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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은 두 아이를 여의고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객사했어요. 유교사상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는 말로가 불행한 여성을 조명할 줄을 몰랐죠.”최문희 작가의 설명이다.
당대 천재였지만 개인사는 비극으로 점철됐던 비운의 시인은 죽음 이후에도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던”
작가는 운명처럼 난설헌과 그녀의 시를 접하고 “삶이 고단하고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깊고 처연한 시로 운명을 갈무리하는” 난설헌에게 매료된다. 난설헌의 삶과 내면을
한땀 한땀 바느질 하듯 꼼꼼하게 풀어내며 각 장면을 한 편의 세밀화처럼 표현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던 시대적 상황에서 극히 예외적인 자유로운 가풍 아래 수학하며
천재성을 발휘한 어린 초희는 15세에 혼인을 한 이후 철저한 가부장제를 강요하는 엄정한
시대 속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점은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장치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라는 절절한 독백을 읽노라면 천재적인 재능 때문에 삶이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하다.
더불어 요소요소에 절묘하게 배치된 난설헌의 시편은 작품에 섬세한 감성을 더한다.
2년여 동안 한시를 공부했다는 작가의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는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한, 그렇게 스러져간 여인의 가슴 시린 삶과 눈물이 그대로 밴 시들”이라고
설명하며 “시편을 꼼꼼히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행간에서 난설헌의 숨결을 읽을 수 있었다.
소설 속 난설헌의 캐릭터는 시에서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55세에 단편 ‘돌무지’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늦깎이로 등단한 작가는
1995년 ‘율리시스의 초상’으로 제4회 작가세계문학상, ‘서로가 침묵할 때’로 제2회
국민일보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그러나 제도권 밖의 무명의 작가가 책을 출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학상 수상만 4회라는 이색적인 경력은 그렇게 나오게 됐다.
특히 국내 문학상 공모 사상 최고령 당선(혼불문학상, 2011)이라는 기록을 세운 ‘난설헌’은
발매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며 작가 ‘최문희’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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