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독칼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독교백주년기념교회 이재철목사)

헤븐드림 2021. 8. 29. 00:14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은 성도들이 믿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이 그들의 바라는 바를 끊임없이 간구기도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그것만이 믿음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에 대한 앎으로 끝나면 믿음이 아닌 관념으로 끝나게 되는데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구체성을 결여할 수가 없다.
삶의 토대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의미로 구체적인 단어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리 열심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추상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체성을 벗어난 믿음은 현실도피책, 공허한 이론에 지나지않게 된다.

믿음은 무엇인가?
1. 믿음은 순종이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인데 그 말이 이성적이지 않더라도 말을 믿는다면 완전히 그를 신뢰한다고 볼 수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순종이 되어야 한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게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려는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말하는 것이다.
2. 믿음은 용기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순종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3. 믿음은 시선이다.
믿음의 중심이 나이면 만용이고 만용은 나를 주저앉히므로 믿음있는 자들의 시선은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동안만 그리스도인이라고 C.S. Louis는 말하였다.
목사도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아 불륜, 돈에 이끌리는 삶을 살기도 한다.
주님께 시선이 고정될 때만 이 세상에서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며 살아갈 수 있다.
 4. 믿음은 다루어 짐이다.
내가 하나님께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다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다루는 비법을 배우려하고 일부는 그런 비법을 책으로도 써 내는데 모두 거짓선지자들이다.
5. 믿음은 신실이다.
헬라어로 믿음이란 단어 '피스티스'는 믿음과 신실이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면 그 사람은 신실해 질수 밖에 없다.
믿음과 신실은 구분되지 않는데 믿는다면서 거짓된 삶을 살면 아직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 속의 믿음 단어는 신실과 대체하면 되는데 '믿는대로 구하면 주실 것이다'는 '신실하게 구하면 주실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신실한 사람은 욕망의 것을 구하지 않고 자기 것을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 것을 구한다.
6.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이나 바울은 믿음있는 자를 보고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일으켜주셨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도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믿음의 크기를 알게 된다.
7. 믿음은 자기발견이다.
믿음은 보이기에 자기믿음도 보이고 믿음으로 변화되는 자기도 보인다.
8.믿음은 자기 가꿈이다.
자기믿음을 보게되면 자기를 자각해 성화의 삶을 살게된다.
9.믿음은 자유이다.
진리로 자기를 가꾸어가면서부터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또 다른 관점에서 믿음은
1. 구도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도를 가지고 이 세상오셨고 우리는 그 도를 따르므로 도인이 되어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구도생활을 하지않고 전도는 할수없다.
지금 세상의 도를 찾는것이 아니라 2천년전 하나님의 도를 찾아 따르는 것이다.
2.믿음은 신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처음 하신 말씀은 신발을 벗으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걸치는 것중 벗으면 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은 신발 뿐으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본 모양을 유지한다.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나의 모든 존재를 벗고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내려놓은 후
하나님이 채워주시려는 것이다.
3. 믿음은 여백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
4. 믿음은 구멍을 메우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나의 구멍을 메워야하며 그건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생명의 일이다.
5. 믿음은 해석이다.
라헬이 아들을 낳다 죽었는데 죽기 전 엄마없이 크니 슬픔의 아들이란 뜻으로 베논이라 이름을 지어주라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남편 요셉은 어머니는 없지만 하나님이 키워 주실테니 오른손의 아들이란 의미의 베냐민으로 지을거라고 하였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게 믿음에 달렸다.
6. 믿음은 안경을 잘 쓰는 것이다
세상을 믿음의 안경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7. 믿음은 위치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있냐고 제일 먼저 물으셨다.
하나님 밑에 사람, 사람 밑에 물질인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한 것이다.
사도행전을 쓴 사람들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행동한 사람들이다.
8. 믿음은 복귀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족들이 도망나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모세는 순종하였다.
사도 바울 이후 최고 기독교 변증가라고 일컬어지는 C.S. Louis는 책에서 '내가 회심 후에도 회심 전의 일을 할줄은 몰랐다'고 쓰고 있다.
교회는 주차장이 아니라 주유소인데 영적인 에너지를 채운 후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한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동료, 지인들에게 불편이나 부담을 준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이다
세상으로 돌아가 화목하여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
9. 믿음은 공간이다.
복음의 빛은 어디에 있던 빛나서 가려지지 않는다.
믿음있는 사람이 있으면 공간이 변한다.
믿음으로 나는 변화했는데 내가 있는 가정, 직장 등의 공간이 변하지 않았다면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10. 믿음은 감화이다.
믿음으로 공간이 바뀌면 그 공간이 감화가 된다.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신앙행사에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헌금을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두 되는 것으로 알게 되나 그게 생활에서 실천이 되지않으면 그 모든 것들이 헛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이재철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