주의 종들에게 주어질 상을 가리킨 것 같다. 사도 바울은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말했다(고전 3:8).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라는 말은 신랑의 말일 것이다(매튜 풀, 매튜 헨리, 박윤선). 교회는 주 예수께서 친히 피흘려 사신 그의 특별한 소유이며 영원토록 그러하고(행 20:28; 요 10:28) 밤낮 또 세상 끝날까지 그의 보호와 돌보심을 얻을 것이다(사 27:3; 마 28:20). 주 예수께서는 오른손으로 일곱 별[교회의 목사들]을 붙잡으시고 일곱 금 촛대[교회들] 사이로 다니신다(계 2:1).
[13절] 너 동산(간님)[동산들]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본문은 신랑의 말이다. 신랑은 신부를 ‘동산들에 거한 자’라고 표현한다. 신부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킨다. 성도는 세상의 황량한 들판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구원함을 얻은 자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19).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곳,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돌보시는 곳, 즉 하나님의 동산과 같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포도원 동산들과 같다. ‘동산들’이라는 복수명사는 많은 개체 교회들, 즉 각 지역의 회중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는 하나님의 동산들이 많이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
신랑은 친구들이 신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말하고(시 34:7) 또 모든 천사들은 봉사하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말한다(히 1:14). 그들은 성도들이 주께 올리는 찬송과 기도의 소리들을 듣고 기뻐한다.
이제 신랑은 신부의 목소리를 듣기 원한다고 말한다. 주님은 우리의 진심의 예배를 원하신다(요 4:23). 그는 우리의 찬송을 원하신다(히 13:15). 그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기도의 목소리, 복음 전파의 목소리를 기뻐하신다. 그는 우리의 회개의 기도를 원하신다(시 51:17).
[14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본문은 신부의 말이다. 신랑은 신부의 ‘사랑하는 자’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주 예수께서는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세 번이나 그 질문을 반복하셨고, 베드로는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요 21:15-17).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이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 어린 사슴같이 빨리 달려오기를 원한다. 아가 2:17에서 신부는 베데르 산을 말했었는데, 그것은 고난의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아가 4:6에서 신랑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본문에서 말한 향기로운 산들과 같이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께 올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기도와 선한 행실들의 향기로운 제물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신약교회를 상징한다고 본다.
신부는 사랑스런 신랑을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한다. 아가 2:9, 17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그 짐승들의 예민하고 민첩함과 순진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신랑은 온순한 인격자이시며 민첩하게 오실 수 있는 자로 묘사된다.
신부는 신랑이 빨리 달려오기를 원한다. 신랑은 지금 신부를 떠나 있으며 신부는 그를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교회를 떠나 계시며 교회가 그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며 갈망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이다(딤후 4:8).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고(계 22:7, 12, 20) 우리는 그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소망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먼저 믿은 자들은 처음 믿는 자들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벽같이 믿음과 소망을 굳게 갖고 원수 마귀의 궤계와 악한 일들을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한다.
셋째로, 교회는 주 예수께서 친히 소유하시고 보호하시고 관리하시는 포도원과 같고, 우리는 그와 그의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음성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회개와 신앙고백, 찬송과 기도, 전도의 목소리를 올려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고전 15:22; 롬 14:7-8) 또 그의 재림을 사모해야 한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그는 진실로 다시 오실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