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눈 먼 사람처럼 바람의 벽을 짚어가며 좁고 긴 길을 걸었어 벽 속에 만져진 물과 하늘 그리고 숲의 술렁임으로 가슴이 시원했지 해조류가 된 기분으로 추상의 시간을 날아가선 바람을 만지며 끊임없이 조용한 대화를 했어
그때 물빛 하늘을 본 것 같아 좀더 높은 층의 바다였을까
푸른 숲은 넘실대고 깊은 물길 아래 자유의 태양을 만났어 온화한 미소의 여신같은
물 속에 잠긴 그 따뜻한 눈시울을, 바람이 메아리쳐 던진 해의 긴 신음을
숲속 양지에 나동그라진 돌들의 앙탈을, 그 속에선 모두가 자유의 방랑자였지
하나 같이 맑고 시원한 숨결을 토해내며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 같았어온몸의 피가 춤추는 듯 열광했지 바람이 건네준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서 불치의 열병, 바로 그 발작적인 춤 생의 원천을 찾아가는 끈질긴 허기가 열망으로 미쳐 날뛴 셈이지 딴은 시작도 없는 영원 전을 향해 거슬러 오르는 무조건의 갈구였던걸 정처없는 회고의 바람 벽 드디어 고뇌로 퇴적된 바위들의 무게를 그리려해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그림, 충분히 가려진 비밀스런 푸른 숲길을, 캄캄한 밤하늘에서 나는 시작도 끝도 없게 제멋대로 솟구치는 자유스런 핏방울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 속에 뿌려놓겠어
나의 어여쁜 잉태의 고통은 이제야 자유의 숲에 갇히네 다시 바람의 벽을 타는 눈이 먼 자되어 떠나고 물길로 유랑하는 푸른 섬이 되려해 마치 하늘로 비상하는 구름처럼 이 모두다 천지가 온통 바람이 되는 소용돌이였을까 저 한없는 대양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