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은 인류에게
‘심포니’와 ‘현악4중주’라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에스테르하지의 하인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의 하인’이었으며
거장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 준
고전파 시대의 진정한 거인이었다
하이든의 초상.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이어와 브레이크라고 한다. 타이어는 어딘가로 잘 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브레이크는 그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느려지거나 멈추게 하는 것이니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서로 대조되는 기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진보는 사회가 변화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부여한다면 보수는 변화가 지나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중요한 것이 제외되지 않도록 충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절충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그 날이 올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음악의 역사에서 보수의 역활을 해낸 작곡가는 요제프 하이든(F.J.Haydn·1732∼1809)이다. 하이든은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이 고전파 작곡가이자, 비엔나 3인조로 불리지만 생애는 그들과는 매우 달랐다. 하이든의 아버지는 목수이며 어머니는 요리사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29세가 되던 1790년부터 약 30년간 헝가리의 명문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일하게 되며 자신의 천부적인 창의력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바로크가 물려준 기악형식의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다.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써서 ‘교향곡의 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교향곡은 명실상부하게 클래식 음악이 이룩해낸 최고의 성과이자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발명해 낸 것이 아니었다. ‘심포니(Symphony)’의 어원이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 협화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이탈리아어 ‘신포니아(Sinfornia)’는 초기 오페라의 서곡에서 연주되는 짧은 기악 합주곡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이든의 교향곡작품을 모두 살펴보면, 누군가의 일생을 어린 시절 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앨범을 보고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교향곡의 발전 과정이 요약되어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작품은 순전히 그의 창작 의지로만 작곡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분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하인’ 이었다. 그가 궁정악장으로 봉직하던 시절 하이든이 등장하는 회화 작품들을 보면 하인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주인의 요구대로 곡을 써야 했음을 의미한다. 에스테르하지 공작이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하이든의 음악과 자유의지를 존중해 줬다고는 전해지나 고용인의 음악경향을 따라야 했을 것이다.
하이든이 궁정악단에 고용된 뒤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하루를 음악으로 표현해 달라는 명령을 받고 교향곡 6번(아침), 7번(점심), 8번(저녁)을 작곡하게 된다. 귀족이라는 계급이 태생적으로 안정적이며,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하기에 음악성향을 베토벤처럼 작품 하나를 기점으로 명확히 진보적, 급진적으로 작곡하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테르하지의 궁정악단을 사임하고 난 뒤인 1791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흥행을 위한 교향곡을 쓰게 되는데 93번에서 104번까지의 총 12개의 교향곡이며 하이든을 영국으로 초청한 잘로몬의 이름을 따 ‘잘로몬 세트’ 라고도 불린다. 이 12개의 교향곡은 ‘94번 놀람’, ‘100번 군대’, ‘101번 시계’, ‘103번 큰북연타’ 등 대부분이 자신이 붙인 표제가 아니라 후세사람들이 붙이긴 하였지만, 하이든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듬뿍 들어간 개성 있는 명곡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이든의 잘로몬세트 교향곡이 나온 시점이 모차르트가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라는 것이다.
우리는 고전파 음악가라고 하면 습관적으로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이라는 출생 순서를 떠올리며 음악양식도 순서대로 변화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이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보다 늦게 발표된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주목할 것은 모차르트의 작품이 하이든보다 파격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런 작품이 발표되고 난 후에도 하이든은 자신의 교향곡 스타일을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년 3월 31일 - 1809년 5월 31일)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슈베르트와 함께 16살에도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던 음악가이다.
로라우 출생.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다. 100곡 이상의 교향곡, 70곡에 가까운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 시대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만년에는 미사곡과 《천지창조(天地創造) Schöpfung》(1798), 《사계(四季) Die Jahreszeiten》(1801) 등 오라토리오풍의 교회음악의 명작을 남겼다.
교향곡과 현악4중주와 같은 고전파 기악양식의 완성자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스승으로서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베토벤과 같은 심각한 고민이나 영웅적인 몸짓을 강조하지도 않았으며 바흐와 같은 신비스러운 면도 없다. 그대신 온화하고 소박한 가운데 독창적인 기법, 멜로디의 순수함, 질서와 통일성있는 형식미를 갖춘 전형적인 고전파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에서는 지극히 건전하고 성실하며 현세 긍정적인 태도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음악 곳곳에 들어난 재치와 유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헝가리 국경 근처의 로라우라는 시골에서 태어난 요세프 하이든은 8세때 일찌감치 빈으로 옮겨 그곳 소년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미성은 상당한 인기를 끌어 하마터면 거세된 카스트라토가 될뻔했다고 전한다. 몇몇 귀족의 궁정 악단을 거쳐 29세가 되던 1761년에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는 헝가리 명문 귀족 안톤 에스테르하지 (Anton Esterhazy) 공작 밑에서 일하게 되고 이내 악장이 된다. 1790년 공작이 죽을 때까지 계속 공작의 요구에 따라 작곡하고 지휘하고 연주하는 단조롭고 무사평안한 생활은 계속됐다. 이 시기에 그는 고전파 기악형식을 탐구하고 완성하였으며 많은 작품을 작곡하여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기간중에 있었던 파리 여행에서 작곡된 교향곡이 흔히 "파리 교향곡"으로 불리우는 교향곡 82번-92번까지의 곡들이다. 1790년 궁정악단이 해산되고 자유로운 몸이 된 하이든은 1791년-95년 영국을 방문하여 런던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된 곡들이 바로 "잘로몬 세트", 또는 "런던 교향곡"으로 불리우는 교향곡 93번-104번까지의 마지막 교향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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