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삽의 시〕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79편 강해 : 황폐한 성을 구원하소서
[1-4절]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아삽의 시. 시편 저자는 예루살렘의 황폐한 정황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기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낼 지도자로 삼고자 하실 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憂苦)를 알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출 3:7, 10).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으로 ‘내 백성’(암미)이라고 거듭 부르셨다.
그런데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께서 소유자이신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그것을 파괴하였고,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표이었던 성전을 더럽혔던 것이다. 도적이 집에 침입했듯이, 이방인들이 그 땅에 침공해 땅을 더럽혔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의 귀한 생명을 단지 미움과 이욕 때문에 많이 죽였고 많은 피를 흘렸다. 그 시체들은 공중의 새들에게와 땅의 짐승들에게 밥이 되었다. 사람들의 피가 물같이 흘렀으며 그들을 매장(埋葬)하는 자가 없었다. 모욕과 조롱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유다 백성들은 이방인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였다. 이 모든 일이 그들의 죄 때문에 왔다.
[5-8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 저희가 야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함이니이다.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는 크고 두려우며 또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리이까?”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로부터 구원 얻을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구원은, 그들을 삼키고 황폐케 했던 이방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심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가 그렇게 간구한 까닭은 불경건한 그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삼키고 그 거처를 황폐케 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그들의 많은 죄를 용서하심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우리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여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우리 열조의 죄악’이라는 원어(아오놋 리쇼님)는 ‘이전의 죄악들’(BDB, KJV)이라는 뜻 같다. 물론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선조들의 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들의 이전의 죄악들을 기억하며 고백한 것이라고 본다. 또 그는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주의 긍휼하심으로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만나소서]”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과거에 지은 죄의 징벌을 면하고 심히 천해진 상태에서 구원 얻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다. 멸망의 문 앞에 있는 죄인들은 살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9-13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흘림 당한 보수(報讎)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7배나 갚으소서.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테힐라)[찬송]를 대대로 전하리이다.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고 포로로 잡혀가 감금되어 탄식하고 있고 사형이 작정된 자들같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 시편 저자는 ‘구원의 하나님’(9절)께 간구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도우시고 건져주시기를 구한다. 선민 이스라엘의 실패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었다. 또 그는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도한다. 죄사함은 모든 불행의 원인적 치료이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일곱 배나 갚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보존하시기를 구한다. 또 그는 그러면 주의 백성된 그들이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시편 79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교훈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죄에 대해 진노하신다. 그의 백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섭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했을 때 많은 사람이 피흘려 죽임을 당하였고 이방인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심히 천해졌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참으로 무섭고 혹독했다.
셋째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을 얻었고 사망과 사탄 권세로부터도 구원을 얻었고 또 성화를 이루고 있다.
묵상
때로 세상의 모습이 공평하지 못하고 내 환경과 닥치는 역경이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다.
다만 깊은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나의 죄를 다 아는 듯해도 어쩌면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불행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비단 나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가 나의 삶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것이다.
모진 환난을 통해 좀더 성숙한 믿음의 분량을 얻을 수 있으니까.. 사단의 계략을 감지하며 영적으로 무장하여 대적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특별한 권세를 주셨는가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