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오지호 화가 그림 모음 1

헤븐드림 2023. 4. 7. 10:14

오지호의 작품세계

 

 

오지호(1905~1982 예술원회원) -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선구자  

 

 

 

'지산동 초가' 1980

 

 

오지호 작가의 방


예술이란 신이 만든 자연을 토대로 만들어낸 또 다른 창조라는 의미에서 볼때 화가에게 있어 자연은 매우 의미있는 존재이다, 1910년을 전후해 유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이 이땅에 들어오면서 우리 화단은 한국의 풍광과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회화예술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는 서구 인상주의 이론을 한국의 빛과 자연에 반영했다

 

이런 사실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있어 매우 뜻 깊은 일이다. 당시 몇몇 작가들이 한국적 자연을 바탕으로 한 유화 수용과 서구의 인상파적 표현 기법을 도입하였지만 그들 중 이러한 미숧 사조에 관해 가장 올바르게 이해 하고 있었던 작가는 오지호였다. 그 점에 있어서 화가 오지호의 존재의미와 조성세계는 특별히 중요성을 띄고 있다

 

한국의 풍취를 우리만의 빛과 색채를 통해서 그려낸 화각로 평가 받는 오지호는 1905년 12월 24일 (은력) 전남 화순의 잿동 오씨 집안의 선비 오재영과 그의 처 김선군 사이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휘문고보 3년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의 유화 작품을 보고 화가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는 처음 고려미술회에 들어가 데생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서 화가 김주경, 김용준 등과 만났고 미술에 대한 기초적 조형능력을 연마하며 우정을 쌓아 갔다. 그러나 서구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샆었던 오지호는 1925년 휘문 고보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미술학교 에 지원한다.

 

1년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들어가 재수를 한 후 이듬해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한 오지호는 3학년때 인상파에 대해 알게 된 후 색채를 통한 이사을 구현하고자 지속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평소"'그늘에도 빛이 있다" 고 생각했던 그는 "그늘이 빛이 자려진 것이 아니라 빛이 변화된 것"이라는 인상주의 철학을 주창하여 인상주의 이론을 한국의 빛과 자연에 반영해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추구하였다.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吳之湖) 화백

1905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전날(Christmas Eve) 태어나 1982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Christmas Day)에 세상을 떠난, 오지호는 화순동복이 고향이다.

오지호는 서울 휘문고보(徽文高普) 시절, 우리나라 최초 여성 화가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의 유화(油畵) 작품을 보고 화가로서의 길을 선택하고, 처음에는 고희동의 지도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후일 고려미술회관 미술연구소에서 들어가 데생(dessin) 공부를 계속하면서 화가 김주경, 김용준 등과 만나 미술에 대한 기초적 조형능력을 연마하게 된다.

그러나 서구(西歐)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오지호는 1925년 휘문고보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에 지원한다. 1년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재수(再修)한 후, 이듬해 동경미술학교에 입학, 3학년 때 인상파를 접한 후, 색채를 통한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지속적 작업에 몰두한다.

평소 ‘그늘(陰地)에도 빛이 있다’고 생각한 오지호는 ‘그늘은 빛이 가려진 것이 아니라 빛이 변화된 것’이라는 인상주의 철학을 주창(主唱)하면서, 인상주의 이론을 ‘한국의 빛과 자연에 반영’하면서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畵風)을 추구’했다.

1931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학과 졸업 후, 서울에서 김주경 등을 주축으로 결성된 녹향회(綠鄕會)동인전(同人展)에 참가, 사실적 자연주의 화법의 유화를 발표한다.

1935년 부터 10년간, 오지호는 민족주의자(民族主義者)들이 운집해 있는 개성송도고보(開城松都高普)교사로 재직하면서, 일제 강점기하의 학생들에게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며, 프랑스인상파 작풍(作風)의 신선하고 밝은 색채 구사로 한국의 자연미(自然美)와 풍정미(風情美) 표현작업에 몰두한다.

특히 1938년 자비(自費)로 출판한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畵集)은 1930년대 중반 당시, 국내 서양화계(西洋畵界) 새로운 회화방식이던, 서구의 인상주의를 확실히 수용하였음을 보여준다. 


중년기 이후 작품 활동에서는 인상주의 미학(美學)을, 오지호 특유의 생동적 필치로, 풍부한 색채현상과 함께 풍경화 화폭에 옮겼다.

광복 후 광주(光州)로 내려와, 후학(後學)을 양성하던 교직에서 물러난 오지호는 야인(野人)으로서, 예술 활동 및 한자(漢字) 교육 부활운동에 전념하다가 1982년, 그의 생애(生涯) 경외하던 ‘빛’을 찾아 하늘로 떠나갔다.


■오지호 화백의 작품세계

한국의 풍취(風趣)를 우리만의 빛과 색채를 통해서 그려낸 화가로 평가받는 오지호는 우리나라 서양화 1세대에 속하면서 그 세대의 화가 대다수가 서구(西歐)의 사실주의적 아카데미즘(academicism) 혹은 사실주의와 외광파(外光派)의 절충양식에 일관했던 것과는 달리, 인상주의(印象主義) 및 그 후의 모던아트(modern art)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인상주의를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한국인상주의 회화운동의 기수가 되었고, 그 이념을 늘 새로운 눈으로 탐구하고 실현해감으로써 동시대 화가들에 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1950년 이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소재적(素材的) 일관성은 여전하지만 표현에 있어, 빛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서구 인상주의 영향을 받아 한국산하에 내리치는 빛을 연구한 오지호.

인상파화가에게 빛은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리는 대상에 중요한 요소지만, 화가가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캔버스에 변하는 빛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북향(北向)으로 창문이 난 방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오지호는 1950년대 이후로는 빛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으로 캔버스에 담는 걸 포기하였다한다.

색채에 대한 시각은, 초기 서구 인상주의 경향에서 서서히 내면적 정신미가 가미된 감각적 단색조(單色調)의 형상주의(形象主義)로 이행되며, 1979년대 말에는 원숙해진 정신적 깊이와 한국적 서정(抒情)이 심미적(審美的)으로 곁들여지면서 오지호의 예술세계는 완성의 단계로 이르게 된다.

오지호의 작품세계는 ‘구상회화선언(具象繪畵宣言)’에서 밝힌 것처럼 ’자연에 대한 감각의 표현, 그 감격을 대상의 데포르메(déformer)를 통해 새로운 자연에 대한 감격으로 전환‘하는 데 있고, 오지호가, 그림에서 목표한 것은 ‘회화의 생리에서 나오는 회화, 회화의 생리에 가장 잘 맞는 회화, 회화라면 그렇게 있어야 가장 자연한 모습, 누가보아도 언제보아도 좋은 그림, 마음 편히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림’ 이라고 1977년 공간 잡지 인터뷰에서 말한다.

죽는 날까지 초가 한 채 없었던 그는 제자에게 '예술은 비리(非理)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창작과 노력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분할묘법과 색은 곧 빛이요, 회화는 다름 아닌 이 빛의 예술이라고 본다.’고 말한 오지호는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자연과 빛의 작용에 의한 생명의 예찬과 우리의 풍토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적 인상주의 풍경의 전형을 창조하였다는 평(評)을 받고 있다.

 

 

 

잔설 1926, 37.5 x 45.5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풍경 1927, 65.5 x 53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주춘소경 1928, 45 x 53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오지호<나부>, 1928, 80cm X 53cm, 국립현대미술관

 

 

 

 

시골 소녀 1929, 45 x 38cm 개인소장

 

 

 

 

오지호 <자화상(自畵像 )>1931, 59.5cm X 44.5cm, 동경예술대학교 자료관

 

 

 

오지호<서공원> 1934,

 

 

 

 

오지호<처의 상(妻의 像)> 1936, 73cm X 53cm, 국립현대미술관 20호

 

 

 

사과밭 1937, 73 x 91cm 개인소장

 

 

임금원 30호 1937년


'임금원' 1937년 5월. 외광파의 미덕과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릴 때의 작가의 심경과 정황을 이렇게 글로 남겨두었다.

"5월 8일 토요일 날은 그리기에 꽃이 좀 부족한 듯하더니 일요일에는 만개가 되고 월요일에는 벌써 지기 시작했다. 봄의 피는 과수의 꽃으로는 제일 늦고 피도 제일 일찍 지는 것이 이 꽃이다. 복숭아꽃도 일주일은 가기에 이 꽃이 좀 더 있으려니 하고 있다가 고만 놓쳐버린 것이 작년의 일이다.

 

이곳을 지날 적마다 꽃망울의 변화에 주의해오다가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도 곧 그리기 시작했다. 5월의 햇볕은 상당히 강렬하고 그리는 도중에 꽃은 피고 지었다. 왱왱거리는 벌들과 한가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임금원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거의 완성되면서 꽃도 지기 시작했다"

오지호는 자기 나름의 미학에 있어서는 좋게 말하면 신념 거칠게 표현하면 고집이 있는 것 같다. 고집도 평생을 하면 정말 뭔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고집과 아집은 아마도 다른 것이다. 고집은 자신의 욕심과는 무관하지만 아집은 자신의 욕심에 얽매인 것인 아닌가.

오지호의 30년대 그림을 보면 정말 선각적이다. 외광파처럼 정말 그림에서 광채가 무엇인지를 아셨던 것 같다. 그의 빛은 남도의 강렬한 태양아래서 빛이기도 하지만 모네의 순간의 빛을 포착하여 영원히 바래지 않는 색채로 그렸듯이 그렇게 화폭에 옮겼다.

 

 

 

 

오지호<도원풍경(桃園風景)> 1937,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 

 

 

 

오지호<남향집> 1939, Oil on canvas, 80.5cm X 65cm, 국립 현대미술관


남향집은 오지지호의 인상파적 시각이 잘 나타난 대표적 그림으로 나무와 돌축대의 그림자 부분이 청색과 보라로 처리된 것에서 그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초가 집은 작가가 광복전까지 살았던 개성에 있는 집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소녀는 작가의 둘째딸이고, 담 밑에서 졸고 있는 흰 개는 그의 애견'삽살이'라고 생전에 증언한 바 있다.

 

색채로 표현된 그늘 , 맑은 공기가 ㅌ추명한 빛으로 인한 밝고 명랑한색조 및 자연미의 재인식은 프랑스 인상주의 미학과 공통되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초가집을 과감히 좌우로 절단시킨 구도 방식과 원색의 터치를 태양 광선의 변화에 따라 적적이 구사한 색채 역시 전형적인 인상주의 기법이다.

 

한편 작품에 보이는 청색과 노랑등의 향토색 짙은 색채는 훗날 호남지역 화가들이 즐겨사용하는 색감이기도 하다. 인상주의 빛의 효과를 우리민족의 고유한 감성으로 전이 시켜 우리 자연에 맞는 방법으로 일관해온 작가의 의지가 잘 나타난 셈이다.

 

 

오지호의 예술세계는 1930년대를 거쳐 한국적 색채 감각과 자연의 미의식으로 그 틀을 잡았고, 그 영향이 후대까지 이어졌다. 색채에 대한 시각은 초기서구 인상주의 경향에서 서서히 내적 정신미가 가미된 감각적 단색조의 형식주의로 이행되며, 70년대 말에는 완숙한 정신적 깊이와 한국적 서정이 심미적으로 곁들어지면서 그의 완성된 예술 세계로 심화되었다.

 

특히 추상과 구상미술과의 논쟁을 블러일으켰던 [피카소와 현대회화론], [순수회화론], [현대회화의 근본 문제] 등 오지호의 예술이론은 이론과 조셩능력을 동시에 지닌 작가가 없었던 우리화단의 현실에 빛추어 볼 때 독보적인 것이다.

 

오지호는 한국유화의 이론적 틀을 완성했다는 점에 있어서 근대회화사의 특별한 화가로 존재한다. 진정으로 우리화단에 새로운 예술혼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오지호<초추>, 1948, 90.5cm X 72.5cm, 국립현대미술관

 

 

 

포구 1948, 46 x 53cm 개인소장

 

 

 

무등산이 보이는 9월풍경 1949. 합판에 유채 24 x 33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오지호<무등산록이 보이는 9월 풍경> 1949, Oil on canvas, 24cm X 32,5cm

 

 

가을풍경 1953, 49.5 x 60cm 개인소장

 

 

 

 

 

 

초동 1954, 45.5 x 52.5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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