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8장 강해
요절: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6절)
이사야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남유다 왕 아하스는 이를 믿지 않으므로 유다도 앗수르에 의해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사야는 놀랍게도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악이 있을 때는 심판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1. 앗수르의 노략이 속하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자로 ‘마헬살렐하스바스’라고 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증인인 제사장 우리야와 스가랴를 불러서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말에 대해 증인을 서겠다고 하십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속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에 노략이 속히 일어날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처녀인 아내와 결혼해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그가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노략물을 앗시리아 사람들이 빼앗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아들을 통해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아람에 대해 속히 노략할 것을 확실히 증언합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한 것에 대해 두려워 떨었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심으로 떨 필요가 없습니다.
2. 앗수르의 침략은 임마누엘이다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5-8).
여호와께서는 다시 이사야에게 유다의 죄악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유다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 곧 유다의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실로아 물은 기혼에서 흐르는 작은 물입니다. 그러나 마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작고 느리게 일하지만 지속적으로 일하십니다.
유다는 이런 하나님을 버리고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리야의 아들 앞에서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공동번역). 유다 사람들은 실로아 물을 버리고 유브라데의 큰 강물인 앗수르를 의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강대국 앗수르가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다도 앗수르를 통해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통해 아람과 북이스라엘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하는 유다도 앗수르의 공격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앗수르 왕과 그 모든 위력으로 유다를 덮으십니다. 앗수르의 침략이 유다의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들어옵니다. 하수가 유다 사람들의 목에까지 미쳐서 고통을 줄 것입니다.
이사야는 ‘오 임마누엘이여, 앗수르의 펴는 날개가 너의 땅에 가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너는 유다 땅을 말합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앞서 보았듯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침략은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하는 표시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불신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통해 유다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표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축복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살 때는 축복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시입니다.
죄와 불신이 있을 때는 심판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표입니다.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침략도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3. 유다는 앗수르가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9-13절을 보면 앗수르가 잘나서 유다를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쓰시는 몽둥이에 불과합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하나님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앗수르 민족은 함성을 지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허리를 동이고 싸울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작전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패망하고 그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가 패망할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계셔서 유다를 훈련하신 후 앗수르를 망하게 하십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훈련하시는 것이요, 앗수르는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고난의 차이입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이사야를 붙잡으시며 이사야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에 대해 반역을 모의하는 것에 대해, 함께 모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강대국을 이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거룩하다고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신다
14-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성소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소가 되십니다. 그들을 보호하시는 성소가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집의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십니다. 예루살렘 믿지 않는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부러집니다. 덫에 걸려 잡힙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지금까지 증거한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제자들이 보는데서 봉합하여 읽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집에 대해 얼굴을 가리우시고 더 이상 그들에게 말씀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시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찾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중함을 알기 원하십니다. 이제 이사야는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가 얼굴을 드러내시기를 기다리며 바라봅니다. 지금껏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기다리십니다.
5. 자녀들이 예표가 된다
18-19절을 보면, 이사야는 사람들에게 보라고 외칩니다. 이사야 자신과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의 첫째 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는 돌아온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후 유다의 남은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남은 자들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통해 아람과 이스라엘과 유다를 노략할 것을 예표합니다.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십니다.
시대가 불안해지면 유다의 어떤 사람들이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앞으로의 일을 물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마땅히 살아계신 자기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묻다가 망하였습니다.
6. 하나님을 떠날 때 흑암뿐이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20-22절).
유다 백성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가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게 살아가면, 그들은 반드시 아침 빛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빛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신접한 자를 따르는 자는 이 땅을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입니다.
그들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입니다. 그들이 흑암 가운데 쫓겨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친히 빛이 되시고 성소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아침 해와 같이 밝아질 것입니다. 아멘
'설교, 기독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데반의 마지막 설교와 변론에서 한국 선교가 새겨야 할 점 (0) | 2024.07.21 |
---|---|
[김영한 칼럼] 유신진화론에 대한 정통개혁신학적 평가(V) (0) | 2024.07.18 |
죽음에 대한 간증 (0) | 2024.06.13 |
공감은 문제 해결 방식 아닌… 이해·사랑하는 방식크리스천투데이 (0) | 2024.06.08 |
하나님의 임재 연습,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문양호 목사 (0) | 2024.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