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슬퍼함
1-6절, 슬프다, 이 성이여
[1절]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어찌하여 백성이 가득하던 성이]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종]가 되었도다.
바벨론 군대의 침입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어떤 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쳤으며 또 많은 이들은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이제 예루살렘 성은 거민 수가 매우 줄어 적막한 곳이 되었다. 그 성은 이제 남편과 사별한 과부같이 쓸쓸하며 낙이 없게 되었다. 이전에는 열국들 중에 크고 지방들 중에 공주같이 존귀하던 성, 경건한 성도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거워했던 그 성이 이제는 종처럼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그 거민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
[2절] 밤새도록(발라옐라)[밤에](KJV, NASB, NIV)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선지자 자신을 포함하여 그 성의 남은 거민들은 밤에 애곡하였다. 그들이 밤에 애곡한 것은 낮에는 노역으로 수고로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좀 쉬고 웃고 해야 할 밤에 쉬지 못하고 웃지 못하고 애곡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던 모든 자들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모든 친구도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 전에 이스라엘과 유다가 강한 때에는 조공을 바치고 친근히 하고 동맹관계를 맺었던 이웃 나라들이 많았으나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에는 그들이 다 등을 돌렸다. 이웃 나라들과의 동맹관계은 허무하였다.
[3절]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유다 백성들은 환난과 많은 수고를 당하는 중에(NASB)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갔다. 포로로 간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 거하여 충분한 잠과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많은 압박을 받았다.
[4절]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아벨롯)[애곡함](BDB, KJV, NASB, NIV)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예루살렘의 도로들은 기쁜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애곡하는 것 같았다. 모든 성문들은 황폐하고 적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고 그 성 자체가 곤고한 상태에 있었다.
[5-6절]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유다 백성의 대적들은 그들의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은 형통했다. 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성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죄가 많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곤고케 하셨기 때문이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면 열국 가운데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13절),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들이 머리가 되고 그들은 꼬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43-44절). 예루살렘 성의 멸망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된 것이다.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죄가 작을 경우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섭게 징계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으나, 사람이 계속하여 많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섭게 징벌하신다. 그들은 곤고함을 당하였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사로잡혔고 시온의 모든 영광은 떠나갔다. 그들의 방백들은 꼴을 찾지 못해 힘없이 달리는 사슴과 같았다. 노아의 시대에도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패괴하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온 땅과 거기 거하는 생물들을 멸하셨었다(창 6:5, 11, 13).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많다고 깨달을 때뿐 아니라, 조금 있을 때부터 회개해야 한다. 죄가 계속 누적되면, 또 그 죄를 회개치 않고 끝까지 고집하면,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께 큰 벌을 받고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과 권세를 크게 여기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예루살렘 성은 크고 공주같이 존귀하던 성이었고 경건한 성도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거워했던 성이었지만, 그 거민들이 범죄할 때 그 성은 그 영광을 상실하고 멸망하고 황폐케 되었다.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다 그렇다. 그것은 일시적이며 사람들이 계속 악을 짓고 고집하면 어느 날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전도서의 교훈대로, 땅의 모든 것은 참으로 헛되다. 또 이사야의 말씀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사 40:6).
둘째로, 우리는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유다의 이웃들과 동맹국들은 그들을 위하지 않았다. 친구는 언제나 배신하고 떠나갈 수 있고 동맹국도 언제나 배신할 수 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참된 위로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고 선을 베풀어야 하지만,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고 그의 명령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본분이며 평안의 길이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7-11절, 그 결말을 생각지 않음
[7절]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窘迫)(메루드)[정처 없음]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荒寂)함(미슈밧)[멸망](BDB)을 비웃도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환난을 당하고 정처 없이 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한다. 옛날에는 성안에 평안과 즐거움이 있었다. 또 먹을것도 넉넉하였고 가족과 이웃 간의 사랑의 교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에게 환난과 정처 없음뿐이다.
또 백성은 대적의 손에 빠졌다. 본서에는 ‘대적’(차르, 9번)이나 ‘원수’(오옙, 15번)라는 말이 24번이나 나온다.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진다는 말은 대적이 지배하고 학대한다는 말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도, 예루살렘을 돕는 자가 없었다. 예루살렘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고 그가 믿었던 애굽의 도움도 얻지 못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도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었다. 대적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비웃었다. 예루살렘은 참으로 불쌍한 처지가 되었다.
[8절]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赤身)[벌거벗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예루살렘의 문제는 그 거민들이 크게 범죄한 데 있었다. 작은 죄는 하나님께 쉽게 용서받기도 할 것이지만, 사람이 큰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큰 죄를 짓고도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를 반드시 벌하신다.
예루살렘의 죄는 또한 ‘불결함’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거민들이 우상을 섬기고 부도덕하게 행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기에 좋지 못하고 더럽고 추한 모습이다. 이런 불결함 때문에 그들은 멸망을 당한 것이고 육신적으로도 낮아지고 상하고 찢기고 더러워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은 다 부서져 공개되었고 왕후와 공주들과 궁녀들은 짓밟힘을 당했다. 이전에 예루살렘을 높이며 그에게 조공도 바치러 왔던 이웃 나라들이 이제는 예루살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업신여긴다. 예루살렘 거민들 자신도 탄식하며 물러갔다.
[9절]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원수가 거대해졌사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다’는 말은 영적 음란의 죄를 묘사한 것 같다. 예루살렘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으나 그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성은 놀랍게 낮아졌다. 그 부요하고 영화롭고 평화로웠던 성은 이런 수치와 궁핍을 당하고 있어도 그를 위로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원수들은 거대한 세력이 되었고 예루살렘은 미약해졌다. 이런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호소한다. 죄로 인하여 징벌을 받는 성도에게도 한가닥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면 그는 어떤 곤란 중에서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10절]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성전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귀한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성소로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별하셨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소를 짓밟고 그곳에 들어갔고 성도들은 이제 그것을 보고 탄식한다.
[11절]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졸렐라)[무가치하오니](BDB)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에게는 먹을것이 심각하게 부족하였다. 그들은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어 먹었고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고 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대신해 “나는 무가치하오니”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께 호소한다.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의 남은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돌아보심뿐이다. 하나님의 긍휼 외에 다른 소망은 없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존귀하던 예루살렘 성은 멸망하여 황폐케 되고 비천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거민은 옛날의 즐거움을 기억할 뿐 지금은 고통과 슬픔뿐이다. 그들은 자유가 없고 돕는 자도 없고 원수의 비웃음을 받으며 벌거벗겨지고 탄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낮아졌고 위로하는 자도 없었다. 원수는 커졌고 성전은 짓밟혔으며 그들은 먹을것이 심각히 부족하였고 심히 비천하고 무가치한 자가 되었다.
둘째로,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의 큰 죄와 불결 때문이었다(8-9절).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와 부도덕이었고, 그것은 자신들을 더럽게 하였다. 그들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삶으로써 미래를 대비했어야 했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셋째로,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며 모든 죄를 버리고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다. 11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죄인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있다. 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마다 이제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평안을 누릴 것이다. 이사야 48:18,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체험할 것이다. 이사야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 . .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또 의식주의 공급함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2-17절, 주께서 징벌하심
[12절]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유다 땅을 지나는 자들은 유다 백성의 근심과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유다 백성의 고통을 동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평안할 때 환난 당하는 가난한 이웃에게 무관심한 것도 잘못이다(겔 16:49). 환난 받는 이웃을 동정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진노하시는 날이 있다. 그는 진노하신 날에 유다 백성을 괴롭게 하셨다. 역사상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종종 있었고 마지막으로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다(롬 2:5). 하나님께서는 평안도 주시지만 환난도 주신다(사 45:7).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악인에 대한 징벌을 믿는다.
[13절] [그가]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그가]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그가 나를] 종일토록 고적(孤寂)하여 곤비케 하셨도다.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의 뼈들에 불같은 고통을 보내셔서 견딜 수 없게 하셨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 앞에 그물을 베푸셔서 그로 물러가게 하셨고 종일토록 쓸쓸하여 곤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행하신다. 사람의 누리는 복도, 당하는 화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불같은 화를 내리셨다.
[14절]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들과 그 결과를 손으로 묶고 얽어 그의 목에 올리셨고 그의 힘을 피곤케 하셨다. 또 주께서는 그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그를 붙이셨다. ‘주께서’라는 원어(아도나이)는 ‘주권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15절에도 두 번 더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일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면 그들 다섯 명이 원수 백 명을 쫓고 그들 백 명이 원수 만 명을 쫓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나, 반면에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치 않으면 원수에게 지고 세계 만국으로 흩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레 26:7-8, 17). 유다의 패배는 이 율법의 경고대로 된 것이다.
[15절]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주께서]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
‘없는 것같이 여기셨다’는 원어(실라)는 ‘경멸하셨다’(BDB), ‘거절하셨다’(KB, NASB, NIV)는 뜻이다. 주께서는 유다 지경 안의 모든 군사들을 경멸하시며 거절하셨고 대회를 열어 그 청년들을 죽게 하셨다. 그는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아 굴욕과 멸망을 당하게 하셨다.
[16절]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이는 내 영혼을 소생시킬 위로자가 나를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징벌과 예루살렘의 참혹한 멸망의 현실 앞에서 울었다. 원문에는 ‘내 눈에’라는 말(에니 에니)이 두 번 나온다(KJV). 선지자의 눈에서는 비오듯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위로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멀리 떠나셨고 돕지 않으셨다. 원수들은 유다 백성을 이겼고 유다 자손들은 쓸쓸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멀리 떠나신 것은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 에스겔 8:6,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17절]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
두 손을 펴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온을 위로할 자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위로하지 않으시고 사람들 중에도 위로자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사면에 있는 자들을 그들의 대적이 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예루살렘 성은 그들 가운데 불결한 자같이 되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 좋고 나쁜 모든 일을 다 섭리하신다. 사무엘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우리는 범사에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를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자. 예루살렘의 멸망의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죄의 결과는 큰 불행과 고통이었다. 예루살렘 성은 근심과 고통 가운데 떨어졌고 황폐하고 쓸쓸하며 곤비해졌다. 그들의 군대는 경멸과 죽임을 당했고 유다 백성은 짓밟혔다. 죄는 모든 좋은 것들을 빼앗고 가로막고 모든 재앙을 가져온다. 죄는 불행과 사망의 원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조심해야 할 일은 오직 죄 짓지 않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일한 위로자이시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때에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다. 그들은 이웃의 동맹국들에게서도 위로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실상 그들이 참된 위로자이신 하나님과 대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위로자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가장 큰 복이며 큰 위로와 힘이며 승리의 길이다.
18-22절, 나의 거역과 패역 때문에
[18절] 여호와는[여호와 그는] 의로우시도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거역하였음이로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다. 의롭다는 말은 ‘기준에 맞다’는 뜻이다. 그 기준은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속성, 그의 뜻, 그의 계명과 율법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의롭다고 말하는 까닭은 유다의 멸망이 그의 공의로운 처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 그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니다. 비록 그 자신도 부족한 자이지만, 그는 지금 유다 민족을 대표해 유다의 죄악됨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다. 유다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까닭에 왔다.
예레미야는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한다.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지금이라도 이 재앙이 하나님의 공의의 처분이요 우리의 죄 때문에 온 것을 알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그는 그들이 그의 근심을 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예루살렘의 소년 소녀들을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사로잡혀갔다고 말한다. 그들은 2세들이요 다음 시대를 책임질 자들이며 미래의 소망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로잡혀갔고 노예가 되었고 사람의 기본적 권리를 다 빼앗긴 자가 되었다. 이제 유다 나라의 소망은 없어졌고 미래는 사라졌다.
[19절]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내 사랑하는 자들’은 유다의 이웃 나라들, 어려울 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동맹국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인데, 그들은 전에는 유다와 친근한 교류가 있었지만, 유다가 어려울 때 관심과 동정을 가지지 않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유다를 속였고 동맹으로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또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음식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고 죽어 갔다. 기본적인 것들, 즉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할 음식들이 없었다.
[20절]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이는]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번뇌함이니이다.] [이는]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예레미야의 마음은 괴롭고 번뇌하였다. 평안이 없었다. 행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며 하나님을 믿는 자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는 자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또 예레미야는 유다의 번뇌와 고통, 즉 그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한다. 그것은 그의 패역이 심히 컸기 때문이었다. 유다 백성은 죄 때문에, 큰 죄 때문에 심한 고통과 불행 가운데 떨어졌다. 길거리에는 칼의 살육이 있었고 집 안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과 부상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다.
[21절]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유다의 모든 원수들은 유다 백성의 탄식을 들었지만 유다를 위로하지 않았다. 고난 당하는 자에게 위로의 말이 큰 힘이 되지만, 유다 백성은 그런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원수들은 유다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그렇게 행하심을 기뻐했다. 그들은 무정한 자들이었고 자기 자신의 부족과 악함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었다.
유다의 멸망은 주님 곧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이미 12절, 17절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그 사면에 있는 자들을 대적이 되게 하셨음을 말했고, 14절, 15절은 주(아도나이, 3번)께서 유다를 원수의 손에 붙이셨고 그 용사들을 죽게 하셨다고 말하였다.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바대로 된 일이었다. 그는 그가 선언하신 그 날을 오게 하셨다. 심판과 멸망의 그 날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유다의 원수들도 멸망할 것이다.
[22절]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이는]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곤비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이 그들의 모든 죄악 때문임을 다시 고백한다. 유다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18절), 그들의 패역이 심히 컸기 때문에(20절), 또 그들의 모든 죄악 때문에(22절) 온 것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원수 나라들도 유다처럼 그들의 죄 때문에 멸망을 당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들의 죄란 우상숭배, 부도덕함, 포학함, 무정함 등이다. 특히 이방인들이 유다 백성에게 행한 강포와 악행, 유다 백성이 그들에게 당한 억울한 학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는 고통과 근심, 번뇌와 곤비함, 굶주림과 포로로 잡혀감, 살육과 사망의 원인, 즉 멸망의 원인이다. 반면에, 의는 생명과 평안과 기쁨의 원인이다(사 48:18).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말자. 유다는 동맹국들이 있었으나 전쟁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속임을 당했다. 자녀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음식은 고갈되었다. 사람을 의지하는 자는 절망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징벌 중에서라도 회개해야 한다. 유다 백성은 재앙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선지자만 그들을 대표해 회개의 기도를 올렸을 뿐이다. 우리는 징벌 중에서라도 회개해야 산다.
2장: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
1-10절,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1절]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티프에렛)[아름다움, 영광]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유다의 멸망은 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복도 주시지만 재앙도 내리신다. 재앙은 사람의 죄에 대한 그의 징벌이다.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불같이 진노하심으로 왔다. 1절, “진노하사 . . . 진노하신 날에.” 2절, “노하사.” 3절, “맹렬한 진노로.” 4절, “노를 불처럼.” 예레미야 애가서 전체에 ‘진노’라는 말이 열 네 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 불같이 진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구름으로 예루살렘을 덮으셨다. 마치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 검은 구름이 하늘을 캄캄하게 만들며 두려움을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구름으로 예루살렘을 덮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섬기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동안에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넘쳤고 질서가 있었고 물질적 유여함이 있었고 또 군사적으로도 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하신 날에 그의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다. 그의 발등상은 그의 임재(臨在)가 있는 성전을 가리킨 것 같다. 시편 132:7은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고 말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2-3절]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집을 부수시고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다. 그는 유다의 견고한 성들을 허시고 땅에 엎으셨고 나라와 방백들을 욕되게 하셨다. 그는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다. 뿔은 힘과 영광을 상징한다. 그는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 곧 힘있는 손을 거두셨다. 그는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셨다. 그는 맹렬한 불이 사방을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다. 그는 유다의 모든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들을 천하고 무가치하게 만드셨다.
[4절]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륙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원수같이 행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었고(사 4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겠다”라고 말씀하셨었다(사 49:25).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자손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수같이 행하시는 것이다. 그는 원수같이 활을 당기시고 오른손을 들고 서셔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들을 살육하셨다. 본문은 바벨론 군대의 살육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행해진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온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의와 선을 행하는 데 있다.
[5-6절]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주께서는 원수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셨다. 그는 모든 궁과 견고한 성들을 파괴하셨고 유다 백성에게 슬픔과 애통을 더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버리시며 유다 백성이 시간을 정하여 모이는 집회 장소를 다 부수셨다.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은 잊혀졌고 왕과 제사장들은 멸시를 당하였다.
[7-8절]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宮墻)[궁궐벽]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날과 같이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주께서는 자기의 소유인 성전의 제단과 성소를 미워하셨고 궁궐벽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다. 원수들은 절기같이 하나님의 전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주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손을 펴서 그 성을 부수셨다. 성벽은 다 허물어졌고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통곡하며 다 쇠약해졌다. 열왕기하 25:8-10,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5월 10일에](렘 52:12)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9-10절]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열방 가운데 있으며 법이 없으며](KJV, NASB, NIV)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성문이 땅에 묻히고 문빗장이 꺾여 파괴되고 왕과 방백은 이방인들 가운데 포로로 끌려가고 법이 없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예레미야 52: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선지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하였다. 장로들은 할 말을 잃고 땅에 잠잠히 앉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썼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성에게는 더 이상 품위도, 권위도, 영광도 없었다. 평소에 명랑하던 처녀들도 슬픔과 고통 중에 머리를 땅에 숙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심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고 삼키셨고 엎으셨고 뿔을 자르셨고 불로 사르셨고 살육하셨고 진노를 쏟으셨고 훼파하셨다. 또 그는 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처녀들과 유다 나라의 아름다운 모든 자들을 다 벌하셨다. 또 그는 모든 거처와 견고한 성들과 모든 궁과 성전과 제단과 집회 장소와 사면 성벽을 다 부수시고 허무셨고 불태우셨으며, 또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셨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참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7).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범죄함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은 범죄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멸망이요 불행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의 교훈을 순종함으로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믿음과 의로 살면 하나님과 친구가 되고 큰 평안을 누릴 것이다.
11-22절,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
[11절]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기진]함이로다.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어린 자녀들과 젖먹는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기진함을 보고 선지자는 창자가 끓는 눈물을 흘렸다.
[12-13절]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어린아이들은 엄마 품에서 빵과 포도 쥬스를 달라고 말했다. 그 성의 멸망은 너무 거대하여서 위로할 말이 없었고 고칠 길이 없었다.
[14절]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그 성의 멸망의 한 원인은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들이었다. 그들은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고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거짓된 위로와 소망을 전했다. 그들은 부드러운 말만 했고 유다 백성의 죄를 책망하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했고 죄로부터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갔다.
[15-16절]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拍掌)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지나가는 자들과 모든 원수들은 유대인들을 비웃고 조롱하였다.
[17절]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이런 참혹한 예루살렘 멸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일을 행하신 것이며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한 것이 아니었고, 천지의 대주재자 하나님께서 유다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그 성을 파괴하고 원수들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었다.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신 것이었다.
[18-19절]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밤낮 눈물을 강처럼 흘리며 외치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고 마음을 하나님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하며 각 길머리에서 굶주려서 기진한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인해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올리라는 뜻이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하는 심정으로, 절대 순종을 각오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안다면,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회개하며 간구하는 것밖에 남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1절]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티푸킴)[‘안고 어르는’(dandling) (BDB), ‘건강하게 기른’(KB, NASB)]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 노유(老幼)[노인들과 청년들]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륙하셨나이다.
가장 참담하고 비극적인 일은 여인들이 자기 손으로 안고 길렀던 아이들을 먹은 것이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성소에서 살육을 당했고 노인들과 청년들도 죽임을 당해 길바닥에 엎드러졌으며 처녀들과 소년들도 칼에 죽었다. 주의 진노의 날에 주께서는 유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고 다 죽이셨다.
[22절]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들이 없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의 값은 멸망이다. 온전한 아름다움, 천하의 희락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멸망했다. 어린아이들은 굶주려 기진하여 죽어갔고,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부모들은 심지어 자기 자녀들을 잡아먹기까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신 날에 그들을 죽이셨다. 그의 진노를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다. 원수들은 어린것들도 다 죽였다. 죄를 짓는 자들은 결국 다 망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짓된 설교를 분별해야 한다. 선지자들은 거짓말을 했고 거짓된 평안과 헛된 소망만 전했다. 그들은 백성의 죄를 드러내거나 책망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의 거짓된 설교들은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다. 죄를 책망하고 의의 길을 지시하는 바른 설교는 참으로 중요하다. 죄인들에게 평안만을 전하는 것은 속이는 설교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야 한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옛부터 정하신 일을 이루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권자이시다. 복도 화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거기에 건강과 일용할 양식, 평안과 행복과 영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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