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
이스라엘 왕국 분열 후 남 유다의 제 3대왕이다. 아비암의 아들이며, 그의 모친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이다(왕상 15:9,10). 아사는 부왕 아비얌과는 정반대로 그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국내에서 남색(男色)하는 자를 추방하고 우상을 제거하는데 힘썼다. 심지어 친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폐위까지 한 왕이다. 그는 우상을 찍어서 기드온 시냇가에서 불살랐다.
그런데, 산당을 없애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 증명한다. 그는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것, 즉 금은 기명(器皿)을 여호와의 전에 바쳤다(왕상 15:9-15). 이 때는 치세 초창기였는데, 10년 동안은 평온하였다(대하 14:1). 그는 힘이 미치는 한(왕상 22:46,대하 19:4)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였으며, 율법과 명령을 준행하게 하였으며, 종래의 산당과 태양상을 제거하였다. 아사의 이 종교 개혁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국태민안하여 그는 오랫동안(40년) 유다를 다스리게 되었다(대하 14:1-5).
종교 개혁 후 그는 국내 건설에 주력하였다. 국내가 태평할 때, 그는 성읍을 건설하고성곽과 망대를 건축했다(대하 14:6-8). 그런데, 열왕기상 15:22, 예레미야 41:9의 요새 축조는 이스라엘의 바아사와 싸울 때 그를 두려워하여 쌓았다고 하니, 아마 전자는1차이고 후자는 2차인 모양이다. 또 군대 육성에 있어서 부왕 때에는 40만(대하 13:3)이었는데, 아사는 58만으로 증강되었고, 그의 아들 요사밧 때에는 116만으로 더 크게증강되었다(대하 17:14-17). 때에 구스(에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아프리카의 대군(군사 100만,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침입해 왔으나, 아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강한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는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도우소서…"라고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반수에 불과한 군사로서 100만 대군을 물리쳤다(대하 14:9-15). 구스군을 추격하여 그랄(지중해 근처 가사 남쪽)까지 갔다가 개선하는 도중 하나님께서 무명의 선지자 아사랴를 통하여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찌라…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라고, 그에게 전승에서 만심하지 말고 더욱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으라는 권면을 하였다. 겸손한 왕 아사는 아사랴의 예언을 듣자 국내의 가증한 물건들을 제거하고(대하 14:2,3의 잔존물인 듯하다), 여호와의 단을 중수했고(아마 르호보암 왕 시대에애굽 왕 시삭의 침입 때 훼파된 것인 듯하다), 예루살렘에 민중대회를 열고 헌제하므로 칠칠절을 지켰고,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찾아 섬기도록 맹세하게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셨다. 그는 또한 아세라 목상을 만든 조모 마아가를 폐위하고, 그우상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이 때에 그는 자기의 전리품과 부왕의 유물을 감사하므로 여호와의 전에 헌납하였다.
이때부터 아사 왕 35년까지다시는전쟁이없었다고 한다(대하 15장).열왕기상15:16,32에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일생 전쟁이 있으리라"하는 말과 다른 것은, 아마 이것은 분쟁을 의미함이요, 격심한전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치세 36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베냐민에 침입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는 북쪽 길을 막기 위해 라마를 건축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다메섹 왕 벤하닷에게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몰수히 보내 바사 왕의 격퇴를 부탁했다. 바아사 군이 물러 가자 유다에 영을 내려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했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왕상 15:1622,대하 16:1-6). 아사의 취한 태도는 인간의 전략상으로는 옳은 일일지는 모르나, 신앙상으로는 큰 잘못이다. 때에 선지자 하나니(예후의부친)는, 만일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라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아람 군까지 격파했을 것인데, 기회를 놓쳤고, 전에 구스 군대를 여호와의 능력으로 격퇴했는데, 이번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라고 예언했다.
이에 대하여 아사 왕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노하여 하나니를 투옥했다(대하 16:7-10).역대하 15:17이나 열왕기상 15:14 등에 아사는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고 하였으나, 만년에 그는 신앙에서 떠났다. 전에 세라의 대군이 침입했을 때는 아사랴의예언을 순종하여 승리했으나, 만년에는 배은했다. 이같은 성공이 그로 하여금 교만케만들어 하나니의 충고를 일축하였다. 그의 치세 39년에 발에 병이 났을 때에도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 구했다. 그는 치세 41년에 일생을 마쳤다. 재위는 BC 963-923년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