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하나만 꼽으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이다. 클래식 CD나 LP 자체를 얼마 갖고 있지도 않음에도, 그 중 적지 않은 것들이 여러 연주자들이 연주한 바흐 첼로 무반주 조곡들이다.
이 곡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야노스 슈타커의 연주를 통해서였지만, 그래도 최고의 연주가를 꼽는다면 나름의 기준으로는 이 곡을 처음 발굴했던 파블로 카잘스다. 그의 연주는 다른 연주자에 비해 어떤 면에서는 가볍게 느껴지는 듯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연주의 깊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즈음에 파블로 카잘스가 생각난 것은 카잘스가 이 곡을 매일 연습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곡을 연습했다는 차원의 의미를 넘어설 것이다.
젊었을 적 QT와 기도, 성경읽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 나가려고 나름 상당히 노력했다. 그 열심의 동기 중 하나는 그것이 제자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제자훈련이고 일종의 영성 같은 것이라고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때 거르지는 않았지만 나의 기도와 큐티는 플러그를 빼버린 전기난로처럼, 형식은 남았지만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던 때가 종종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경건한 성도였고 나름 열심 있는 믿음의 선배처럼 보이기도 했겠지만, 나의 내면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내 자신이었고 내가 무뎌져 나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할 때도 하나님은 분명 나의 수준과 상태를 알고 계셨다.
그러다 그저 제자훈련 프로그램이나 성경공부를 하나 마치는 것이 나의 신앙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불을 지피는 것이 될 수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면서, 허울뿐인 외식을 조금씩 벗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예전에도 그랬듯 매일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하는 노력은 놓지 않는다. 그것에 내 중심을 최대한 실어갈 뿐이다. 그러한 마음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카잘스가 매일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을 기도처럼 연습하는 마음 같을 것이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그런 것 같다. 연습을 언급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주변 환경 정리이고 마음 정리이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기도를 읊조리고 성경을 그저 읽어 나간다고, 하나님이 주문을 외우면 나타나는 귀신이나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는 지니가 아니기 떄문이다.
하나님의 거룩과 위엄을 로렌스는 알기에, 그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께 손을 내민다. 이런 로렌스의 모습을 그는 부인할지 모르지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면 그의 얼굴이 빛이 났던 것처럼 그를 통해 주변 이들은 그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의 잔영을 느꼈고, 그래서 그에게 신앙의 조언과 상담을 구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마치 학원 일타 강사처럼 자신을 따르라고 로렌스는 외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에, 겸비함으로 나아갈 뿐이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번역했던 함석헌 옹은 책 서문에서 칼릴 지브란은 시궁창에 빠진 자신을 건지기 위해 오물이 묻은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는데, 로렌스도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듯 하다.
하나님 앞에 자신도 그저 죄인일 수밖에 없기에 넘어진 자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며 조금만 힘내자고 격려할 뿐이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잊고 사는 듯 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 필요하다.
염려되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는 이렇게 조용히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보다는 더러운 얼굴에 진한 화장과 오물 범벅의 몸에 명품으로 자신을 가리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선동가에게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이 책은 고전임에도 지금의 성도들과 교회에 주목을 그리 끌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삯꾼 목자나 직업 종교가가 아니라, 골방에서 손때 묻은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는 이들일 것이다.
문양호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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