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용택이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는 시들에다 김용택 시인만의 독특한 글이 어우러진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국시 한 편과 우리나라 근대 서정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 이용악에서부터 박용래와 김수영, 서정주와 고은을 거쳐 장석남, 유하에 이르기까지 근 1세기 동안의 한국시사를 가로지르는 우리 시인들의 마흔 여덟 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p.28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운동장가 벚나무 가지 끝에 무언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지지 않은 나뭇잎인가 했는데. 책을 보다 궁금해서 다시 보니 움직인다. 새다. 새가 나뭇잎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외로움의 끝, 그 절정에서 잠깐 움직인 것이다. 산그늘이 강을 건넌다. 외롭다. 나도 강가를 지나 집으로 가야겠다.---pp.28~29
시와 더불어 일생을 사랑으로 채우고, 일생을 혁명으로 불지르고 싶어했던 금강의 시인 신동엽. 그의 시는 큰 산맥에서 우러나와 강을 차고, 산을 때리고 들판을 울리는 대지의 목청이다. 그는 시시껄렁한 폼을 싫어한 시인이었다. '전경인'을 꿈꾸는 큰 시인이었다. 그는 시업가가 아닌 진짜 인간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p.72
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p.14
그의 시를 읽으면 외양간 처마 밑에 걸어둔 마른 시래기에 싸락눈 들이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다 떠난 적막한 고향 마을 밤 깊도록 잠 못 들고 계실 어머님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눈이라도 오면 문 열고 나가 '뭔 놈의 눈이 이리 밤새 퍼붓는다냐'시며 고무신에 쌓인 눈을 터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p.11
강물
- 천상병 -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p.78

49편의 시와 촌철살인의 감상글이 어우러진 책
서른다섯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영화에세이, 동시,동화집 등을 출간하고,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누구보다도 활발한 저작활동을 통해 이 시대의 중요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김용택, 그가 '시가 있는 아침'에 두 달 동안 연재했던 글을 묶은 이 책에는 그동안 시인이 가슴속에 오래도록 품고 보듬어왔던 시들이 담겨 있다.
시를 선택함에 있어 어떤 편견이나 특별한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와도 일맥상통하는 민중의 정서가 살갑게 살아 숨쉬는 서정적인 시편들이 이 한 권의 책을 관통하는 주된 흐름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이나 비평은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시를 향유하고 시를 향해 한 발 더 가갑게 다가서려는 독자들의 발목을 묶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에 대한 경외심과 시인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이는 김용택 시인은 시의 본질이 무엇보다도 감동과 울림에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지난날 시 속에 파묻혀 살던 날들을, 그 푸른 떨림을 다시 느꼈다"(「엮으면서」중에서)는 말처럼, 오랜 시간 시를 읽고 시를 써온 시인임에도 아직까지 시에 대한 떨림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시단을 거침없이 질타하는가 하면, 시와 시인에 대한 사랑을 문학적인 수사나 기교 없이 느낀 그대로 질박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글들은 마치 저자의 진솔한 시편들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소설가 지망생들의 습작 방법 중에는 텍스트가 될 만한 선배 소설가들의 작품을 한 번 혹은 여러 번에 걸쳐 필사하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시인이 되고자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