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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이승우 소설

헤븐드림 2010. 2. 28. 00:31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중견 견 작가 이승우의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 작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진가를 드러내는 여덟 개의 중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승우는 1993년 『生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꾸준히 문단의 주목을 받아 왔고 이 작품의 불어판 또한 프랑스 문단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는 그는, 종교적 색채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내면 세계를 치열하게 탐사하는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특히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 이상문학상 후보에 오른 수작으로, 이미 호평과 관심의 대상이 된 작품이다. 새로운 작품 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 진지한 작가의 모습이 이 소설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출간은 한국 소설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또 다른 귀중한 행보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이 움직임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도살장의 책」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관청에 가다」 「검은 나무」 「육화의 과정」 「길을 잃다」 「부재 증명」 「책과 함께 자다」 등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그 존재의 근거를 위협받는 시기인 동시에 새로운 존재의 근거를 모색할 것을 각성하게 되는 시기인 현대를 배경으로 하여, 현대인들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서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또한 '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작품들, 전작 『식물들의 사생활』에 이어 카프카적 사유 방식으로 씌어진 작품들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어 또 다른 흥밋거리와 성찰의 소재들을 선사한다.

 

저자 소개

작가파일보기관심작가알림 신청저 : 이승우

Lee Seung Woo,李承雨1959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1981년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991년 『세상 밖으로』로 제15회 이상문학상을, 1993년『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여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2003년 『심인광고』로 제4회 이효석문학상을, 2007년 『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이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된 바 있고, 특히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기도 했는데, 폴리오 시리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고본으로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해 펴내고 있으며,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소설집으로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목차

1. 도살장의 책
2.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3. 관청에 가다
4. 검은 나무
5. 육화의 과정
6. 길을 잃다
7. 부재 증명
8. 책과 함께 자다

해설 - 빈자리와 와해, 그리고 언어/박철화

 

그가 꾼 꿈은 한 장의 흑백 사진과 같았다. 움직임도 없고 대사도 없었다. 인물조차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애초에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동작이 배제된 한 장의 낡은 사진은 꿈도 서사라는, 적어도 서사의 형식을 띠게 마련이라는 생각에 익숙해 있는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쩌자고 똑같은 그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어둠 속에 일어나 앉으며 그는 꿈이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무슨 암시인가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본 것은 검은 나무였다. 나무는 크고 굵었지만 가지에는 잎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잎은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잎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불에 타 없어진 거였다. 불에 탄 나무는 숯검정이 되어 헐벗은 대지 위에 서 있었다. 대지도 검은색이었다. 대지도 불에 탄 자국을 검버섯처럼 붙이고 있었다. 어떤 사진 작가의 사진첩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닐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그는 사진첩이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의식을 동반하고 사진을 감상해 본 기억도 없었다. 여러 번 접해서 친숙하다는 느낌이 누군가의 사진첩에서 본 듯하다는 생각을 불러온
... 
펼처보기 ---pp.85~86

 

이번에 출간된 중견 소설가 이승우씨의 여섯 번째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 우리 시대에 소외되어 가고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책'을 깊은 울림으로 그리고 있다. 책과 문학의 위기의식을 절실하게 그려낸다. 

“그저 환경이 바뀐 거예요. 소설 밖에서 지식욕을 채울 수 있는 채널들이 좀 많아졌어요? 눈과 귀와 머리를 즐겁게 해주는 자극적인 오락거리들은 또 어떻구요. 거기다가 지난 시대에 금기로 묶여 있던 것들이 와르르 풀려났단 말입니다. 억압된 욕망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지요.” 

- 「육화의 과정」중에서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등단한 후 소설집『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등과 장편소설『가시나무 그늘』, 1993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던 『생의 이면』, 『내 안에 또 누가 있나』, 『사랑의 전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식물들의 사생활』 등까지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성실하게 탐구해온 이승우의 소설들은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을 소재로 실존적인 고뇌에 접근하고 있다. 아주 평범한 듯하면서도 다분히 철학적이다. 평론가 박철화는 “사연과 곡절이 차고 넘치는 우리 문학으로서는 드물게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온 작가”라고 표현했다. 

새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도 그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8편의 작품들이 실려 있으며 아버지로 대표되는 부성적 세계의 상실과 책, 문학의 몰락, 죽음을 다루고 있다. 8편 모두 읽고 나면 입맛이 쓰다. 회사 파산 이후 무능한 경영자로 내몰려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관을 연상시키는 나무궤짝을 만든 뒤 그 안에 들어가 수면과 안정을 찾는다는 표제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와 가치를 상실해가는 책의 존재에 대한 야유를 다룬 「도살장의 책」, 현대인의 자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부재증명」 등등 책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위기의식을 다루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기네 집 책꽂이에서 부패해 가고 있던 책들을 갖다 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모르겠는가. 책들의 쓰레기장, 아니면 책들의 무덤?” 

-「도살장의 책」중에서 

“그녀가 더듬는 내 몸이 내 소설의 일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가 내 몸의 어느 부분을 만지면 내 소설의 일부가 허물어져 가는 것 같아요. 책이 훼손되면서 내 존재가 지워져 가는 느낌을 가져야 했어요.” 

- 「육화의 과정」중에서 

“케이 양 비디오 또는 시디, 화끈한 걸로, 일본 성인 만화.... 뭔지 알아요? 요새 내가 받은 주문들이에요.” 

- 「책과 함께 자다」중에서 

자신의 몸과 같은 책이 강간당하고 오래된 유물이 되어 떠도는 현실을 절망적으로 그리면서도 작가는 또다시 소설을 내놓는다. 그에게 소설은 “세상을 향한 가난한 소통의 수단”이기에 “절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주 오래 살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의 작품 세계

평론가 박철화의 지적대로 이승우는 '사연과 곡절이 차고 넘치는 우리 문학으로서는 드물게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온 작가'이다. 그의 이러한 탐구가 가치를 갖는 것은 형이상학적 깊이를 지니고 나아가면서도 언제나 다양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기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의 글쓰기 안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읽혀지고 환기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나는 아주 오랜 살 것이다』에 수록된 단편들 중 「도살장의 책」「육화의 과정」「책과 함께 자다」에서 '책'은 와해되어 가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하나의 역사적인 현실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현실을 인간 존재 자체의 정체성의 위기로 연결시킨다. '근원적 정체성을 잃고 여러 개의 존재로 분열되어 살고 있는 정보통신 혁명 시대의 인간에 대한 알레고리'를 「부재증명」에서 읽어 낼 수 있다. 또한 카프카적 사유 방식이 엿보이는 「관청에 가다」「길을 잃다」에는 끝없는 우연과 배회 가운데 떠다니는 현대인의 양상이 형이상학적인 우화를 통해 그려져 있다. 정체성의 위기는 아버지 부재와도 관련이 있다. 이승우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빈 자리로 그려지거나 그 역할과 위상을 잃어버린 이로 그려진다. 특히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버지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기억들, 지우고 싶은 기억들에 시달리기도 한다. 「검은 나무」에선 이렇게 남성적 가치가 훼손된 상황에서 부성이 고행을 통하여 속죄하고 자신의 순결성을 회복하고 있다. 그리하여 부성과 모성이 다시 만남으로써 현실의 우의적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승우의 글쓰기는 '진흙탕과 시멘트 벽 사이 좁은 틈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흙과 상처의 육체'를 지향하는 글쓰기이다. 그에게 소설은 세상을 향한 가난한 소통의 수단이며,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 그것에 대한 여실한 증거이다. 그의 소설은 '아주 오래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