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맞이하는 한국 소설의 큰 흐름과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00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000년도 제24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인화 씨의 소설 <시인의 별>이 선정되고, 6편의 추천우수작과 2편의 기수상작가 우수작이 선정되었다.
이인화의 <시인의 별>은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여 놓음으로써, 소설적 주제의 완결성과 그 기법의 치밀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섬세한 문장 표현과 그 광활한 상상력의 무대는 한국 소설의 새로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상문학상 선고위원회는 이인화 씨의 작가적인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대상 수상작
이인화 <시인의 별>
추천 우수작
박덕규 <포구에서 온 편지>
배수아 <징계위원회>
원재길 <물 속의 집>
이순원 <아비의 잠>
조경란 <나의 자줏빛 소파>
한창훈 <돗 낚는 어부>
기수상작가 우수작
최수철 <매미의 일생>
최일남 <풍경소리>
▶ 기수상 우수작가 : 최일남
▶ 추천 우수작가 : 이순원
▶ 기수상 우수작가 : 최수철
▶ 추천 우수작가 : 박덕규
▶ 추천 우수작가 : 원재길
▶ 추천 우수작가 : 한창훈
▶ 추천 우수작가 : 배수아
▶ 추천 우수작가 : 조경란
1. 제24화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선정 이유서
2. 제24회 이상문학상 대상 심사 경위
3. 심사평
- 이어령 : 드넓은 '초원'의 상상력과 특이한 기법
- 김윤식 : 왜소한 한국 소설계에 돋보이는 신선함
- 김채원 : 괄목할 만한 밀도 있는 문장과 미학적인 안목
- 윤후명 : 숭고하고 준엄한 사랑의 뜻
- 권영민 : 설화적으로 재구성된 사랑의 절묘한 표현
4. 대상 수상작
- 이인화 시인의 별 (부제 : 채련기 주석 일곱 개)
5. 대상 작가 자선 대표작
- 이인화 초원을 걷는 남자
6. 추천 우수작
- 박덕규 : 포구에서 온 편지
- 배수아 : 징계위원회
- 원재길 : 물 속의 집
- 이순원 : 아비의 잠
- 조경란 : 나의 자줏빛 소파
- 한창훈 : 돗 낚는 어부
7. 기수상작가 우수작
- 최수철 : 매미의 일생
- 최일남 : 풍경소리
8. 이인화의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 이인화 수상소감 : 가장 인간다운 지점을 찾아서
- 이인화 나의 문학적 자서전 : 문학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순간순간들
9. 작품 세계와 작가 이인화
- 진형준 이인화의 과 그 작품 세계 : 삶의 원형을 찾아
- 이하석 작가 이인화를 말한다 : 지식인 소설의 새로운 개척자
10. '이상...
철새는 날아갔다 돌아오지만 인연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습니다.--- p.53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불우한 식자(識者)둘은 있다. 갑자기 열린 새 시대 속에 전통적인 문인 집단들이 소멸되고 그들을 대신할 신흥 사대부들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과도기. 낡은 교육제도의 관성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새 시대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익사해 버렸던 무수한 지식인들. 그러나 그뿐이었을까. 어쩌면 안현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스러져 버리지 않고 시대의 심연, 그 깊은 혼돈 속으로 내려가 자기 운명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 와 같은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p.31
'안현은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어났다. 비틀거리며 천막을 나서자 홀연 머리 위에 눈부시게 밝은 세계가 그의 시계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칠흙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하얀 불꽃처럼 타오르는 별들이었다. 안현은 두 팔을 벌리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 별빛을 껴안았다. 오래 전에 잊어버린 그의 별, 멀고 외로운 젊은 날의 별이 다시 보였다. 안현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황야는 세상 끝까지 뻗어 가지만 그 위에는 억만 년 저런 별이 빛나고 있다.......'---2000/04/07 (jkkim93)
뱃사람 하나가 부들부들 떨며 수평선을 가리킨 것은 정오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60인이 탈 수 있는 돛대 두 개의 2천 석짜리 배가 세 척이었다. 배들은 삼각돛의 조화를 자랑하며 눈깜짝할 사이에 대청도 포구로 들어왔다. 안현은 두렵고 착잡한 심정으로 매에서 내리를 이아치를 바라보았다. 뭍으로 올라선 이아치는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혔다. 그리곤 누꼬리가 날카롭게 찢어진 눈을 통해 자존심과 불신과 불쾌감이 뒤섞인 곁눈질을 사방에 뿌렸다. 안현은 그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키는 거의 육 척이나 외었고 뼈대는 굵직굵직했으며 두툼하고 주걱 같은 손가락들을 갖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이아치를 향해 거개를 숙이다가 안현은 친구 이세화를 발견했다. 이아치를 시중 들 고려인 관리로 따라온 것이다. 이아치가 자신의 관저로 들어간 뒤 두 사람은 길가의 소나무 밑에서 반갑게 재회의 정을 나누었따. 묘한 거리낌도 있는 사이였지만 이런 곳에서 친구를 만난 반가움은 그 모든 과거지사를 덮어 버렸다.--- p.39
나는 아직도 해가 지고 찬바람은 강하게 불며 나무들은 놀란 듯이 무거운 가지를 나부끼던 그 저물녘을 기억하고 있다. 혜연과 나, 그리고 두 사람의 사연이 그 스산한 저녁 어딘가에 함께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날 시장 골목을 지나 선배의 양품점 앞에 도착한 나는 울적했다.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쓸쓸했다.--- p.69
~거의 무한한 고독이 그의 기력을 앗아 갔다. 이제는 어떤 의문의 여지도 없이 자신의 인생이 헛되이 흘러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있었다. 고려에서 온 사신들은 사람들이 점점 더 원나라의 관대한 통치를 고마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황야는 오직 자신의 가슴속에 만 살고 있었다. 황야를 사이에 두고 자신과 아수친은 서로를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영원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괴로운 얼굴을 들어 초원을 걷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령을, 자신의 혼을 만나는 사람은 곧 죽는다는데.. 그러나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얼굴을 쳐드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의 눈을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기에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닮았지만 나보다 17년은 더 어려 보였다.--- p.55, ---p.88-89
~거의 무한한 고독이 그의 기력을 앗아 갔다. 이제는 어떤 의문의 여지도 없이 자신의 인생이 헛되이 흘러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있었다. 고려에서 온 사신들은 사람들이 점점 더 원나라의 관대한 통치를 고마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황야는 오직 자신의 가슴속에 만 살고 있었다. 황야를 사이에 두고 자신과 아수친은 서로를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영원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괴로운 얼굴을 들어 초원을 걷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령을, 자신의 혼을 만나는 사람은 곧 죽는다는데.. 그러나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얼굴을 쳐드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의 눈을 마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기에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닮았지만 나보다 17년은 더 어려 보였다.--- p.55, ---p.88-89
이인화의 <시인의 별>과 그 작품세계 - 삶의 원형(原型)을 찾아
시인의 별>은 팍스 몽골리아의 세계하에 고려 말을 살았던 안현(安顯)이라는 불우한 시인, 지식인의 이야기다. …… 그러나 그처럼 매우 간단해 보이는 소설 의 내적인 구조는 아주 정교하게 여러 겹을 이루고 있다.
우선, 소설 자체의 틀. 은 고려 충렬왕 때 사람인 안현에 대한 역사적 기록(그가 불우한 지식인이었으며 결국 서해의 대청도로 나가 일개 수역[水驛]의 역참 관리가 되기까지의 과정만 기록되어 있다)과, 1997년 8월 앙카라 대학의 한 교수가 발견한 17세기 필사본에 들어 있는 를,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안현과 비칙치 안을 동일인으로 상정하고 한 편의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그 답은 소설 속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불우한 식자(識者)들은 있다. 갑자기 열린 새시대 속에 전통적인 문인 집단들이 소멸되고 그들을 대신할 신흥 사대부들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과도기. 낡은 교육제도의 관성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새시대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익사해 버렸던 무수한 지식인들. 그러나 그뿐이었을까. 어쩌면 안현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스러져 버리지 않고 시대의 심연, 그 깊은 혼돈 속으로 내려가 자기 운명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 〈채련기〉와 같은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위의 내용대로라면 소설 을 쓰게 한 상상의 뿌리는 두 갈래다. 하나는 격변기 혹은 과도기를 살고 있는 지식인, 필경 패배자가 될 운명을 더 많이 타고난 지식인의 삶과 의미에 대한 작가의 진지하고 간단없는 성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역사적 기록, 사실(史實) 속에서, 과거에 붙박힌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삶의 원형(原型)을 보는 작가의 눈,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 상상력에 의해 은 각기 따로 떨어진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의 결합이라는 형식적 겹 외에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 과거와 현재의 결합, 역사성(당대성)과 원형성의 결합이라는 여러 겹들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이 소설에 작가가 ‘시인의 별’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려 말에 살았던 안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지식, 작가가 우연히 접하게 된 ‘고려인 비칙치(서기) 안’의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과거의 시...
작가 이인화를 말한다 - 지식인 소설의 개척자
그에게는 늘 세련미와 함께 어떤 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시키려는 열의 같은 것을 언제나 내비쳤다. 글도 열심히 썼다. 그런데 그 글쓰는 모습이 도시적이라는 느낌으로 내게 비쳐지곤 했다.
이인화라는 작가이면서 유철균이라는 평론가요, 동시에 일 주일에 여섯 시간의 문예창작론을 강의하는 대학교수인 그는 매사에 문제적이면서도 뛰어난 순발력을 갖춘 지적 전사다. 그것은 자신이 접하고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성찰이 간단없이 이루어짐으로써 가능했다.
그는 ‘매일 아침 양말을 사는 남자’라는 야릇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소설가로 연구실에 붙어 있다 보니 집에 들어갈 수는 없고, 양말은 갈아 신어야 하니 매일 아침 이대 앞 단골 편의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는 지독하게 일에 매달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처음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뇌하는 인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지난한 지적 탐색으로 가득 차 있다.
이인화의 수상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1. 수상소감 - 가장 인간다운 지점을 찾아서
저의 작품 <시인의 별(부제:채련기 주석 일곱 개)〉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 문체, 사전체(史傳體)를 모방하여 씌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낡고 촌스러운 이 사전체 문장과 탈현대적인 주석으로서의 글쓰기를 조화시키기. 이것은 유치하나마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지점을 찾아보려는 고심참담한 모색의 산물입니다. 이같은 형식에 슬프고 아름다운 한 남자의 순애보를 담은 이 작품이 과연 어떠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고대 초기 노예제가 몰락해 가던 공자의 시대에도, 몽골에 의해 최초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던 안현의 시대에도, 그리고 미국에 의해 또 다른 세계화가 이루어진 나의 시대에도 한결같이 망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의 위대함은 새시대의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고 망해 간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이 위대함과 망함의 형용모순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문학 속에 인간 정신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생각합니다.
2. 나의 문학적 자서전 - 문학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순간순간들
2000년 1월 9일 이상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돌아보니, 어느새 등단을 한 지 13년째가 되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매일 뭔가를 쉬지 않고 쓰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썼는가 하고 되물으면 망연해진다. 이거다 하고 내놓을 작품이 하나도 없으니 괴로울 뿐이다. 소설은 문단에서나 통하는 나긋나긋한 문학이어서는 안 되며, 실생활을 헤쳐 나가는 박력을 가진 문학이어야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으냐를 가르쳐 주는 문학이어야 한다며 직접 팔을 걷어붙였으나 오히려 민폐만 끼친 것이 아닐는지.
그러나 종종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마음에 낙숫물 지는 날이 있어서, 나는 옛날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이 작가가 되겠다고 모여들었던 계단 위 골방을 생각한다. 혹은 아름다운 여대생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던 그 햇빛 찬란한 연못가를 생각한다. 문학을 알게 되었기에 인생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던 그런 순간순간들을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도 많이 변했지만 그때 문학에 대해 가졌던 그 초심(初心)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 충렬왕 때 학식이 깊지만 불우했던 어느 지식인 안현의 이야기와, 17세기의 필사본에 실린 ‘고려인 비칙치(서기) 안의 이야기’.
화자는 안현과 안 서기 이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사람의 일생을 재조명하고 있다.
안현은 학식이 깊고 심지가 곧은 인물이지만 시대가 워낙 암울하여 출세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혼담이 오가서 예쁘고 착한 아내를 맞이하게 되고, 가장이 된 안현은 그 책임감으로 자존심을 버리고 멀리 대청도의 일개 역참 관리로 가게 된다.
대청도에는 때마침 몽골의 황자(皇子)인 이아치가 유배되어 오는데, 안현의 기구한 스토리는 안현의 부인이 이아치의 눈에 들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아치는 안현에게 부인을 내놓으라고 하나 안현은 이를 거절하고, 고민하다 못한 부부는 야밤을 틈타 도망치지만 결국 부인은 잡혀가고 만다.
부인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안현은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빈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안현은 몽골 귀족의 부인이 되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안현은 부인을 찾아가 같이 고국에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이미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부인은 거절하고……, 안현은 부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자기도 황야에 산 채로 매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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